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일도 없던 우리의 밤

말없는 마음이 전하는 것들

by Sospira

겉보기엔 조금

불량스러워 보이는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는,

내 가장 친한 친구였다.

서로의 집을 드나들며 잠도 자고

늘 함께 다녔다.


표현에 서툰 아빠는

마음속에 궁금한 게 많았지만,

까칠한 내 성격 때문에 쉽게 묻지 못하셨던 것 같다.


당시 나는 20대 초반.

법적으론 성인이었지만,

실제로는 아슬아슬하게 어른과 아이 사이를 오가는 시기였다.


아빠는 늘 뭔가 마음에 걸리는 듯했지만

크게 화를 내지는 못하시고,

속으로 꾹꾹 참으셨던 것 같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와 밤늦게 집에 들어왔을 때

아빠가 우리를 불렀다.

우린 무의식적으로 둘 다 무릎을 꿇고 앉았다.


왜 이렇게 늦는지,

왜 자꾸 밤늦게 다니는지를 물으셨다.

그때는 몰랐다.

그저 “왜 이렇게까지 하시지?”

억울하고 답답한 마음이 컸다.

괜히 혼나는 느낌, 억울함이 먼저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아빠의 그 목소리를 다시 떠올릴 때면

그건 혼남이 아니라 ‘걱정’이었고

그 걱정은, 우주처럼 크고 따뜻한 사랑이었다는 걸

이제야 알 것 같다.


사랑은 때때로

그 사람의 방식으로밖에 표현되지 못한다는 걸

이제야 조금 이해하게 되었다.


그날의 아빠 목소리는 딱딱했지만,

그 말들 사이사이에 감정들은

내 걱정과는 다르게

솜사탕처럼 포근하고 따뜻하기만 했다.



사실, 우리는 별거하지 않았다.

24시간 카페에 앉아 수다를 떨고,

가끔 노래방에 가고,

배가 고프면 밥을 먹고,

다음 날엔 어린이대공원에 가서 동물들을 보고 웃고,

또 카페에 가서 웃고 떠들고..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오늘은 교보문고에 가서

서로 보고 싶은 책을 읽고,

밥을 먹고,

그리고 또 카페에 앉아 수다를 떨다 보니 늦은 거였다.


아빠 입장도 이해는 간다.

매일 늦게 들어오는 우리,

술을 마시는 것 같진 않고,

들어와서도 밤새 잠도 안 자고 계속 떠들기만 하니..

도무지 알 수 없는 두 사람.


우리는 둘 다

계획적인 성격도 아니었고,

솔직히 시간 개념도 거의 없었다.


하지만 가끔 그 시절을 떠올리면

그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존재 자체로 괜찮았던 나”가 생각난다.


낯설고 무서운 어른의 세계 앞에서

우린 말없이 서로를 지지하고,

의지하며 자라고 있었다.


그냥 있는 그대로의 우리가

마음껏 웃고, 떠들고, 그렇게 어른이 되어가던 시간이었다.


그때 나를 지켜준 건

누군가의 조언도, 규칙도, 걱정도 아니었다.

그저 곁에 있어준 친구와

서툴지만 사랑이 가득했던 아빠의 마음이었다.


그 밤은,

아무 일도 없었기에

오히려 더 많은 마음이 오고 갔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그 마음들을 천천히 이해하고,

내 안에 조용히 되새기며

조금씩 더 나를 돌아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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