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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정필 Oct 26. 2023

니 이름이 뭐니?

그림:네이버이미지

 하루가 다르게 익어가는 가을 저녁, 설거지를 끝낸 나는 TV를 보고 있는 딸아이 옆으로 간다. 내가 좋아하는 ‘응답하라 1988’을 보고 있다. 중학생인 딸아이와 나는 드라마 덕후이며, 같이 보는 드라마가 많다. 그중 하나가 응팔(응답하라 1988)이다. TV를 한참 보던 딸아이가 “엄마, 내 이름 바꾸면 안 돼”라고 묻는다. 극 중 주인공 덕선 이는 이름을 개명했다. 그래서 나는 “니 이름이 얼마나 예쁜데, 왜? 어떤 이름으로 바꾸고 싶은데”라고 물었다. 그러자 딸아이는 “그래도 민경이는 너무 흔해. 좀 독특한 걸로 바꾸고 싶어”라고 말했다. 나는 딸아이를 쳐다보며 “그럼 정필이로 바꿔줄까? 어때”라고 물었다. 딸아이가 마구 웃으면 “요즘 세상에 정필이는 좀 그렇다. 엄마 이름 누가 지었어? 너무 성의 없이 지은 거 아냐”라고 묻는다. 그 말에 나는 빙그레 웃으며 “그러게 말이야. 엄마도 사는 동안 불만이 많았다.”라고 대답했다.   


   내 이름은 양정필이다. 좀 독특하고 한번 들으면 잘 잊어지지 않는 이름이다. 그래서 놀림도 많이 받았다. 어떤 사람은 정치인의 이름을 빗대어 종필이라 불렀고, 어떤 사람은 영화에서 깡패로 자주 거론되는 ‘정팔’이라 불렀다. 이런 내 이름이 정말 싫었지만, 우리 사회는 어디를 가든, 누구를 만나든 통성명을 해야 했고, 내 이름은 한번 말하면 잘못 알아들어, 재차 묻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난처한 상황들 때문에 나는 내 이름을 묻는 사람도, 기억하는 사람도 달갑지 않았다.      


 초등학교 때 있었던 일이다. 같은 반 개구쟁이 남자아이 한 명은 집요하게 내 이름을 가지고 ‘정팔아, 양푼아, 양장피’라며 놀렸다. 하루는 너무 화가 나서 그 남학생을 세게 한 대 쥐어박았다. 그리고 그날 밤 엄마에게 따져 물었다. “엄마 내 이름 누가 지었어. 언니들 이름은 정숙, 정희, 정옥 평범한 이름인데, 왜 나만 남자이름인 정필이야. 이름 바꿔줘”라고 말했다. 그러자 엄마는 “안 된다. 니 이름은 큰아버지께서 지어 주셨고, 특이하고 괜찮은데 왜 그래”라며 단호하게 말했다. 내가 아무리 큰아버지를 원망하며, 항의해도 엄마는 내 이름을 바꿔주지 않았고, 나는 개명을 포기해야만 했다. 그래도 나에게는 동네에서 부르는 ‘수야’라는 예명이 있어 조금 위안이 되었다. 유년시절 동네에서 불려진 내 이름은 수야이며, 지금도 시골에 가면 정필이란 이름은 모르고 수야로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나는 여고생이 되었다. 그런데 우리 반에는 잠숙이, 말숙이, 양숙이, 말자 등 나처럼 개성적인 이름이 많았다. 같은 반에 나보다 더 특이한 이름이 있었고 그 이름들을 속에서 살다 보니, 내 이름은 아주 평범했다. 그리고 그런 일도 있었다. 그 시절, 타 지역 남학교 학생과 펜팔을 하게 되었다. 그 남학교는 기숙사로 되어 있어, 밖에서 오는  우편물은 아침 조례 시간 담임선생님을 통해 학생들에겐 전달되었고, 여학생 이름의 편지는 본인에게 전달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내 편지는 담임선생님이 보시기에 남자 이름 같아서 통과되었고, 우리는 졸업할 때까지 선생님에게 한 번도 걸리지 않고 펜팔을 이어나갔다.   

