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1940년 9월 24일 평안도의 정주라는 곳에서 태어났다.
정주는 김소월 님 등 유명한 문인들이 많이 나온 곳이라고 하셨다.
엄마의 아버지는 일제시대 경찰이셨기에 엄마의 가족은 1945년 해방 이후 남쪽으로 이동해야만 했다고 하셨다. 주로 밤시간을 통하여 피난했고, 임진강을 건너 서울에 정착하여 살았는데, 이 때 외할아버지는 다시 남쪽의 경찰로 지내시다가 1950년 6.25 전쟁의 참전 용사로 일하셨다고 한다.
국민학교 3학년 때 6.25전쟁을 맞은 엄마 가족은 군인으로 참전한 아버지와 헤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남쪽으로 계속 걸어 25일 만에 서울에서 목포에 도착하였다고 했다. 이동 과정에서 수많은 폭격기가 지나갔는데, 사람들이 몰려 있으면 하늘에서 폭탄이 떨어질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에 폭격기의 소리가 나면 뿔뿔이 흩어져 논, 밭 등으로 들어가 몸을 웅크리면서 무서운 괴음이 지나가기를 기다렸다고 한다. 이 때 엄마 나이는 10세, 지금으로 따지면 초등학교 4학년 어린 소녀가 느꼈을 공포를 나는 감히 짐작조차 할 수 없다.
폭격기가 지나간 후에는 여러 비참한 상황들이 목격되었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어느 엄마가 아기에게 젖을 먹이다가 본인은 폭격을 맞아 죽고, 아기는 살아서 울고 있는 모습이었다고 했다. 당시 피난길에는 모두 가난하고 굶주렸는데, 어떤 아저씨가 쌀밥을 한 번 먹어보았으면 좋겠다라고 말 한 말씀이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고 엄마는 말씀하였다.
위의 이야기는 엄마가 74세 생신 모임에서 해 주신 이야기였다. (나의 엄마는 현재 85세시다.)
엄마는 또 1957년도에 엄마의 언니에게 쓰신 편지를 보여주셨다.
18세, 대학에 들어가기 전인 엄마의 손 편지에 적혀 있는, 엄마의 성실함과 정직함이 묻어나는 글씨체를 보면 왠지 마음이 짠하다.
'내 생각에는 담임 선생님을 잘못 만난 것 같에요' 라는 표현에서는 솔직함이
'져는 그 딴 선생만 보면 선생 취급을 하지 않아요' 라는 문장에서는 엄마의 용기가 멋지다 가도
괄호 안에 (마음속으로) 라고 적어 놓은 부분을 보면 웃음이 나기도 한다.
또 군데 군데 맞춤법이 틀린 부분이 특히 재미있다.
평생 기억하고 싶은 엄마의 편지를 한 자 한 자 마치 18살의 엄마가 된 것처럼 (옮겨) 적어본다.
정화 언니 앞
오늘 학교 갔다 오니까 언니의 편지가 와 있어서 참 반가웠읍니다.
전번에 큰 언니를 통해서 여러 옷가지들을 받었지요.
대부분이 제 옷으로 응용하는데 알맞았어요.
동생들에게 맞는 것이 없어서 참 섭섭하더군요.
인제 또 보낸다니 기다리게 됩니다.
집은 전과 다름 없이 그 집에서 장사를 하고 있지요.
하나도 발전이라는 것은 볼 수가 없어요.
어찌보면 어머님만 그저 고생하시는 것 같애요.
저는 오늘 부터 6일간 시험을 치는데 잘 할 수 있을른지 모르겠어요.
올해는 우리 학교가 개교 50주년이 되는 해라 굉장히 할 예정인가봐요.
저는 고 1 때부터 합창부라는 덕택으로 음악 점수 (95)가 참 좋와요.
그런데 한 가지 탈인 것은 수영을 할 줄 모르는 거예요.
요새는 체육 시간 대신에 수영을 하는데 그것으로 시험을 본다고요.
그리고 저는 내 생각에 담임 선생님을 잘못 만난 것 같에요.
그분은 돈에 대해서 머리를 굽실굽실 하는 사람 같얘요.
저를 보면 괜히 아이들 있는데서 저의 가정형편이 어떻느니 하고 막 제가 얼굴을 들 수가 없어요.
그렇지만 저는 그것을 꾹 참고 견디는 수밖에 없어요.
하루속히 집안이 안정이 잡혔으면..
져는 그딴 선생만 보면 선생 취급을 하지 않어요(마음 속으로)
벌써 2학년 중간이 되었어요.
내년의 대학은 무순 과를 가야될지 참 정하기가 힘들어요.
희망도 아직 확실하지 않고, 이만 쓰겠습니다.
영화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