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0월, 귀한 안식월 이란 시간을 갖게 되어 북카페를 전전하며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어느덧 새벽 독서는 이제 나에게 힘든 하루를 버티기 위한 충전기가 되어버렸다. 또한 우연히 알게 된 독서일기 앱은 유용했고 독서 후 나름대로의 평점을 매기는 기능도 좋았다. 책을 읽으며 내 손에서 내려 놓기 어려웠던 책들에게는 5점 만점의 평점을 주었었는데, 아래에 그 책들을 간단히 소개하며 나의 독서 1년을 정리해본다.
1. FACT FULLNESS (한스 로슬링)
한스 로슬링의 책, 우리가 세상을 오해하는 10가지 이유와 세상이 생각보다 괜찮은 이유가 적혀있다. 한스 로슬링은 스웨덴의 통계학자이자 스톡홀롬 의과대학 세계 보건 교수로 일했고, 스웨덴의 국경 없는 의사회를 공동 설립했다고 한다. 그는 이 책을 집필하다가 2017년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오해들 중에서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비난 본능] 이었다. 이는 뭔가 잘못되면 나쁜 사람이 나쁜 의도로 그랬으려니 생각하는 것이라고, 비난 본능은 세계를 이해하는 능력을 방해한다고. 악당을 찾지 말고 원인을 찾고 영웅을 찾지 말고 시스템을 찾으라는 말이 적혀있다. [단일관점 본능]은 내 전문성의 한계를 늘 의식하라는 교훈을 주었다. ‘평균은 분산을 하나게 숨김으로써 오판을 불러온다’ 라는 말도 인상적. 리더의 역할을 수행하는 사람 또는 의사들에게는 더 쉽고 흥미롭게 읽힐 수 있을 것 같다.
2. 고수의 독서법을 말하다 (한근태)
작년 안식월에 마포의 ‘채그로’ 라는 북카페에 민영이와 같을 때, 우연히 눈에 들어와서 초 집중해서 순식간에 읽은 책. ‘인간은 살아있기 때문에 집을 짓는다. 그러나 죽을 것을 알고 있기에 글을 쓴다’는 ‘다니엘 페나크’라는 사람의 시가 인용되어 있었다. ‘정말 초일류 사기군은 자기 자신마저 속인다’는 말에는 공감백배 했으며 생각을 많이 하는 독서가 좋은 독서라는 말에 팔랑귀인 내가 독서앱을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정리, 메모하며 책을 읽는 이유가 되기도 했다. 독서에 대한 입문서로 나에게는 매우 시기 적절했던 책.
3. 뇌과학과 심리학이 알려주는 시간 컨트롤 (장 폴 조그비)
좋은 구절이 너무 많았다. 새로운 경험, 긍정적인 사고, 순간 집중의 중요성을 알려주는 책. 몇 가지 인상적인 구절들을 나열해 본다.
‘시간을 늦추려면 현재 순간에 전력으로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다.’ ‘긍정적인 기대감은 시간이 느려지게 만든다. 두려움이 시간이 빨라지게 만든다’
‘계속 배우고 관찰하고 묻고 해야 인생이 길어진다.’ ‘흥미로는 기억이 풍부할수록 시간이 길어진다.’
나이가 들어서 시간이 짧아지는 것은 기억이 단조로워지기 때문이라고 한다. 결국 새로운 경험이 줄어들기 때문이라고 한다. 부정적인 생각이 많이 드는 사람한테 강력 추천해주고 싶다.
4. 천 개의 성공을 만든 작은 행동의 힘 (존 크럼볼츠, 라이언 바비노)
‘어떤 일이든 비용 대비 득과 실을 계산해서 따진다면 열정은 사라지고 말 것이다. 호기심은 꺼지지 않는 성공의 연료다. 시도해보기 전에 진로를 결정짓지 말라’ 라는 좋은 구절들로 많이 공감하면서 읽은 책
‘기회 앞에서 yes를 답하라, 그리고 no의 대가를 생각하라.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불안함과 의구심이 가실 때까지 기다리기만 한다면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시간만 허비된다
‘실패하면 실망할지 모른다, 그러나 시도하지 않는 것은 불행한 삶이다(비버리 실스)’
긍정적인 기분은 새롭고 다양한 사고와 행동을 하게 만든다고 한다. 미래를 걱정하는 전공의, 전임의들에게 추천하고 싶고 두 딸들에게도 강력 추천하고 싶은 책이었다.