  


 그런데 성인이 되고 사회생활을 하다 보니, 이름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또 생겼다. 그 시절 미팅을 하면 이름을 먼저 말하고, 소지품 등으로 파트너를 정했다. 내 파트너들은 모두 내 이름을 다시 한번 물었고, 어색하게 “정팔 씨”라고 불렀다. 이런 곤혹스러움은 직장 생활할 때도, 맞선을 볼 때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내가 생각해도 ‘양정필’은 예쁜 사람이 상상되는 이름은 아니었기에 불만을 드러낼 수 없었다. 그렇게 불편한 이름으로 50년 가까이 살다 보니, 이제는 창피하기보다 요령이란 것이 생겼다. 그래서 이름을 말할 때, 두 번 물을 것을 대비해서 또박또박하게 “양 정 필”이라고 힘주어 말하거나, 먼저 선수 쳐서 “제 이름이 남자 이름 같습니다. 잘 들으세요. 양정필입니다.”라고 말한다. 그러면 두 번 묻는 사람이 없었다. 이렇듯 어렵게 나는 내 이름에 적응해 가고 있었다.     


 몇 해 전 오랜만에 동기회 참석했다. 그런데 그때 그 시골스럽고 구수한 이름 잠숙이, 말숙이는 찾아볼 수 없었고, 지현이, 미현이만 있었다. 그래서 나도 ‘이참에 이쁜 이름으로 개명해볼까’ 잠시 고민했었다. 하지만 세상에 태어나서 지금까지 내 이름을 부지런히 뿌렸는데, 개명을 해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 버겁고 귀찮았다. 좀 더 엄밀하게 말하면 이제 정필이라는 이름이 익숙해지고, 정이 많이 들어서 바꿀 수 없었다. 물론 ’ 수지, 은영‘이란 이름이 여전히 탐은 난다.


 나는 TV를 보는 딸아이에게 말했다. “엄마 동기들 중에서 잠숙이, 말숙이, 미자가 있는데 어떤 이름으로 바꿔줄까?”라고 말하니, 딸아이는 배꼽이 빠지도록 웃으며, “엄마 너무 한 거 아냐, 차라리 정필이로 할게”라고 대답한다. 그리고 덧붙임 말로“엄마 좀 흔해도 민경이가 좋겠어. 그냥 내 이름으로 살래”라고 말한다. 나는 속으로 ‘야, 그래도 니 이름은 돈 주고 철학관에서 지었어. 그런데 엄마 이름은 큰아버지가 밥숟가락 뜨시다가 문득 떠오른 생각으로 지었단다. 버들 양, 곧을 정, 반드시 필 = 버들이 곧고 반듯하게 알겠냐.’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궁금하다. 큰아버지는 무슨 이유로 내 이름을 정필로 지었을까? 어떻게 버들이 곧고 반듯해 질까. 버들은 바람에 사정없이 흔들리는 줏대 없는 나무인데. 아니면 큰아버지의 큰 뜻이 어디 숨어있나? 의문에 의문을 더하지만, 내 이름을 작명하신 분은 오래전에 돌아가셔서 물어볼 수가 없다.  

   


 한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불려지고, 가져가는 것이 이름이다 그래서 작명할 때는 신중해야 한다. 요즘은 그런 일들이 별로 없겠지만, 내가 살던 그 시절에는 이름으로 불편함을 겪은 사람들이 많았다. 나처럼 대충 지어진 이름에 얽매여 50년 가까이 불편하게 살고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 아무리 부모가 지어준 이름이라도, 자신의 삶에 불편함을 준다면 과감하게 개명하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그런 생각에 개명을 몇 번 생각해 봤지만, 살아온 시간 동안 이름에 정이 들었는지 바꾸지 못했다. 그래서 여전히 내 삶에 불편함을 주는 그 이름 ‘양정필’로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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