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번째 당직을 섰다. 지난 1년 3개월 동안. 한 달에 평균 8번 이었고 온콜 당직까지 합하면 참으로 많은 밤을 병원에서 지냈다. 당직을 서면서 육체적 피로와 정신적 괴로움을 왔다갔다한 해가 2024년 이었다면, 올해는 해탈의 경지에 이른 해였다. 다만, 이 해탈은 무아지경이 아니라 이제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는 포기와 상실 속에서 도달한 것이었다.
작년 2월 말 전공의들이 집단 사직을 한 후, 3월에 나는 우리과 전공의들과 줌회의를 하며 의견을 듣고 나의 생각을 이야기 하는 시간을 가졌었다. 물론 전공의들은 설득되지 않았고, 나는 후회하지 않을 결정을 개별적으로 하라는 원론적인 이야기만을 했을 뿐이었다. 그리고 이 사태로 무엇을 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전공의들은 ‘관계’를 잃게 될 가능성이 있다고 조언했다.
하버드 대학 졸업생들을 대상으로 한, 지금도 진행 중인 행복의 조건을 찾는 종단 연구에 대한 책인 [세상에서 가장 긴 행복 탐구 보고서]에 나오는 그 ‘관계’ 이다. 이어령 선생님의 책, [마지막 수업]에서 나오는 ‘관심, 관찰, 그리고 관계가 중요하다’는 문장에 나오는 그 ‘관계’ 말이다.
작년 5월, 21명의 전공의들과 이틀에 걸쳐 30분씩 개별 면담을 했을 때 한 전공의는 나에게 “교수님, 섭섭하세요?” 라고 물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이 질문에 나는 당황했고 쏟아지는 눈물을 긴 머리로 감추고 창 밖으로 고개를 돌리며 “전혀 섭섭하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 이제 나가라” 고 말했었다.
전공의들이 해야 할 기본 진찰, 입원 처방, 병동 기록 등 수많은 일들과 교수로서 수술 집도 등의 일들을 모두 하는, 1년 이상의 긴 시간 동안 산부인과 전공의 4명이 이 분만장에 와서 아기를 낳고 갔다. 전공의들은 미안해하며 “교수님, 건강 챙기셔야 돼요.” 라는 말을 반복했지만, 그들은 바로 이 말이 내가 제일 듣기 싫어하는 말임을 알지 못했다.
2025년 5월, 다시 한번 전공의 모집이 시작되었으나, 기대와는 달리 복귀하는 전공의가 드물다고 한다. 이제는 눈물이 나오지 않는다. 이제는 내가 관계를 잃었다. 나에게 더 이상 스승이 될 열정이 남아 있지 않기에 그들과 헤어질 결심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