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편소설 연재] < 인생 역전 > 유정 이숙한
영재는 옥탑방으로 올라갔다. 하루 동안 열심히 일하느라 흘린 땀방울을 따뜻한 물로 씻어내고 머리에 앉은 먼지도 샴푸를 넉넉히 풀어 깔끔하게 감아준다. 그는 등과 배가 바짝 들러붙었다. 허깨비들이 요동을 칠 시간이다. 쌀밥 대신 컵라면으로 배를 채우고 담배를 물고 나와 오가는 여자들의 실루엣을 물끄러미 훑어보다가 오락실로 출근했다. 오락실 사장은 영재에게 커피를 타준다. 오락에 몰두하니 하루 피로가 날아갔다. 그가 쌀밥에 목을 매는 이유가 있다. 어린 시절 영재는 매일 까칠한 보리밥을 먹는 것이 싫었다. 쌀밥이 그리웠다.
인삼 농사를 짓는 아버지는 얼굴 보기가 힘들었다. 어머니가 땡볕에서 힘들게 농사지은 농작물을 돈으로 바꿔 허리춤에 차고 인삼밭으로 가는 아버지가 미웠다. 아버지는 인삼밭에 매년 큰돈을 들이부었다. 쌀농사를 지어도 열두 식구가 쌀밥은 구경하지 못한다. 아버지는 방앗간에서 방아를 찧어 나온 쌀을 보리쌀과 바꾼다. 쌀 두 가마니를 보리쌀 5 가마니와 바꿨다. 나머지 쌀은 돈으로 둔갑하여 아버지 주머니로 들어갔다. 그러니열 식구가 일 년 열두 달 꽁보리밥을 먹을 수밖에.
구두공장을 하는 큰누나가 쌀밥이 먹고 싶으면 서울로 오라고 했다. 쌀밥 소리에 눈이 번쩍 뜨인 영재는 중학교 진학은 관심이 없었고 쌀밥에 귀가 솔깃했다. 초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서울 누나 집으로 갔다. 하얀 쌀밥에 버터를 반 스푼을 묻고 간장을 넣고 비볐는데 꿀맛이었다. 매형이 말했다.
“처남 매일 쌀밥을 먹으려면 구두 짓는 일을 해야 해!”
영재는 쌀밥을 매일 먹기 위해 구두 깔창에 본드를 발라 뜨거운 불을 쏘여 구두 밑창에 붙였다. 타고 난 손 감각이 있어서 일을 잘한다고 매형이 칭찬했다. 꼼꼼하게 일을 해서 칭찬을 받으니 기분 좋은 영재다.
소년 영재는 구두 짓는 일이 즐거웠다. 한 달 일하고 윤기가 흐르는 쌀밥을 먹고 잠을 재워주고 용돈도 받았다. 빠른 템포의 신나는 음악이 그의 영혼을 흔들었다. 기계에 동전을 넣고 가상세계로 여행을 갔다. 가상세계지만 자동차운전이 재미있다. 길을 가다 빠른 템포의 음악이 나오면 걸음이 멈춰진다. 또래 아이들은 중학교에 다니는데 쌀밥을 먹으니 부럽지 않았다. 쉬는 날 남산 전망대에 올라가 서울 시내를 내려다보니 판잣집도 많고 기와로 지은 부잣집과 아파트도 많았다.
그는 서울역에서 기차를 타고 인천항과 연안부두에 갔는데 별천지였다. 좋아하는 핫도그와 풀빵도 사 먹으며 즐거웠다. 가는 곳마다 빠른 템포의 음악이 나오는 오락기가 있다. 가상현실에서 자동차 운전을 하니 즐거웠다. 윤기 나는 하얀 쌀밥을 배 부르게 먹고 일하고 퇴근하면 오락실에 가서 놀았다. 그의 기억 장치에 오락실은 즐거운 장소였다. 빠른 템포의 음악이 그의 영혼을 흔들었다. 구두 밑창에 본드를 붙이는 일도 능숙하다.
고향으로 내려가서 육 개월 단기병으로 군 복무를 했다. 미군 부대에서 먹은 햄버거에 반했다. 영어 철자나 단어는 몰라도 대충 알아들었다. 제대하고 서울로 올라갔다.
구두 짓는 일을 십 년 가까이하다 보니 손바닥이 뜨겁지 않으나 엄지의 지문이 닳아서 없어졌다. 통장에 돈이 모아지고 구두 짓는 일도 잘했다. 예기치않게 건강하던 매형이 위암으로 세상을 뜨자 구두공장이 문을 닫았다. 누나는 수척해져 갔다. 빈둥빈둥 놀며 쌀밥만 축낼 수 없어 낙향했다. 보리밥이 먹기 싫은 영재는 강 건너 외가로 갔다. 자동차회사 하청 회사에 취직됐다. 쉬는 날 게임방에 가고 쌀밥에 버터를 넣고 비벼 먹으니 마냥 행복했다.
회사가 바다 건너 충청도 D군으로 이사했다. 깜찍한 연심이 영재의 식판에 고기와 쌀밥을 듬뿍 얹어줬다. 연심을 보기 위해 점심시간이 기다려진다. 일을 잘해서 작업반장이 되자 신용카드도 생기고 핸드폰도 샀다. 쉬는 날은 게임을 한다. 게임을 좋아하는 부서원들이 늘어났다. 3년 가까이 직장을 다니다 보니 통장에 돈이 모아졌다. 아버지가 하늘나라로 떠났다. 어머니에게 아버지가 유산으로 남긴 인삼밭 이야기를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