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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4 . 양수의 회오리와 불당직

by 오수영

나의 왼손은 산모의 질 밖으로 빠져 나온 럭비공 반구 크기의 양막을 막고 있었고 오른손은 환자 침대를 잡고 있었다. 우리는 수술장으로 향했다. 침대의 앞은 산모의 남편이 끌었고 뒤는 분만장 간호사들이 밀었다.


마취과에 초응급 수술을 알렸고 비록 확정받지 못했지만 양막이 터지기 일보직전이었기에 절차라는 것을 무시할 수 밖에 없었다.

갑자기 소리를 지르며 들어오는, 이 분만 전사들이 더 이상은 놀랍지도 않다는 듯 마취과와 수술 간호파트에서 수술 준비를 서두르는 동안에도 나는 계속 산모의 질 밖으로 튀어나온 양막을 손으로 막고 있어야 했다. 그것도 터지지 않게


자궁수축이 심하게 올 때마다 양수의 압력이 나의 왼손에 전달되는 것이 느껴졌다. 일렁이는 파도가 나의 손바닥을 향해 몰아칠 때 마다 혹시 이러다 양막이 퍽 터지는 것이 아닐지 걱정되었다. 사실 자궁 경부 자체가 많이 열리지 않으면서 양막이 질 밖으로 돌출된 것이기에 여울목 처럼 양수의 물살이 세진 것이었다.


아기는 역아 (엉덩이가 아래로)로 있었고 탯줄은 더 아래에 위치하여 양막이 터지는 순간 가는다란 탯줄들이 우르르 나의 손에 잡히게 될 것으로 우려되었다. 이 생과 사의 경계에 있는 아기의 예상체중은 500 gm에 불과했다.


불룩 튀어나온 양막 아래로 상당량의 핏덩어리가 보였다. 산모의 통증이 극심해지면서 임상적으로 태반조기박리가 의심되었다. 초응급 상황으로 전신마취가 되었고 베타딘 소독액을 들이 부으며 통상적으로 3분 정도에 걸쳐 이루어지는 환자의 복부 소독을 30초만에 마쳤다.


자궁을 절개했을 때는 아기가 아닌 다량의 핏덩어리가 먼저 나왔다. 태반조기박리가 그것도 심하게 생긴 것이었다. 핏덩어리들을 젖히고 조심스럽게 아기를 찾아서 꺼내 나의 두 손으로 가녀린 팔 다리를 가진 생명 덩이를 받쳐 소아과 의료진에게 전달했다. 아기는 감사하게도 미약하나마 한 번의 울음 소리를 우리에게 들려주었다.


수술을 마치고 분만장에 와서 물을 벌컥벌컥 마시고 컴퓨터 앞에 앉아 수술기록지를 마무리 하고 아기의 차트를 열어 상태를 확인하는 일들을 느릿느릿 하고 있는 순간 병동에서 전화가 왔다.

회복실을 거쳐서 올라온 산모가 매우 창백하고 혈압이 떨어진다는 노티였다. 병동에 달려가보니 의식도 흐려지고 있었다. 우리는 다같이 침대를 밀고 환자를 분만장으로 옮겼다. 모니터를 시작하려는 순간 맥박이 거의 만져지지 않으며 환자는 의식을 잃었다.


우리는 원내 응급대응팀을 호출하는 방송을 냈고

많은 의료진이 도착한 후 다시 환자의 침대를 중환자실로 옮겼다. 산모의 팔다리에는 각종 모니터가 달렸고 동맥 및 정맥과 연결되는 여러 라인들이 흉물스럽게 연결되었지만 사실 이들은 생명줄이었다. 우리는 대량 수혈을 진행했고 중환자의학과 의료진의 도움으로 다행히 산모를 온전히 살릴 수 있었다. 의학적으로는 태반조기박리에 따른 심한 응고 장애가 원인이었다.


내가 당직실에 꼬구라진 시간은 새벽 3시 반이었다. 우리는 이런 걸 불당직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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