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편소설 연재 ] < 인생 역전 > 유정 이숙한
시외버스가 왔다. 송가가 버스에 오르고 영재도 버스에 올라 송가 옆자리에 앉았다. 버스는 과천을 지나 쭉 뻗은 도로를 달려갔다. 영재가 눈을 비비며 하품을 늘어지게 하자, 입 안에 갇혀있던 오물이 썩는 역한 냄새가 진동했다. 송가가 오만상을 찌푸린다. 영재는 소풍 가는 아이처럼 흥분된 얼굴이다. 버스에서 내려 시내버스를 갈아타고 몇 정류장 되지 않아 버스에서 내렸다. 영재는 초보 커플 존으로 들어갔다. 출발을 알리는 호각소리와 함께 고은 모래가 깔린 트랙을 맨발로 달리는 영재다. 노란 모자와 까만 모자, 분홍색모자, 노란색과 하늘색이 섞인 모자를 쓴 선수들이 결승선을 향해 돌진했다. 말발굽소리와 모래바람, 사람들의 함성으로 경마장 안은 사람들의 열기로 가득 찼다.
영재의 심장은 구름 위에 떠 있다. 광장의 시계탑은 재각 거린다. 송가의 흑마가 영재의 백마를 앞질렀다. 영재가 탄 백마는 2등, 송가가 탄 흑마는 1등을 했다. 1등을 할 거라고 잔뜩 기대한 영재는 허탈하다. 송가는 기분이 째졌지만 애써 감추고 있다. 영재는 5만 원의 베팅으로 만 원을 환수했다. 목이 칼칼했다. 따끈한 어묵 국물을 마시고 긴 저에 꽂은 어묵을 파간장에 찍어먹는다. 승자의 흥분이 가라앉는 송가는 숨소리가 거칠다.
몸집을 잔뜩 부풀린 핫도그가 헤엄쳐 올라오자 케첩을 바르더니 핏기 없는 영재의 입으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영재는 출근길에 마트 자판기에서 캔콜라를 뽑아 몸 안에 웅크리고 있는 어린 독사의 목을 축여줬다. 회사에 출근한 영재는 백마를 타고 작업장 안을 달렸다. 옥탑방에 올라가 눈을 감고 있어도 백마는 쉬지 않고 천장 위를 내달린다. 휴일에 달다방 카운터에 올티켓비 12만 원을 주고 영미의 시간을 빌려 경마장에 갔다. 여자 앞이라 없는 척하기 싫은 영재는 오천 원짜리 마권을 6장 구입했다. 맘에 드는 말을 장바구니에 담고 응원한다. 달리는 말발굽소리와 모래바람을 타고 날아온 영미의 향수냄새로 황홀경에 빠친 그였다. 3만 원 베팅으로 오천 원을 환수했다. 영미와 함께 돈가스도 먹고 몸속에 웅크린 독사에게 콜라를 먹였다. 공원을 빠져나와 택시를 타고 대공원으로 갔다. 파충류 관에 가니 영재의 머릿속에 든 독사가 빠져나가더니 구렁이와 알 수 없는 말을 주고받더니 영재의 머릿속으로 돌아왔다.
새벽 2시. 영재는 이리저리 TV채널을 돌리며 뉴스를 보고 또 봐도 잠이 오지 않는다. 뒤척이다 잠깐 잠이 들었는데 창문이 환하다. 읍사무소로 가는 길에는 개나리가 활짝 피어 방긋 웃으며 기지개를 켜고 있다. 쌍봉산 나무들 사이로 진달래가 함빡 웃음을 짓는다. 봄이 왔지만 영재의 방은 음산한 겨울이다. 우울에 갇혀있다. 우기의 한기보다 더한 냉기가 가슴을 파고든다. 가슴속 쌓인 서러움이 밀물처럼 밀려온다. 그는 담배 마지막 남은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의 머릿속에는 독사가 살고 가슴속에 사는 허깨비들이 담배연기를 밝힌다. 그가 연기를 들이마실 때마다 허깨비들이 배에 남아있는 산소를 한 움큼씩 훔쳐갔다. 허깨비들은 등과 배가 달라붙은 뱃속을 헤집고 다녔다. ‘꾸르륵꾸르륵’ 폭탄이 터지고 ‘쪼르륵 쪼르륵, 핑핑’ 총알이 날아갔다. 허깨비들은 비인 뱃속에 낫이랑 죽창을 들고 침묵을 지키고 있는 장기들을 사정없이 찔러대서 참을 수 없는 영재였다.
다섯 살 영재는 흉년으로 배를 채우지 못한 어머니의 빈 젖꼭지를 빨았다. 죽어라 빨아도 입에 들어오는 것이 없어 울음이 터졌다. 그때 벌판을 헤매던 허깨비가 그의 몸속에 들어왔다. 허깨비는 쌀밥을 좋아한다. 뱃속 음식물이 고갈되자 심장을 돌리는 기관들이 지직대며 삐거덕 거린다. 어린 독사가 시커먼 혀를 날름거리며 윗목에 놓은 컵라면을 쏘아보았다. 그는 빠른 동작으로 컵라면을 뜯었다. 복도 끝에 주방으로 가서 냄비에 불을 붙이고 물이 끓는 동안 주방 옆 공용화장실에서 방광을 비워냈다. 솟구치는 물방울을 컵라면 용기에 담았다. 영양을 생각해서 계란 하나를 냄비 손잡이에 톡톡 쳐서 컵라면 안에 털어 넣고 뚜껑을 덮어 방으로 들고 간다.
** 유정 이숙한 작가가 드리는 말씀 **
소설의 시대 배경이 2012년이라 괴리감이 있으니 이해하시고 읽어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