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컨을 끄고, 나를 켠 날

이불 밖은 위험하지만, 이불속은 더 위험하다

by Sospira

3일 연속으로 틀어 놓은 에어컨이 부담스러웠던 걸까.


공교롭게 날씨는 유독 더웠고,

의도치 않게 백수 생활을 이어가던 나는

내 감정이 어지럽지도, 혼란스럽지도 않다는 듯

어쩌면 온몸으로 부정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래, 에어컨을 이렇게 오래 켜면 공기가 안 좋아질 거야.

몸에도 안 좋고... 잠깐 꺼두자.

몇 시간쯤은 에어컨도 쉬게 해 줘야지.

정말 전기세 때문에 그런 건 아니야.

건강이 중요한 거지. 그렇고 말고.’


....라고 말했지만,

건강도 걱정이고, 기계도 걱정이고,

사실은 전기세가 제일 걱정이었다.


재정적으로 쪼들리는 ‘백수’라는 타이틀 아래,

나는 돈에 관해서만큼은 민감해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민감함이,

감정을 가볍게 지우고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습관적으로 감정을 외면하는 중이었다.


‘그래, 이렇게 더울 바엔 그냥 움직이자.

땀 날 바엔 반찬 만들고,

세탁기도 돌리고,

시원하게 샤워까지 하자.’


별거 아닌 일들이

이젠 마음먹고 해야 가능한

‘작전’이 되어버렸다.


기본생활조차 내가 결심하지 않으면

진행되지 않는 상태.


무기력은 그렇게

내가 모르는 사이

깊숙이 찾아오고 있었다.


푹푹 찌는 무더위 때문일까?

아니면,

내 마음이 나 자신에게조차 외면당하고 있어서일까.


무엇부터 바로 잡아야 할지 잘 모르겠는 하루.


그냥 나는 혼자 속으로 생각했다.

‘그래, 그냥… 더워서 그런 거다.’

그 핑계를 빌어 집안일 ‘3단 콤보’를 해낸 나를 칭찬해 본다.


무기력하게 하루를 보내지 않았다는 이유 하나로

스스로를 기특하게 여기며,

조금은 어두운 동굴에서 나를 끄집어내기 위해

부단히 애써본다.


아니, 어쩌면 무의식 중에

이미 알고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이대로 고요함에 중독된다면,

다시 세상으로 나올 힘을 잃게 될지도 모른다는 걸.

무섭고 덥고, 복잡한 바깥세상에

절대로 다시 나오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걸.


그래서였을까.

어쩌면 나는, 본능적으로

‘열려라, 참깨!’를 외치며

내 안의 동굴문이 열리기를

발버둥 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건 아무도 모르는

내 마음의 치열한 움직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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