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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수영 Dec 30. 2022

90. 아기가 울었어요.

임신과 출산에 관한 이야기 (4)

산모가 회복실에서 한 첫 마디였다. 아기가 태어나서 우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겠지만 실제로 그렇지 않다. 아기가 일찍 나오는 조산인 경우에는 (호흡을 잘 못하기 때문에) 울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고 만삭인 경우에도 출생 후 바로 자발 호흡을 하지 못하는 경우도 더러 있기 때문이다. 결혼한 지 5년, 시험관 임신 6번 만에 가지게 된 아기를 23주에 갑작스럽게 낳게 되고, 500gm이 조금 넘는 아기가 신생아 중환자실에서 치료 받는 동안 그녀와 남편은 얼마나 가슴 졸였을 것인가. 하지만 부부는 안타깝게도 이른 조산아에게 잘 생기는 괴사성장염 및 패혈증으로 생후 7주의 아기를 하늘 나라로 보내야 했고, 나는 그 감정이 슬픔이라기 보다 믿겨지지 않는 괴로운 놀라움이지 않았을까 짐작했다.  


내가 그녀를 처음 만난 것은 이 다음 임신에서 였다. 두꺼운 쌍커풀이 있는 산모의 커다란 눈망울은 내가 무슨 설명을 해도 걱정과 두려움에 쌓여 단 한번의 미소도 담고 있지 않았다. 지난번 조산의 이유가 전형적인 자궁경관무력증 이었기에 이번 임신 13주 경 자궁경부를 묶는 수술을 해야 했다. 수술에 대한 설명을 할 때도 부부는 질문도 없이 묵묵히 듣기만 했지만 눈은 역시 불안에 떨고 있었다. 이후 정기 검진에서 34주를 넘기자, 이제 조금 산모의 눈빛이 안정되는 것이 느껴졌다. 


마침내 38주가 되어 (하반신만 마취하는 척수마취로) 수술을 진행하게 된 상황, 배속은 이전 수술로 유착이 심하였다. 나는 또 ‘우이씨’를 반사적으로 내뱉으면서 유착과의 씨름을 하고 있었다. 마침내 아기가 나왔고 3.1kg 의 남자 아기는 큰 소리로 울었다. 나는 아기를 두 손으로 감싸 안고 산모에게 보여주었다. 수술 후 내가 회복실에 갔을 때, 그녀는 나를 보자마자 ‘아기가 울었어요’ 라고 말했다. 누구에게는 아니 대부분의 산모에게는 당연한 아기의 울음이 당연한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산모는 눈물을 흘렸지만 이제 눈망울에서 걱정과 두려움의 그림자는 사라졌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다음 날은 크리스마스 이브였다. 아기는 그렇게 선물처럼 왔다. 


퇴원하는 날, 나는 회진을 돌면서 축하한다, 그 동안 고생 많았다는 말과 함께 아기의 이름을 물어보았다. 산모는 나에게 이름을 말해주었고 산모의 커다란 눈에서는 이미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리고 있었다. 나는 그녀를 안아주었다. 이제 더 이상 그녀의 눈에 놀람과 두려움, 그리고 걱정은 없었다. 부부는 아기에게 더없이 훌륭한 부모가 될 것이다. 역경은 분명한 선물이란 말은 이런 고위험 산모에게 가장 어울리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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