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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 두 개의 논문이 나온 날

by 오수영

First, do no harm (Primum non nocere) 히포크라테스의 선서에 나오는 말이다.


의사로서 해야 할 일은 먼저 무엇을 하는 것이 라기보다, 해가 될 수 있는 일을 하지 않는 것이다 라는 의미심장한 표현이다. 오늘은 이 문구와 연관이 있는, 내가 관여한 두 개의 논문이 한꺼번에 발표된, 우연치고는 상당히 신기한 날이었다.


가설을 세우고 그에 맞게 적절한 연구 방법을 설계하고 결과를 분석하고 결론을 도출하고 여러 동료 및 석학들의 심사를 받고 수정본을 제출하고 최종 교정을 마쳐야 하는 논문 발표는 연구자로서는 피, 땀, 눈물을 쏟아내는 과정이다. 오늘 발표된 두 개의 논문은 모두 'First, do no harm'의 관점에서 진행한 연구였기에 시작부터 마무리까지 무거운 책임감까지 더해졌다.


첫 번째 논문은 자궁경부봉합수술에 관한 연구였다. 이는 2006년부터 2019년까지 15년에 걸친 우리나라 건강보험공단 자료를 이용하여 유산, 조산 및 사산의 과거력이 없는 단태아를 임신한 초산모 2,896,271명을 대상으로 공단자료 분석의 경험이 많은 본원 역학센터 교수들과 같이 진행했다. 대상군의 특성 상 수술군에서 이미 조산의 상당한 위험군이었을 가능성이 있었기에 수술 후 입원 기간이 길었던 사람은 아예 분모에서 제외했었다. 이 연구는 자궁경부봉합수술군에서 출생아의 장기 결과를 포함하는 세계 최초의 연구이기도 했는데 출생아의 평균 추적 기간은 10.4년이었다. 연구의 결론은 유산, 조산 및 사산의 과거력이 없는 단태아를 임신한 초산모에서의 자궁경부봉합수술은 출생 시 신생아의 체중을 보정하고도 불량한 장기 예후와 연관될 수 있기에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연구의 계획부터 오늘 최종적으로 이 논문이 PubMed에 뜰 때까지의 기간은 4년이 걸렸다.


두 번째 논문은 자궁선근증수술에 관한 연구였다. 자궁선근증수술 후의 임신에서 자궁파열 및 심한 유착태반이 있었던 총 19례의 증례를 9개의 대학병원에서 수집하여 정리한 것이었고, 한글 논문으로 발표했다. 결론은 자궁선근증수술이 과연 임신 예후를 향상시키는지에 대한 근거가 아직 확립되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가임기 여성에서 자궁선근증수술은 매우 신중하게 고려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연구는 작년 12월 내가 대한자궁근종선근증학회에 강의를 한 것이 계기였다. 백문(百聞)이 불여일견(不如一見) 이기에 당시 청중들에게 실제 사례들을 보여주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에 산과 교수들에게 연락하여 해당 증례들을 모아서 정리했다.


두 논문의 주제였던 자궁경부봉합수술과 자궁선근증수술은 공통된 특징과 불편한 진실을 가지고 있었다. 첫번째는 의사에 의해서 수요가 창출될 수도 있는 수술이라는 점과 두번째는 우리나라에서 외국보다 현저히 많이 시행되고 있다는 점이었다. 예를 들면 자궁경부봉합수술의 경우, 2018 년 기준 우리나라에서 자궁경부봉합수술은 출생 신생아 1000명당 13.5건이 이루어진 반면 (출처: 보건의료빅데이터개방시스템) 같은 해 일본은 7.6건, 호주는 5.0건, 영국에서는 각각 3.7건의 수술이 행해졌다. (출처: 조혜정 외. 국가데이터베이스를 이용한 4개국의 조산율 및 자궁경부봉합수술률 비교 연구. 2021 대한산부인과학회 발표)


오늘 저녁 나는 이 두 개의 논문을 주변의 산부인과 동료 및 후배들에게 알렸고 두 번째 논문인 자궁선근증수술 후 자궁파열 대한 연구 결과를 소개하는 글을 간단히 정리하여 블로그에 업로드 한 후, 방에서 나와 병원 주차장으로 향했다. 저녁 8시가 넘었는데도 아직 한창인 푹푹 찌는 더위 속에 무거운 듯 가벼운 듯한 발걸음을 한 발짝 한 발짝 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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