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아닌 밤중에 날벼락인가

[단편소설 연재] < 인생역전 > 유정 이숙한

by 유정 이숙한

연심의 아버지가 잘못되었는가 걱정되는 영재다. 연심에게 전화를 걸었으나 받지 않는다. 무슨 일일까 불안하다. 연심이 보고 싶어 죽을 것 같은 영재는 신방을 꾸민 집으로 갔다. 마루로 통하는 문이 열렸는데 썰렁하다. 도배하느라 내놨던 냉장고와 세탁기, TV와 이불장 등이 놓였던 자리가 텅 비어있다. 이사를 간 빈집 같았다. 그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는 영재는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멍하니 서 있었다.


담배 한 모금을 빨고 나니 진정되었다. 마룻바닥에는 연심의 발자국과 커다란 발자국이 남아있었다. 부엌에 있던 전기밥통과 주방기구, 그릇들도 사라졌다. 영재는 묘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인기척이 나자 허겁지겁 뛰어나갔다. 키 큰 남자가 서 있는데 집주인이었다. 연심은 아버지가 위독해서 고향으로 내려간다며 월세 보증금을 찾아가고 방을 뺀다며 이삿짐을 싣고 갔다고 말했다. 아닌 밤중에 날벼락인가,



다른 사람이 그 방으로 이사 온다는 말을 했는데 주인의 말이 들리지 않는다. 영재는 그 집을 뛰쳐나왔다. 어디가 어딘지 방향 감각이 없다. 연심이 괴한에게 끌려간 걸까, 그는 안면도로 출발하기 위해 인출기에 카드를 넣었다. 현금서비스가 되지 않는다. 연심의 아버지 치료비에 쓰라고 현금서비스를 한도껏 뽑았다. 그의 수중에 남은 돈은 오만 원이 전부다. 터미널로 터덜터덜 걸어갔다. 터미널 의자에 앉아 줄 담배를 피우고 있는데 배속에서 전쟁이 났다. 이 와중에 뭔가 넣어달라는 허깨비가 한심하다. 누군가 영재의 등을 두드렸다. 돌아보니 송가였다. 송가는 지난번에 빌려간 돈이라며 삼십만 원을 내민다. 송가가 고마운 영재다.


그는 안면도로 가는 직행버스에 올라탔다. 바나나우유와 샌드위치로 허기를 달랬다. 연심의 큰언니가 운영하는 식당 문을 열고 들어갔다. 영재는 연심의 언니에게 넙죽 인사한다. 언니는 몹시 당황한 얼굴이다. 연심이 조금 전 결혼할 사람과 다녀갔다고 한다. 영재의 사랑이 여기서 끝인가? 온몸에 맥이 풀리고 다리가 풀려서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멈추려던 심장을 억지로 돌리느라 가슴이 뻐근하고 저리다. 상황을 모르는 언니는 그의 행색을 훑어본다. 그는 천 길 낭떠러지에 알몸으로 추락하는 기분이다. 식당을 나와 시외버스터미널로 갔다. 터미널 다방에 들어갔다. 그때 급히 뒷문으로 빠져나가는 남녀의 그림자가 있었지만 보지 못했다.


그는 커피잔도 들지 못할 만큼 맥이 풀렸다. 다방 안 구석진 테이블에서 카드놀이를 하는 사내가 있었다.

그는 초점 없는 눈으로 그를 멀거니 바라본다. 사내와 눈이 마주치자 카드게임을 배우겠냐고 물었다. 영재가 카드 돌아가는 것을 이해하자 천재라고 칭찬했다. 칭찬을 들으니 아픈 심장이 돌아가고 기분이 풀렸다. 포커 삼매경에 빠졌다. 여러 판을 영재가 이겼다. 게임은 돈을 걸어야 묘미가 있다. 영재는 10만 원을 잃고 나서 그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연심의 그림자는 어디에도 없다. 결혼을 빙자한 사기였지만 영재는 믿지 않는다.


커피숍 유리창에 다른 사내의 품에 안긴 연심의 실루앳이 보인다. 헛것인지 환상인지 알 수 없다. 잃어버린 돈보다 배신감이 더 컸다. 그는 앞으로 여자 따윈 믿지 않을 거라고 맹세한다. 꼬박 하루를 굶었다.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이천만 원도 날렸는데 육천 원짜리 순댓국이 대수인가, 하얀 쌀밥을 순댓국에 말아먹었더니 기운이 난다. 밥을 먹는데 TV 화면에 사채광고가 들아왔다. '이거다!'싶었다. 그의 눈이 빛난다.


연심에게 잃은 돈을 찾기 위해 사채 백오십만 원을 차용했다. 일주일도 되지 않아 그 돈이 흔적 없이 사라졌다. 인생 한 방이라며 이백만 원을 사채회사 다른 곳에서 빌렸다. 그 돈도 며칠 되지 않아 그의 품을 떠났다. 사채 이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그는 살고 있던 집을 나와 외딴곳에 있는 큰집 형네 빈집으로 옮겼다. 그가 걸음을 떼어놓을 때마다 습관처럼 뒤를 돌아본다. 누군가 그를 미행하는 그림자가 있었다. 아침과 저녁에도 그림자는 따라다닌다. 그는 몸에서 식은땀이 났다. 그의 장기를 떼어갈 것만 같아 불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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