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10시, 오늘은 내가 당직이기에 개인 병원에서 전원 의뢰 문의 전화를 받았다. 마침 우리 병원에서 전공의 수련을 마치고 산과 전임의까지 했던 K 선생의 연락이었다. 임신 29주 태반조기박리가 의심된다고 하였다. 태반조기박리는 아기가 엄마 배속에서 잘못될 수 있는 중요한 원인 중에 하나로 태아에게 발생하는 교통사고라고 생각하면 된다. 심한 태반조기박리라면 전원 중에 아기의 심장이 멎을 수 있다. 산모는 새벽 6시부터 배가 아팠고 그 병원에 도착한 것은 8시 정도, 처음에는 조기진통이 의심되어 (원래 태반조기박리는 비겁한 질환이라 조기진통의 탈을 쓰고 나타나는 경우가 많아 초기에 진단이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이다) 자궁수축억제제를 사용하였으나 호전이 없고 배가 지속적으로 단단하게 뭉쳐있는 증상이 지속되었다고 한다. 태아 모니터는 신호등으로 따지면 노란불 정도로 판단되었다. (빨간 불이었으면 전원조차 불가능하다.) 마침 양수가 터지면서 약간의 출혈이 동반되었기에 K 선생은 태반조기박리를 의심하고 전원 결정을 한 것이다. 매우 적절했다. 그 병원에서 이 병원으로 이송 시간은 약 30분 정도 걸릴 것이다. 30분은 태아가 생사의 갈림길에서 죽음의 끈으로 당겨지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최악의 상황은 삶과 죽음의 경계의 끈을 잡게 되는 경우다. 이는 모두의 불행이다.
나는 K 선생에게 분만장에 전화해서 인적 사항을 먼저 알림으로써 환자가 도착하기 전 차트 번호가 만들어질 수 있도록 조치했다. 그래야 오자마자 바로 수술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오전 10시 11분, 나는 마취과 J 교수에게 전화해서 마취를 부탁했다. 그는 흔쾌히 부탁을 들어주었고, 심지어 전원 산모가 도착하기도 전에 아무런 피검사 결과 없이 시작하는 ‘산과적 초응급 수술’을 전산시스템에서 확정을 해주었다. (이렇게 하면 수술 준비 소모 시간이 현저히 감소한다.)
오전 10시 20분부터 약 10분 동안 분만장 간호사들은 이 응급 환자가 도착하기를 기다리며 항생제 반응검사, 정맥 주사의 확보, 피검사의 시행, 수술 부위 준비, 소변 줄 삽입 등에 필요한 모든 준비를 갖추고 분만장의 자동문을 노려보며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전 10시 43분 드디어 환자가 도착했다. 간호 팀은 13분만에 준비를 마치고 수술장으로 환자를 내렸다.
오전 11시 03분에 환자는 수술방으로 입실했고 오전 11시 12분에 마취과 J 교수의 능숙한 손놀림으로 척수 마취가 한 방에 끝났다.
1 kg을 겨우 넘은 아기가 나온 시간은 오전 11시 21분이었다. 아기의 태반은 70%가 떨어져 있었다. 진단 및 전원의 결정이 1 시간만 늦었어도 아기는 이미 저 세상의 끈에 붙잡혀 갔을 것이다. 이 병원에서의 수술 시작이 15 분만 늦었어도 아기는 지금쯤 삶과 죽음의 경계 속에서 헤매고 있을 것이다. 산과적 초응급 상황이란 이런 것이다. 빠르고 현명한 결정을 한 제자 K 선생에게 칭찬을 해주고 싶다. 그런 제자들을 키울 수 있었던 것이 감사하고 뿌듯한 일이었다. 부디 그녀가 우리나라에서 분만 의사로서 오래 일했으면 좋겠다.
이 산모에게는 퇴원 시 로또 복권을 사라고 해야겠다. 금요일 오전, 여러 의료진이 많은 베스트 타임, 모두가 운이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