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셀레이터를 밟고 있는 오른쪽 다리가 떨렸다. 다리가 떨리고 있다는 사실을 안 내 마음이 놀랄 지경이었다.
만삭에 제왕절개수술을 받은 적이 있던 A는 경부 길이가 짧다고 타병원에서 자궁경부봉합수술을 받았지만 조산이 우려된다며 집에서 거리가 상당히 있는 우리 병원으로 진료를 받으러 왔다.
첫 진료에서 나는 심한 전치태반을 확인하고, 경부 길이가 문제가 아니라 심한 전치 태반으로 인한 대량 출혈이 더 걱정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 예측만 맞았을 뿐, 이후 나의 모든 예측과 기대는 정확하게 빗나갔다.
그녀는 콸콸 쏟아지는 정도의 질출혈로 이미 임신 34주 부터 입원해 있었다. 36주가 넘어가며 진통이 생겨 오늘 금요일 오전 응급수술이 결정되었다. 비록 출혈에는 취약해도 산모가 마른 편이었기에 제왕절개 자체는 쉬운 수술이 될 양이었다. 특히 그녀의 얇은 피하 지방층은 내 어깨의 피로도를 낮추어 주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그건 잠시의 기쁨이었고 복막을 여는 순간, 나의 예측이 깨지면서 한숨만 나왔다. 대개 1번의 제왕절개수술로 복강내 유착이 심하게 생기는 경우는 거의 없는데 복막과 장간막 그리고 자궁이 모두 붙어 있는 상황이라, 일단 나는 첫번째 예측에서 패배한 셈이었다.
나의 두 손은 이미 패배한 내 머리의 지배를 받지 않았고, 아기가 나올 만큼 만의 수술 시야를 겨우 확보하여 메두사의 머리카락 같은 혈관이 드글거리는 전치태반을 가르고 아기를 꺼냈다.
비록 출혈은 많았지만 다행히 유착태반이 심하지는 않았기에 수혈과 자궁수축제 치료를 병행했고 수술 후 빨리 영상의학과에서 시행하는 자궁동맥색전술을 하는 것으로 계획했다. 내가 수술하는 동안 천사처럼 쓰윽 나타난 성지희 교수가 도와준 덕분에 모든 일이 일사천리로 빨리 진행되었고, 내가 위에서 피부를 봉합하는 동안 성교수는 아래에서 자궁강안에 풍선을 넣어 압박하는 시술을 3분 만에 끝냈다. 수술장에서 환자의 혈압은 50 mmHg 정도까지 저하되었다.
자궁동맥색전술도 30분 이내에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면서 다행히 이제 환자의 활력 징후는 안정되고 산모의 혈색도 돌아온 상황이 되었다. 그래, 자궁을 떼기엔 젊은 나이였기에 이 훌륭한 보존적 치료로 마무리되었다는 사실에 우리 팀은 모두 기뻐했다. 오후 외래에 40명이 넘는 많은 산모를 진료하고 병실로 가서 A를 살피면서 보호자에게 그래도 자궁동맥색전술이 잘 되어 다행이다 라면서 겉으로 안심시켰고, 나도 속으로는 이제는 괜찮겠다고 판단했다.
기존의 났던 실혈양을 보충하기 위한 추가 수혈을 지시하고 나는 방에서 밀린 일을 정리하고 있었는데, 취프 전공의에 전화가 왔다. 내 회진 이후 다시 산모의 혈압이 떨어지고 상태가 안좋아져 추가 출혈이 있는지 CT 검사를 해보겠다는 것이었다. (자궁동맥색전술 만으로 치료가 완료될 것이라고 예상했던 나의 예측이 또 틀렸다.) 다행히 CT 검사에서 추가적인 출혈이 없음이 확인이 되었고 수혈 이후 환자의 활력징후도 안정되었다는 연락을 받은 저녁 7시에 나는 집으로 출발하면서 이제는 다시 병원에 불려나올 일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2025년의 마지막 날, 다행히 가족이 같이 저녁식사를 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짐에 기뻐하며, 냉장고에 남아 있던 음식들을 재고 정리하면서 (그래도 밥은 새로 했다.) 마지막에 따뜻한 차로 호화로운 디저트 타임을 갖는 순간 병원에서 또 전화가 왔다. 산모의 혈압이 갑자기 70mmHg으로 떨어졌고 현재 피를 짜주고 있는 수준으로 매우 불안정한 상황이며 결국 자궁적출술이 필요하겠다는 취프 전공의의 노티였다. 나는 수술을 준비하라고 말하고 바로 병원으로 향했다.
주차장에서 시동을 걸고 악셀레이터를 밟고 있는 오른쪽 다리가 떨렸다. 처음엔 다리에 쥐가 난 줄 알았고 다음에는 날씨가 추워서 그런가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자동차가 따뜻해 지고서도 우측 다리의 진동은 지속되었다. 심호흡을 하면서 미주신경 톤은 높이려고 노력했지만 의도할수록 다리의 떨림이 지속됨이 느껴졌다. 에잇 뭐 수술은 발로 하는 것이 아니라 손으로 하는 것이니 상관 없겠지 라고 생각하면서도 마음속으로는 이 마른 여성이 혹시 내가 도착하기 전에 아니면 도착한 후에라도 수술장에서 과다출혈로 인한 심폐정지 (cardiac arrest)가 나면 어쩌나 하는 걱정되는 마음이 스멀스멀 기어 올라왔다. 그 동안 수많은 고위험 환자와 과다출혈 환자를 봐왔건만 나의 잠재 의식은 익숙해지지 않는 것이었을까? 아니면 이 산모가 직원 가족이라서 더 신경이 쓰였던 것일까? 그래서 내 다리가 떨렸던 것일까? 생명을 살리는 일에는 국경이 없는 것이 아니라 익숙함이 없는 것이다라는 말을 나의 머리가 했다.
이런 생각 속에 병원에 왔고 수술장에 도착했을 때에는 마취과의 도움으로 그래도 혈압은 90 mmHg정도까지 올라왔고 맥박도 120-130 회 정도로 나쁘지 않았다. 나는 맥박 수가 160회를 넘어가는 상황에서 배를 열었던 일, 수술장이 아니라 중환자실에서 대량 출혈되는 산모의 배를 열었던 일들을 생각해냈다. 2025년 밤 10시 10분, 수술이 시작되었다. 약 반 나절 만에 다시 열개된 복강 속에서 흐물흐물한 자궁이 야속하게 관찰되었다. 약 1년 전 내가 '헤어질 결심'을 했던 전공의들이 차분하게 (그리고 고맙게도 잘) 수술을 assist했다. 대량 출혈의 원인이 된 자궁이 떨어진 것은 밤 11시경이었으나, 대량 출혈로 인한 응고장애가 온 상태에서 시작되는 고된 지혈 작업, 즉 피와의 끈질긴 싸움은 이제 시작이었다.
오랜만에 가족과 같이 한 저녁 식사 시간에 아이들에게 "엄마는 올해도 제야의 종소리 못 듣고 잘 것 같아요" 라고 말했었는데 (원래 저녁 잠이 많은, 아침형 인간이라서 일찍 잠자리에 드는 편이다.) 결국 나는 예상하지 못한 피와의 싸움속에서 수술장 15번 방에서 2026년 새해를 맞이하게 되었다. 새벽 1시 반 쯤 집에 도착하여 남은 새우깡 반 통과 캔 맥주를 같이 하며 전민철님의 발레 영상을 보면서 나의 심신 특히 나의 우측 다리를 위로하고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