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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3. 임신과 출산, 그리고 J

by 오수영

J : 선택제왕하려구요.

의사 : 자연분만 잘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왜요?

J : 진통하다가 수술하는 것이 싫어요.

의사: 진통하다가 수술할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확률적으로는 자연분만을 잘 할 가능성이 더 높아요.

J : 그래도 진통하다가 수술하면 고생은 고생대로 다하고 억울하잖아요. 그리고 제가 J 형 인간이거든요. 언제 자연 진통 걸릴 지도 모르고 저는 예측 가능한 것이 좋아요.

의사: 그쵸. 진통이라는 것은 언제 걸릴 지 알 수 없다는 부분이 있지요.

J : 그래서 정해진 시간에 선택제왕을 하고 싶은 거예요.

의사: 그런데 제왕절개수술은 다음 임신에 전치태반의 확률이 높아질 수 있어요. 그리고 평균적으로는 수술이 더 피가 많이 나요. 회복도

자연분만이 빠르고...

J : 다음 임신은 계획에 없는데요.

의사 : (그거는 지금의 생각이지 인생은 계획대로 흘러가는 것이 아닌데...)


선택제왕절개수술을 '선택'하는 산모들이 많아지고 있다. 사실 선택제왕절개수술이란 말은 이전에 없었는데 어느 순간에 누군가 Cesarean Delivery on Maternal Request (CDMR)이라는 표현을 썼고, 이 '산모가 요구하는 제왕절개수술'은 '선택제왕' 이라는 단어로 줄여졌다.


기술이 발전하고 정보가 많아지면서, 우리의 삶은 많이 예측 가능한 것으로 바뀌었다.

일기예보도 이전 보다 정확해졌고

버스와 지하철을 기다리는 시간도 예측 가능해진지 오래다. 하지만 반대급부로 우리는 예측하지 못한 일이 발생하는 상황을 더 못 견디고 스트레스를 받게 되었다.


임신과 출산에 관한 일들은 어떨까?

기본적으로 생명 현상은 다양성에 기초한다.

그래서 우리는 다 다르게 생긴 것이다.

진통 및 출산의 과정은 더더욱 산모 및 태아, 두 생명의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진행된다.


사실 임신과 출산에 관한 한 정확히 예측 가능한 것은 애시 당초 없었다.

이는 임신을 하는 것 부터 시작한다.

먼저 생명은 부부가 계획한 때에 자판기 버튼 누른 결과처럼 찾아오지 않는다. 막상 임신을 하고는 안타깝게 유산되기도 하고 (자연 유산은 전체 임신의 20%이고 생리적 유산까지 합치면 50%에 달한다), 갑자기 이른 주수에 양수가 터지거나 진통이 걸려 조산하기도 한다. 출산 과정은 그야말로 천차만별이다. 어떤 산모는 힘주기를 5 번만 하고 아기를 낳기도 하고 어떤 산모는 2시간 이상 힘을 주고도 결국 수술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된다.


Power J 라는 말도 있다. 그러나 계획하는 성향이 강할수록, 임신 기간 동안 마주칠 수 있는 수 많은 예측치 못한 일들이 힘들게 느껴질 가능성이 있다.


아기를 키우는 일은 또 어떤가?

아기가 하는 기대하지 않았던 수많은 몸짓들은 우리를 소리내어 웃게 만드는 원천이다.

사춘기 자녀가 보이는 예측치 못한 행동들은 우리를 소리없이 울게 만들기도 한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서 안다.

계획에 없었던 이 웃음과 울음이 우리의 인생을

서로 위로하고 이야기하며 채우고 있음을.


그런 의미에서 임신과 출산은 '계획대로'보다 '순리대로' 살아가는 인생의 시작점이다.


의사: 진통하다가 수술하는 걸 억울하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반대로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어요.

J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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