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 제발
임신과 출산과 관한 이야기 (15)
그동안 많은 고위험 산모들을 진료해 왔지만 그녀가 겪은 일은 적어도 수치상으로는 원 탑일 것이다. 자연 임신으로 생긴 세쌍둥이의 임신은 순조롭지 않았다. 임신 22주 5일에 자궁 경부길이가 1.4 cm 이 되자 타원에서 자궁경부봉합수술이 시행되었고 이후 5일 만에 양수가 터졌으며 6일째는 조기 진통이 진행하였다. 발열까지 동반되어 양수내감염이 의심되면서 더 이상 끌기 어려운 상황에서 신생아중환자실 사정으로 본원으로 전원되었다.
분만장 도착 당시 자궁 경부는 거의 다 열린 상태였기에 바로 수술이 진행되었고 세 아기는 각각 500gm을 조금 넘는 초극소미숙아로 태어났다.
사실 자궁경관무력증은 양수내감염이 동반되는 경우가 많고 이러한 양수내 감염은 신생아 감염과 연관되는 경우가 빈번하다. 아니나 다를까 신생아에게 산모의 산도에 있던 특정 세균(이 경우는 대장균)에 의한 신생아 패혈증이 발생하였으며 첫째 아기는 혈액에서까지 균이 나오는 전신패혈증으로 출생 후 5일 만에 사망했다. 둘째 셋째 아기의 기도에서도 동일한 균이 나왔고 아기들은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다가 안타깝게도 출생 후 각각 18일, 52일에 하늘 나라로 갔다.
임신을 알고 아기들이 건강하기만을 바라며 임신 기간을 조마조마 끌어온 부부에게 한 명의 아기가 자궁내태아사망하거나 또는 출생 후 사망하는 것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감히 알 수 없는 깊은 슬픔일 터인데 이 부부는 결국 세 명의 아기를 모두 보내며 참적의 고통을 견뎌야 했다.
내가 그녀를 처음 만난 것은 이 힘든 시기를 버텨낸 1년 후 단태임신 상태에서 였다. 이전의 임신에 자궁경관무력증이 있었다고 볼 수도 있었지만 세쌍둥이라는 커다란 변수가 있었기에 나는 수술을 시행하지 않았고 일차적으로 프로제스테론 질정을 이용한 약물치료를 우선으로 진료했고 결국 그녀는 만삭에 예쁜 딸을 낳고서야 이전 임신의 악몽과 슬픔을 잊을 수 있었다.
출산 후 마지막 진료에서 그녀는 조심스럽게 다음 임신에 대한 문의를 해왔고 나는 교과서에 있는 확률적인 이야기와 함께 가보지 않은 길은 알기 어렵다는 막연한 설명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로부터 또 약 1년이 지난 시점에서 그녀는 다시 임신해서 방문했고 (이번에도 단태임신이었다.) 우리는 이번 임신의 경과가 만삭 분만으로 끝냈던 두 번째 임신과 비슷하게 순조롭게 진행할 것을 바랬고 또 바랬다. 다행히 약 20주까지 안정적인 경부길이를 유지를 하고 있던 그녀에게 어느 날 다시 어려움이 닥쳐왔다. 임신 22주 3일 아예 양막이 경부의 바깥으로 빠져 나오는 자궁경관무력증이 다시 발생한 것이었다. 아기는 또 500gm 남짓이었기에 '모 아니면 도'의 심정으로 수술을 결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수술은 매우 힘들었다. 아니 결국 수술을 진행하지 못했다.
자궁경부의 앞쪽을 뜨고 뒤를 떠야 하는데 이미 자궁경부가 앏아질 대로 얇아져 있었고 투명한 양막을 통해서 아기의 발바닥이 보였다. 수술 중 양막파열이 될 가능성과 오히려 감염을 조장할 가능성이 있었다. 이를 피하기 위해 베타딘 소독약을 통상의 수술에 사용하는 양의 10배 정도를 사용했다. 나는 전쟁터에서 싸우는 외로운 전투병 같은 심정이었다. 약 50분간의 싸움 끝에 무리한 수술을 감행한다면 양수내감염이 악화될 수도 있으며 아기는 태어나더라도 신생아 패혈증으로 또 사망할 가능성이 높겠다고 내 머리가 판단하는 순간, 나는 자궁경부의 앞단에 묶은 실을 아예 풀렀고 수술 드랩을 제치면서 산모에게 작전 상 일단 후퇴를 알렸다. 그녀는 외로운 전투병을 그래도 감사하다는 말로 위로해주었다. 비록 수술은 성공하지 못했지만 그렇다고 아기가 당장 나오는 것은 아니었다. 이 상태로 진통만 걸리지 않는다면 몇 일 아니 몇 주를 더 끌 수도 있을꺼야 하는 희망적인 생각을 하면서 스스로를 그리고 산모를 위로했다.
다음 날 외래를 보고 있는 상황에서 병동 전공의 선생에게 연락이 왔다. 진통이 걸렸다는 것이었다. 나의 귀를 의심하고 싶었지만, 사실이었고 결국 오후에 나는 수술을 진행했다. 어떻게 이미 세 명의 아기를 하늘 나라로 보낸 이 부부에게 또 이런 어려움을 하느님이 주시는 것인지 나는 보호자 모드로 원망했다. 그리고 수술에 들어가기 전 신생아중환자실의 성교수와 양교수를 붙잡고 이 작은 생명을 꼭 살려달라고 부탁, 아니 애원했다. 아기는 530gm으로 태어났다. 다행히 수술 소견에서 육안적으로 심한 자궁내 감염은 없어 보였다.
요즘 나는 하루에도 2번 이상 이 아기의 차트를 확인하고 있다. 첫 번째 임신에서 첫째 아기를 잃었던 시기가 지나갔고 두 번째 아기를 잃었던 시기를 이제 지났다. 제발 이 아기가 바로 이전 임신에서 만삭에 건강하게 태어난 누나의 든든한 남동생이 되기를 기원한다. 제발.
PS. 이 글을 쓴 지 59일째,
하루하루를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차트를 열어보았음을 고백한다.
하느님이 이 '제발'기도를 들어주신 것 같다. 아기는 이제 1kg이 되었다.
이제는 조마조마하지 않다.
이전임신에서 잃었던 세번째 아기의 생존 기간보다 일주일이 지났다.
감사하다.
PS. 힘든 외래를 마친 어느 날, 감사히 받은 백일떡은 떡이 아니라 간절함이고 기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