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정말 우리 탓일까? <1편>

by 장미구락부

우리는 광고영상을 만드는 회사다. SNS나 유튜브에서 가볍게 보고 넘기는 영상부터 IPTV와 지상파 송출용 광고같은 무거운 영상까지 다룬다. 영상쟁이 초짜 시절에는 내가 만든 영상이 TV에 나온다는게 무척이나 신기한 일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심드렁해지더니 요즘같은 때에는 오히려 걱정이 앞설때가 많다.


"저게 소비자에게 잘 먹혀야 할텐데.."


우리의 일은 엑셀과 함수로 대표되는 수치적인 정밀함을 요하는 일반 사무직과는 달리, 프로젝트 진행에 있어 중심자, 혹은 참여자의 직감에 의존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애초에 사람의 감성을 건드리는 일이니 명확하게 프로젝트의 모든 부분을 객관적으로 수치화 하기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물론 요새는 빅데이터니 애널리틱스니 해서 이러한 애매모호한 부분들은 많이 해소가 되고, 어떠한 판단을 함에 있어 훌륭한 근거가 되어주고는 있지만 여전히 많은 영역에서 빠질 수 없는게 이 사람의 '감' 이라는 것이다.


사실 우리의 '감'이라는 것은 의뢰인과의 첫번째 미팅에서 발동한다.


'미안한 말이지만, 당신 이게 진짜 팔릴꺼라고 생각하는 거요?'

(그렇다고 면전에서 대놓고 이런말은 하지 않는다)


그렇다. 정말 저런 생각이 들 때가 왕왕 있는 편이다. 물론 우리도 의뢰인의 상품을 폄훼하고 싶은 생각은 정말로 없다. 상품이야 어떻든 우리가 만들어준 광고를 통해서 잘 팔려야 우리에게 또 영상을 의뢰할 테니까. 그런데 가끔 정말로 있다. '이건 진짜 안될꺼 같은데...' 라는 생각이 드는 상품들이 말이다.


image.png?type=w773 이정도 디자인은 약과다. 난 더 심한 제품도 본 적 있다. 정말로. (출처: 구글 이미지/위키비키)

2년전인가, 코로나 거리두가 한창일 무렵 어느 업체로부터 문의를 받았다. 자기네가 신제품을 개발했는데 런칭을 위한 광고영상을 제작하고 싶다는 것이 요지였다. 미팅을 위해 업체에 도착하니 밝고 산뜻한 분위기의 사무실에서 10명 전후 되어보이는 직원들이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사무실 냄새가 풋풋한게 새로 개업한 업체의 느낌이 났다.

새로 개발하였다는 제품은 친환경 샤워볼이었다. 좋다. 친환경 + 샤워볼은 트렌드에 맞는 괜찮은 조합이다.


그런데..(1)


대표라는 사람이 꺼내보인 제품에서 쿰쿰한 냄새가 났다. 정말 말로 형용하기 어려운.. 그런 쿰쿰한 냄새가. 마치 어릴적 배꼽에 때를 후비다보면 맡을 수 있는(아, 이건 지금도 맡을 수 있긴 하겠구나) 그런 비슷한 냄새가 났다.

그래, 아직 시제품이라 향이 아직 추가되지 않은건가 했지만 이게 완제품이란다. 맙소사.

대표의 변은 이했다. '우리가 샴푸나 비누에서 맡을 수 있는 향이라는 것도 결국엔 화학성분으로 만들기 때문에 친환경을 고수하는 이 샤워볼에 그런 것을 넣을 순 없었다. 냄새가 다소 독특하지만 이것이야 말로 건강하고 진정한 친환경적인 제품이다.' 라고. 인위적인 화학물질을 쓰지 않고 자연적인 재료로 향을 추가 할 수는 없는건가 라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광고제작자 입장에서 완성된 제품을 두고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없는 노릇이다. 일단 알았다고 하고 계약 후 시제품 몇개를 챙겨서 사무실로 돌아왔다.


통상 의뢰가 들어오면 광고 기획이나 구상을 위해서 제품 몇개를 받아오게 된다. 이렇게 받은 제품을 해당 프로젝트를 진행할 팀에 분배하여 이리저리 살펴보고 사용하게 하면서 전반적인 광고의 기획과 영상에 대한 구상을 진행하게 된다.


아무튼 해당 프로젝트를 진행할 팀에게 제품을 나누어 주었고, 나도 호기심에 하나 챙겨서 사용을 해 보았다.


image.png?type=w773 이런 느낌 까진 기대하지 않았다. 다른 샤워볼 업체 의뢰로 진행된 광고영상 스크린샷. 대단히 괜찮은 제품이었다.


그런데..(2)


그래, 냄새가 좀 그렇긴 해도 정말 몸에 건강한 제품이라면야 참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문제는 도무지 샤워볼, 아니 최소한 비누로서 제품의 기능이 있는것인가 의심될 정도로 세정력이 형편없었다. 군대에서 샤워할때 급한대로 써봤던 빨랫비누보다도 더 닦이지 않는다는 느낌이랄까. 게다가 잘 안닦인다는 생각에 힘을주어 문질러보니 제품이 물먹은 석고마냥 걍 바스라지기 까지 하였다. 이건 팔리지 않을.. 아니 팔아서는 안되는 제품이다. 심지어 가격도 비싸다. 두 개 들이 한 세트에 일반 샤워볼보다 배 이상 비쌌다.