5. 파친코 (이민진)
이민진 작가의 너무나 유명한 책. ‘역사가 우리를 망쳐 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라는 임팩트 있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두 권의 책. 너무 재미 있어서 중간에 책을 내려 놓기가 어려웠던 책이다. 산부인과 의사의 관점에서는 선자의 아버지가 구순열이 있었다는 것. 그리고 그가 매우 딸을 아꼈고 좋은 아버지였다는 사실이 더 의미 있게 다가왔다. 이후 드라마에서는 책만큼 자세하지 않아서 아쉬운 점이 있었지만, 그래도 드라마에서 선자의 어머니가 선자를 일본으로 보내기 전에 흰쌀 밥을 짓는 장면은 아직도 머리 속에 생생하다.
6. 오체 불만족 (오토다케 히로타다)
팔다리가 없는 그가 와세다 대학을 나왔다고 한다. 이 책의 원본은 1999년에 나왔고 내가 본 책은 원본 출간 후 큰 변화를 겪은 오토다케의 반응이 포함된 2002년에 발간된 완전판이었다. 나는 장애인의 대표가 아니다라는 그의 문구가 책 출간 후 힘들었던 마음의 고뇌를 한 마디로 닮고 있는 것 같다. 장애아가 있는 반은 틀림없이 멋진 우애를 다지는 근사한 상황이 연출된다고 적혀 있다. 최근에 읽은 [어른이 되면 (발달장애인 동생과 함께 보낸 시설 밖 400일의 일상)] (장혜영 저) 와 함께 읽으면 좋은 책!
7. 데미안 (헤르만헤세)
중학교 때 잘 모르고 읽었을 책, 그러나 이 책은 어른이 되어서도 읽어야 하는 명작 중의 명작임을 알았고 문장 하나 하나를 발견하는 기쁨을 느끼며 나의 새벽을 뿌듯하게 채워 준 책.
‘누구나 자신의 꿈을 찾아야 해요. 그러면 길이 쉬워져요’
‘하지만 우연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어떤 것을 간절히 필요로 한 사람이 필요한 것을 발견한다면 그것을 가져다 준 건은 우연이 아니라 자신이다’
8. 뼈 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나탈리 골드버그)
책이 빨리 끝날까 봐 두려워하면서 아껴서 읽은 책. 글쓰기에 대한 주옥 같은 이야기가 가득하다. 그 중 기억에 남는 문장 둘을 꼽는다면
‘자신이 사랑하는 일에 믿음을 갖고 계속해서 밀고 나갈 때만이, 그 일이 자신이 가야 할 길로 이끌어주는 법이다.’
‘우리가 무언가에 전적으로 매달려 심혈을 기울였더라면 그 일을 그만두어야 할 때가 언제인지도 우리에 분명히 알려준다’
9. 다운증후군 가스파르, 어쩌다 탐정 (로맹 퓌에르톨라)
작가의 엄청난 상상력과 반전으로 놀라게 만드는 책. 작가는 다운증후군에 대한 선입견에 대해서 지적하기 위해서 반전의 상황을 만든 것 같은데, 그 반전은 우리를 씁쓸해지게 만든다. 책에 나오는 문장을 아래에 소개한다.
‘나는 인터넷에서 전 세계의 다운증후군이 있는 사람 가운데 10명이 정규학업과적을 마쳤고 심지어 명문대학을 졸업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2008년에는 버트 홀브룩이라는 미국인이 다운증후군이 있는 사람 가운데 최장수 기록으로 기네스북에 이름을 올렸다는 글도 읽었다. 버트 홀브룩은 2012년 3월 14일 여든 세 살의 나이로 죽었다. 이런 글을 읽으면 희망이 생긴다’
10. 살아갈 날들을 위한 공부 (톨스토이)
[책은 도끼다]에서 권장되어 고르게 된 책. 명언들로 가득 차 있어 매일 아침 조금씩 다시 읽으면 좋은 책. 핵심단어를 꼽자면 영혼, 사랑, 현재, 겸손이 될 듯. 좋은 말들 총집합체 같은 책이다.
‘최상의 행복은 일 년을 마무리할 때 연초 때의 자신보다 더 나아졌다고 느끼는 것이다’
‘자기 습관의 주인이 되라. 습관이 우리의 주인이 되게 해서는 안 된다’
11. 할머니 의사 청진기를 놓다 (조병국)
집 앞의 알라딘 중고 서점에서 우연히 찾은 책. 6만 입양아의 주치의이자 엄마였던 홀트 아동병원 조병국 원장의 50년 의료 일기. 2009년에 나온 책이고 지금 절판이 되었다는 사실이 너무 안타깝다. 조병국 선생님이란 분이 우리나라 의료계에 있으셨다는 사실에 감사한 마음이다. 사연 하나하나가 놀랍고 감동적인데 또 그 사이에 큰 글씨로 적혀 있는 문구들은 깊이 마음속에 새겨놓아야 할 구절 들로 가득하다. 하나의 에피소드를 소개하면 두 살배기 아들을 안고 기차로 뛰어 들어 자살한 엄마 품에서 살아 남은 아이, 비록 두 다리를 잃었지만 미국에서 의족을 만드는 양부모를 만나서 환하게 웃고 있는 남자아이의 모습은 너무나 놀라웠다. 받은 사랑을 그대로 세상에 베푸는 뇌성마비 의사, 영수의 이야기는 또한 얼마나 감동적인지.
