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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여름 Apr 07. 2024

삽목

잠결에 몸을 뒤척입니다

꽃잎을 잡으려 제멋대로 뻗은 나의 팔다리는

침대에서 돋아난 나무 같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대로의 삶도 나쁘진 않겠지요


식은 줄 알았던 앙상한 나뭇가지는

겨울을 흘려내고 새로운 싹을 틔었습니다

초록이 피어나고 시든 자리에

한 번도 살은 적 없듯이 나무에게 옷을 입혀주었습니다


그 나무에게 양해를 구해 가지 하나를 줄 수 있냐고 물었습니다

나의 벌어진 틈에 당신을 심을 수 있냐고 물었습니다

다시 태어난 새순들은 기꺼이 가지를 내주었고

가장 오래된 틈에 심었습니다.


가능하다면 곧게 뻗은 그 나무처럼

초록을 피우고 싶었습니다.

가능하다면 싹을 여러 번 틔운 나무처럼

뿌리를 내어준 당신을 보살피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인간이라서

나의 팔다리는 가지라 부르지 못할 것들이라서

겨울을 흘려내는 방법을 몰라서

나무의 삶으로, 풀을 피워내는 방법을 몰라서


만약 나무로 태어나 천 년의 삶을 살 수 있다면

다음 생엔 나무로 태어나고 싶습니다

싱그러운 가지를 틈에 품고

인간으로 태어날 나무에게 나무의 가지를 내주고 싶습니다


그날 꿈에서 가지가 모두 잘린 나무를 보았습니다.

그런대로의 삶도 나쁘지 않겠지요

그날 침대에서 인간으로 돌아온 나무를 보았습니다

그런대로의 삶도 나쁘지 않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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