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Jul 09. 2023
100. 이 태교 여행 반대 일세
임신과 출산에 관한 이야기(10)
어느 순간부터 태교 여행이라는 말이 흔한 말이 되어버렸다. 임신의 안정기에 들어간 것을 부부가 오붓하게 축하하고 싶은 의미도 있겠지만 출산 후에 당분간은 어린 아기를 데리고 여행 다니기가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는 마음을 ‘태교’라는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개념에 담아낸 최고의 여행 상품이 아닐 수 없다.
외래를 보다 보면 태교 여행으로 동남아의 어느 지역을 가는 것을 모두 예약해 놓은 상태에서 마지막으로 나에게 ‘비행기를 타도 되는지?’ 물어보는 산모를 종종 만난다. 나는 먼저 어느 지역으로 가는 지를 물어보고, 업무 때문에 가는 것인지 휴가 차 가는 것인지를 물어본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해준다. 사실 임신 중 비행기를 타는 것이 안되는 것은 아니지만 불필요한 장기 여행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안 하는 것이 좋다.
첫 번째는 혈액 순환의 문제다. 일반적으로 장기 비행시에는 혈액 순환이 잘 되지 않기 때문에 하지에 혈전이 생길 수 있고 드물지만 혈전이 폐동맥으로 올라가는 폐색전증이라는 질환이 발생할 수 있다. (산모가 아닌)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 따르면 증상이 있는 혈전증이 발생할 위험도는 4시간 이상 비행의 경우 4,600분의 1의 확률로 발생하며 탑승 시간이 2시간씩 늘어날수록 18% 위험도가 상승한다고 알려졌다 (1). 일반적으로 6시간 미만의 비행 시 심한 폐색전증의 가능성은 무시할 만큼 낮지만 (2) 임신 중에는 생리적으로 혈전의 위험도가 4배 증가하고 산모의 나이가 많거나 다태 임신의 경우에는 혈전의 위험도가 더욱 높아진다 (3).
두번째는 여행하는 지역에서 질출혈이나, 양막파수 등의 드물지만 조산과 연결될 수 있는 드문 증상이 발생했을 때 외국 병원에 가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의사 소통이 잘 되지 않는 나라에서 위와 같은 증상이 발생한다면 더욱 어려울 것이다.
세번째 이유는 여행 지역에서 특정 질환에 감염될 수 있다는 점이다. 장기 비행에 대한 우려 때문인지 태교 여행은 동남아 지역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은데 지역에 따라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보기 어려운 질환도 있고 식생활 관련 위생 상태도 알 수 없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예를 들면 잘 씻지 않은 야채, 저온 살균을 하지 않은 치즈, 덜 익은 육류 등을 먹는 경우 태반을 통과하여 유산, 사산 또는 태아 감염을 일으킬 수 있는 감염성 질환 (리스테리아, 톡소플라즈마) 에 걸릴 수 있기에 주의해야 한다.
내가 경험한 환자 중에는 동남아 지역에 태교 여행을 다녀 온 후 우리나라에서는 드문 뎅기열에 걸려서 온 사람도 있었고, 리스테리아 감염증에 걸려 고열 증상이 발생하고 안타깝게도 아기를 잃은 경우도 있었다. 또한 유럽으로 여행을 갔다가 조기양막파수가 되어 ‘비행기에서 아기가 잘못될 수도 있다’ 라는 각서까지 쓰고서야 겨우 비행기를 탈 수 있었고 공항에서 바로 본원으로 이송되어 입원 후 조산한 경우도 있었다.
아래는 미국의 질병관리협회에서 제시한 임신 중 여행에 상대적 금기증으로 제시된 항목이다 (4). 반드시 가야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가지 않는 것이 좋다는 의미이다.
상대적 금기증 (Pregnant Travelers | CDC Yellow Book 2024)
태아의 위치가 비정상적인 경우 (즉, 아기의 머리가 아래로 있지 않은 역아, 또는 횡아)
자궁내태아발육지연이 있는 경우
난임의 과거력이 있는 경우
자연유산 및 자궁외 임신의 과거력이 있는 경우
산모의 나이가 15세 미만이거나 35세를 초과하는 경우
다태임신
전치태반 및 기타 태반의 이상이 있는 경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