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을 피해 나를 숨기고 있는 시간
모든 감정이 한꺼번에 휘몰아칠 땐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피로감이 몰려온다.
몸도, 마음도 축 늘어진다.
짧으면 며칠,
길어지면 몇 달은 지나야
겨우 조금 가벼워진다.
아니, 사실은
감정이 해소되고,
의구심이 풀리고,
엉켜 있던 색색의 실들이
조금씩 자리를 찾아야
비로소 마음이 편안해진다.
하지만 그런 경우는...
복불복이다.
운이 나쁘면
그 실타래의 매듭을 풀다가
되려 더 아파질 때도 있다.
애써 찾아낸 실마리가
더 깊은 상처의 시작이 되기도 하니까.
이미 지나간 줄 알았던 말과 표정이
다시 떠오르고,
그 감정은 또다시 나를 덮쳐온다.
그럴 때면,
마음은 꼭 구겨진 종이 같다.
한 번보다 두 번,
두 번보다 세 번.
점점 구겨질수록 더 작고, 더 진하게.
마음은 빈틈없이 단단하게 뭉쳐진다.
그렇게 생겨난 마음의 공들이
하나, 둘, 셋...
내 안에서 굴러다닌다.
내가 활기찰 때는
그 공들이 탱탱볼처럼 튀어 오른다.
통통통.
사람 말을 잘 알아듣고,
의사소통에도 문제없고,
심지어 통역이라도 해주듯
사람 마음을 알아차린다.
적극성과 오지랖이
통통통 튀어 다닌다.
하지만 그 공들이 지칠 때면,
통통 튀던 마음은 가라앉는다.
점차 구석 어딘가로 굴러가,
조용히 숨죽이며
그곳에서 편안한 척,
나도 모르게 자리를 잡는다.
가끔 나는,
감정을 피해 나를 숨기고 있는 시간 속에 있다.
그저 조용히 굴러다니는 마음의 공을
바라만 보고 있는 중이다.
말하고 싶지 않은 날엔,
그 공들 때문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