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 인생 역전 > 유정 이숙한
영재는 쌀밥을 구하러 마트에 갔다. 대체용역으로 일하고 노임도 받았으니 자축하기로 했다. 가슴에 이글대는 열을 재우기 위해 초코 알갱이가 박힌 아이스크림 한 통과 주식인 컵라면을 종류대로 담았다. 매대 위에 나란히 놓인 신제품들이 느끼한 웃음으로 유혹한다. 신제품 컵라면 세 개와 대서양 넓은 바닷속을 헤엄쳐온 참치통조림과 장조림 캔도 담았다. 마트를 나와 편의점에서 삼각 김밥 두 개를 담고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아이스크림을 뜯었다. 큰 수저로 푹푹 퍼서 먹다 보니 아이스크림 한 통이 게눈 감추듯 사라졌다. 일회용 믹스 커피로 입가심했다. 배가 부르니 노곤해진다. 방바닥에 벌렁 누워서 TV를 시청하다 잠이 들었다.
허깨비들이 떠드는 소리에 놀라 잠이 깨었는데 오후 6시다. 익숙한 동작으로 짬뽕 컵라면에 뜨거운 물을 부었다. 삼각 김밥을 먹고 짬뽕 국물을 후루룩 마시고 면치기로 한입에 빨아들였다. 40대인데 치아가 몇 개 없어 잇몸으로 질겅질겅 거리다 삼켰다. 몇 년 전까지 이가 좋아서 땅콩이랑 오징어도 잘 씹던 영재였으나 어금니를 채워 넣을 돈이 없다. 비상금으로 경마장이나 오락실에 갈 돈은 궁 쳐놨으나 그건 사업자금이니 건들 수 없다. 성찬을 먹었으니 기분 좋게 커피를 마셨다. 영재는 자신이 세상에서 최고 멋쟁이고 천재라고 생각한다.
영재는 알록달록 노란 운동화에 10대 들이 쓰는 모자를 쓰고 2분 거리에 있는 마트 입구 자판기에 동전을 넣었다. 설탕과 프림, 커피가루가 뒤섞여 쏜살같이 달려 나오고 뜨거운 물이 배관을 타고 미끄러지듯 커피 위에 쏟아졌다. 종이컵을 빙글빙글 흔들더니 굶은 사람처럼 커피를 홀짝홀짝 만나게 마셨다. 주머니를 뒤져 담배를 찾는데 없다. 담배가 떨어졌다는 것을 기억해 내고 두 갑을 샀다. 커피로 데워진 가슴에 기분 좋게 담배 한 모금을 빨고 트림을 길게 내뱉고 만족한 표정으로 출근했다. 영재는 죽어라 일해도 매달 마이너스다.
그는 습관처럼 어깨를 움츠리고 인력사무실 문을 연다. 사모님이 배가 홀쭉한 영재가 불쌍해 보였는지 육개장 컵라면에 뜨거운 물을 부어준다. 행색이 깔끔해도 삐쩍 말라서 불쌍해 보이는 건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영재는 불쌍해 보이는 것이 싫었지만 성의이니 면발을 건져 먹고 국물은 남겼다. 따듯한 커피를 마시며 승합차에 올랐다. 승합차는 대체인력을 부른 일터 여기저기에 일꾼들을 내려주고 홀연히 떠난다. 그는 일터에 도착하자 동전 한 개를 넣고 밀크커피 한 잔을 뽑아 마신다. 일용직 근로자지만 일을 할 때는 꾀를 부리지 않고 열과 성을 다해 일한다. 그것이 그의 근로 철학이다. 점심을 먹고 나니 졸음이 쏟아진다.
담배 한 모금을 굶은 사람처럼 빨고 눈을 붙였다. 작업시작 5분 전 벨이 울렸다. 졸음을 쫓기 위해 커피를 마시고 정신없이 일하다 보니 오후 휴식 시간이다. 커피를 마시며 하루 일을 마무리했다. 회사 정문을 나와 대기한 승합차에 오르면 인력사무실 앞에서 내렸다. 일터에서 사인받은 종이를 인력사무실에 넘겨주고 마무리로 커피를 마신다. 인력사무실을 나와 오락실로 향했다. 낮동안 쌓인 피로를 오락을 하며 날린다.
오락실 사장이 단골손님인 그에게 컵라면을 뜯어 뜨거운 물을 부어준다. 오락을 충분히 즐기다 가라는 의미. 2012년의 반년이 반이 갔다. 그는 경마장에 가기 위해 일요일을 손꼽아 기다린다. 해가 가고 달이 가도 여전히 혼자다. 쓸쓸하고 외로운 인생이지만 오락실에 가면 즐겁고 행복하다. 일요일에 경마장에 가기 위해 돈을 벌어야 하니 오락으로 인생의 허기를 달랜다. 아침저녁은 컵라면으로 때우고 점심은 회사에서 일을 하다 하얀 쌀밥을 마음껏 먹고 소고기가 들어간 뭇국이나 도톰한 돼지고기가 들어간 김치찌개도 먹을 수 있으니 행복한 영재다. 일을 할 때는 꾀를 피우지 않고 누가 보지 않아도 열심히 일을 하는 영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