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지병이 재발했다

[ 단편소설 연재 ] < 인생 역전 > 유정 이숙한

by 유정 이숙한

영재를 괴룁히는 그림자는 그가 돈을 빌리고 갚지 않은 사채회사였다. 험상궂은 사람을 보내 돈을 갚으라고 종용한다. 사채회사를 생각하니 소름이 끼치는 영재다. 초등학교 밖에 나오지 않은 영재지만 그는 머리 위에 있었다. 10년 전 살던 집에서 주민등록을 옮기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 사채회사에서 채권회수를 위해 예전에 살던 집 주소로 우편물이나 여러 번 갔을 것이다. 또 사람을 보냈을 것을 그는 짐작하고 있었다. 사장이 잘해주는 식품회사로 잘 근무하더니 사채회사에서 찾아오자 단번에 때려치웠다.


언제고 가기만 하면 받아주는 인력사무실. 대체인력 근로자로 일한 지 5년의 세월이 흘렀다. 밤이 깊어가는데 배가 고프니 잠이 오지 않는다. 점심 한 끼는 회사에서 든든하게 먹었지만 아침과 저녁이 늘 부실하다. 쿠키와 컵라면으로 허기를 달랬으나 여전히 허전하다. 속이 비어서 그런지 으슬으슬 한기가 든다. 하얀 쌀밥에 버터와 진간장을 넣고 비벼 먹고 싶다! 편의점에 가려고 주머니를 뒤져보았다. 만 원짜리 3장이 있다. 그는 그대로 주저앉았다. 자킷 속 주머니엔 비상금 20만 원이 들어있으나 하늘이 무너져도 쓸 수 없는 사업자금이다.



이른 아침 출근길이다. 3만 원으로 며칠을 버텨야 하는데 뱃속에서 전쟁이 났다. 그와 공생하는 허깨비들이 장기들을 쿡쿡 찌르며 아프게 꼬집었다. 참을 수 없는 고통은 배고픔이다. 참고 길을 가다 김밥집 앞에서 자동으로 발길이 멈췄다. 소스가 뿌려진 돈가스를 먹고 싶은데 돈이 없다. 꾹 참고 1,500원짜리 원조 김밥 한 줄로 허기를 달래고 인력사무실로 가는 길이다. 갓 구워낸 빵이 살인적인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아부를 떤다. 코를 킁킁 거리며 빵집을 빠르게 지나친다. 회사에서 밥을 식판 가득 퍼다 먹었다. 퇴근 후 집으로 가는 길이다.

갈색으로 구워진 빵이 애원한다. '제발 먹고 가, 돈 벌어서 뭐 해? 잘 먹으려고 돈 버는 거 아니었어?' 구수한 빵 냄새에 머리가 지근거리고 어지럽다. 인력사무실로 들어갔다. 노임을 받으면 맛있는 빵을 사 먹을 거라며 허깨비들을 어르고 달랜다.


치킨집 유리창 밑에 쪼그리고 앉아 통닭 냄새에 취해 침을 질질 흘리며 입맛을 다시는 애완견이 있다. 녀석은 집을 뛰쳐나온 것인지 그 시간이면 어김없이 통닭집 앞을 서성인다. 영재는 동물을 좋아하지 않으나 동질감을 느꼈다. 통닭을 사면 가슴살 한 점 주겠다고 새끼손 걸어 약속했다. 그의 말에 눈으로 대답하는 애완견이다.



그는 예전에 다니던 식품회사에서 찾아왔다. 못 이기는 척 식품회사에 다시 나간다. 사채회사 직원과 마주칠까 봐 한 시간 일찍 출근한다. 회사에 출근하자마자 전용 화장실에 가서 일정을 반납한다. 회사에서 제공하는 믹스 커피 한 잔 마시고 방에서 쪽잠을 잔다. 그는 부지런하고 꾀를 부리지 않고 일을 잘해서 작업반장이 되었다. 오전 휴식시간 졸음을 쫓느라 커피 한 잔 하고 일을 하다 보니 기다리던 점심시간이다. 하얀 쌀밥을 푸짐하게 퍼서 점심을 맛있게 먹고 커피 한 잔 하고 잠시 눈을 붙였다. 오후가 되니 나른하고 졸려서 오후 휴식 시간에도 커피 한 잔, 퇴근하기 전에 한 잔 마시고 버스를 타고 터미널에서 내려 버릇처럼 게임방으로 출근한다.


게임방 사장이 뽑아준 믹스 커피를 홀짝거리며 마신다. 매일 마시는 커피가 예닐곱 잔이다. 밤이면 커피 때문인지 머릿속 독사 때문인지 모르겠으나 아편에 취한 것처럼 머리가 몽롱하다. 거리 가판대에서 신문을 집어간다. 집에 가자마자 신문에서 복권이 당첨되었나 숫자를 맞춰본다. 그는 뒤척이다 새벽 서너 시에 잠든다. 그는 1년 동안 빠지지 않고 출근하다 보니 통장이 두둑해졌다. 인천에 게임기가 좋은 것이 들어왔다는 말에 몸이 슬슬 꼬이기 시작했다. 제 버릇 개 주지 못한단 말인가, 시외버스를 타고 수원역에 가서 전철을 타고 인천에 갔다. 지병이 재발했다. 게임방에서 신이 났다. 그는 작업반장으로 근무하던 식품회사에 장기 결근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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