12. 어떻게 일할 것인가 (아툴 가완디)
저자는 브링엄 여성병원의 외과의사로 인도계 미국인이다. 의사가 쓴 글들은 술술 읽히고 공감이 잘 되는 특징이 있다. 저자가 이야기하는 일터에서 ‘긍정적인 일탈자’가 되는 법 5가지는 1) 즉흥적인 질문으로 던져라, 2) 투덜대지 말라, 3) 수를 세라, 4) 글을 써라, 5) 변화하라 는 것이었다. 우리가 매일 접하는 아프가 점수를 만든 버지니아 아프가는 1933년 컬럼비아 외과에 입학한 최초의 여성이었다고 한다. 외과수련을 했지만 여자 의사는 환자를 끌어올 가능성이 적다면 마취과 의사를 할 것을 권유 받았다고 한다. 그녀는 결국 컬럼비아 의대에서 마취과를 독립시키고 두 번째의 공인 마취과 의사가 되었다고 한다. 의학사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들도 있고 저자의 의사로서의 생활에 대한 이야기도 있어서 의대생이나 전공의 선생에게 흥미로울 것 같다.
13. 살고 싶어서 더 살리고 싶었다 (신승건)
외과의사가 된 어느 심장병 환자의 고백이라는 부제가 달려있는 책으로 역시 단숨에 읽었다. 81년 생인 그가 서울이 집인데 어쩌다가 거창 고등학교를 다니며 하숙한 집의 천장이 비바람에 날라가서 고 3때 수능 문제집을 다시 샀다는 이야기에 놀랐다. 외과 전공의 수련을 받으면서 외상센터의 부적절했던 에피소드와 자신이 진료 받은 한 대학병원의 검사실의 오류를 진지하게 지적한 부분에서도 놀랐다. 저자는 에필로그에서 딸을 위해 쓴 글임을 밝혔는데 이 부분이 내가 [태어나줘서 고마워]를 쓴 이유와 정확히 일맥상통한다는 점에서 세 번째로 놀랐다. 저자의 글 솜씨 또한 훌륭하다. 감동적인 문구를 아래에 소개한다.
‘배우려고 하면 얼마든지 배울 것이 널린 게 우리의 인생이다
일어서려고 하면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일어설 수 있는 것이 우리의 인생이다.
감사하려고만 하면 매 순간 감사할 수 있는 게 우리의 인생이다’
14. 한 개의 기쁨이 천 개의 슬픔을 이긴다 (조우성)
이번 여름 가족여행으로 부산 아난티 eternal journey에서 순식간에 읽은 책. 법적인 상식도 얻게 되고 세상에 이런 일이 있구나 라는 것도 알게 되며 인생의 지혜도 덤으로 배운 좋은 책이다. 또한 ‘한 개의 기쁨이 천 개의 슬픔을 이긴다’는 제목 자체가 너무 마음에 든다. 올해 인기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에피소드 원작 수록이라는 홍보 덕분인지, 서점의 진열장 앞에 놓여 있는 모습이 상당히 부러웠던 책이다. 만약 [태어나줘서 고마워 2]를 쓰게 된다면 ‘슬의생 에피소드 원작 수록’이란 홍보를 해달라고 요청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5. 숨결이 바람 될 때 (폴 칼라니티)
서른 여섯 젊은 의사의 마지막 순간이라는 설명에서 서점에서 이 책을 펼쳐보지 않을 수 없었다. 스탠포드 영문학 석사에서 신경외과 의사가 된 저자. 힘든 신경외과 전문의 수련이 끝나는 순간 폐암 말기를 진단 받았고, 부인과 그는 시험관 임신을 통하여 아기를 갖기로 결심하며 그는 아버지가 되었다. 책의 맨 앞에는 딸에게 바친다는 글귀가 있고 책의 후반에는 딸에 전달하는 메시지가 있다. 그 메시지를 아래에 소개한다.
‘네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무슨 일을 했는지, 세상에 어떤 의미 있는 일을 했는지 설명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면, 바라건대 네가 죽어가는 아빠의 나날을 충만한 기쁨으로 채워줬음을 빼놓지 말았으면 좋겠구나. 아빠가 평생 느껴보지 못한 기쁨이었고, 그로 인해 아빠는 이제 더 많은 것을 바라지 않고 만족하며 편히 쉴 수 있게 되었단다. 지금 이 순간, 그건 내가 정말 엄청난 일이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