다음날 사무실로 출근해보니 다른 직원들도 표정이 나랑 비슷한 생각을 한 모양이었다.


우리 이거 꼭 진행해야 해요?


어쩔 수 없다. 나도 알았다면 계약하지 않았을 테지만, 대표가 돈 욕심에 계약서에 도장찍고 와버려 직원들을 사지에 몰아넣은 처지가 되었다. 아무튼 우리는 영혼을 짜내어 허위광고와 자본주의 사회에서 허용되는 광고적 표현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해야 했었다. 우여곡절끝에 어쨌든 완성. 광고주도 참 만족해 했다.

이후 몇 번인가 해당 업체로부터 제작의뢰를 받았지만 우리는 이를 일정상의 이유로 정중히 거절했다. 아무리 우리 일이 반쯤 사기꾼이라지만 이건 진짜 사기치는거 같았거든.


결론부터 말하자면 해당 업체는 홈택스에 검색해보면 폐업되었다고 표시가 된다. 지금도 영업중인 회사라면 홍보 겸 해서 좀더 좋은 말과 함께 이 글에 영상 링크를 올리겠지만 그럴 수 없는것이 안타깝다. 같이 사업하는 입장에서 폐업이 됐다는게 마음이 아리지만 엄밀하게 말해서 사필귀정이라는 생각이 살짝은 드는 것도 사실이다.


첫 미팅때 우리는 나름대로 이 상품이 앞으로 뜰지 망할지 대충 알아맞추는 능력이 상당한 편이다. 사실 이게 우리가 통찰력이나 직관력이 뛰어나서는 아니고, 워낙에 많은 제품을 접해보고 살펴보고, 그리고 해당 제품에 대한 시장의 반응을 항상 지켜보다 보니 생기는 능력이다. 아마 이런 능력은 다른 광고업계 몸담은 분들도 비슷할 것이라 생각된다.

아무튼 광고인의 신성한 의무는 계약서에 도장을 찍은 이상 아무리 쓰레기 같은 제품이라도 반드시 팔리도록 모든 노력을 다 해야하는 것이다. 마치 수질이 매우 좋지 않음에도 "행님, 오늘 물 진짜 끝내줍니다!" 라고 외쳐야만 하는 어릴적에 잠깐 해봤던 나이트 삐끼 알바처럼, O.J 심슨이 동원한 지구방위대급 변호사들 처럼 말이다.


물론 이러한 신념과는 별개로 쓰레기가 아닌 방사능 폐기물급 제품을 맞이한다면? 미안한 말이지만 그건 제일기*이 와도, 아니 제일기* 할아버지가 와도 안된다. 결론적으로 제품의 흥행을 결정하는 중심자는 광고인이 아니라 소비자에게 있기 때문이다.

안타까운 사실은 대부분의 경우 개발하신분들(대부분의 경우 대표님들)은 고슴도치 자기새끼 생각하듯 이 제품이 시장성이 없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아니, 인지했다면 광고제작 의뢰를 맡기지 않겠지만 말이다. 대부분의 경우 제품의 단점보다는 "이 어마어마한 내새끼가 엄청 잘 팔려서 난 곧 부자가 될 것이다" 라는 장밋빛 미래에 눈이 어두워 현실을 잘 보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안타까운 현실이다.


광고인은 의뢰받은 제품이 최대한 잘 팔릴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하는게 맞다. 대부분의 광고인은 이와 같은 신념으로 일할 것이다. 왜냐? 그래야 계속 우리에게 광고를 맡기거든. 나도 마찬가지다. 사업하는 입장에서 보다 더 대승적인 사명감을 가지면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난 그런 대인배가 되진 못한다. 하지만 대인배가 아니라고 해서 일을 소홀히 한다는 것은 아닌다. 다만 그 이유가 다를 뿐. 광고인이 노력하여 제품을 팔리게 만들고, 의뢰인은 그 결과에 호평하여 계속 광고를 의뢰한다.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진정한 win-win일 따름이다.


image.png?type=w773 그래도 이정도 수준이면 준수한거다. (사실 난 이거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출처:애플>

하지만. 정말 그 제품이 형편없다면. 정말 그 제품은 팔지 말아야 할 제품이라면, 광고 실패에 대한 책임은 누가 져야 할까? 이따금씩 선술한 샴푸볼의 사례처럼, 정말 안될 것 같은 제품을 진행하였다가 가끔 항의전화를 받을때가 있다. 반쯤 한맺힌 광고주의 푸념을 들을 때면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우리가 만든 광고에 대해서 전반적인 통찰이 필요하지 않겠냐고 날선 얘기를 듣는다. 물론 미안한 마음은 들지만 글쎄..


대표님의 제품에 대해서도 한번쯤 통찰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다음 편에서는 제품이 문제가 아닌, 사람이 문제라서 광고가 실패하는 사례를 들어보고자 한다.


<이 글은 과거 본인 블로그에 작성한 글을 현 시점에 맞게 수정하여 업로드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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