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편소설 연재 ] < 인생 역전 > 유정 이숙한
빈집에 소가 들어온 것처럼. 가뭄에 소나기처럼 해 그림자에 갇혔던 그에게 반가운 일이 생겼다. 퇴직금 500만 원이 통장에 입금되었다는 문자 메시지가 뜨자 가슴이 콩콩 뛰었다. 은행 CD기로 달려가서 현금카드를 집어넣었다. “고생 끝 행복 시작”이라며 흥분한 영재의 손이 떨렸다. 살다 보니 이런 날도 있구나 하며 가슴이 찌릿하다. 그런데 어찌 된 영문인지 통장 잔액이 500원이다. 어째서 이런 일이 생겼을까, 3년을 근무하느라 힘들었는데 그토록 희망을 걸었던 퇴직금을 도깨비가 물어갔단 말인가,
거래 내역을 조회해 보니 연체된 카드대금으로 500만 원이 자동으로 인출되었다. 복권을 맞춰보니 하나가 틀린 것처럼 허탈하기 짝이 없었다. 인생역전은 고사하고 500원이라니? 운명이 그를 갖고 놀리는 건가, 놀면서 게임하다 보니 먹고 쓰는 것을 현금서비스로 대체했는데 깜박 잊은 영재다. 앞으로 살아갈 길이 막막했다. 생각하면 뭐 하랴! 가슴만 아프지. 허탈한 마음을 추스르러 게임장에 갔다. 게임 몇 판 하고 나니 마음이 풀렸다. 스스로를 위로하며 현실을 받아들이는 영재다.
송가를 따라 인건비를 많이 준다는 대체인력사무실에 나갔다. 그날 일한 대체인력비를 당일에 지급해 주는 인력사무실은 그야말로 영재의 입맛에 딱 맞는 최고의 직장이었다. 자동차회사에는 방개 회사들이 많으니 대체 일자리가 많았다. 게다가 모내기 철이면 모판을 떼어다 기계에 얹어주는 일과 인삼밭에서 인삼을 심거나
캐는 일당이 제법 짭짤했다. 목장에 가서 산처럼 쌓인 소똥을 치우면 기본 일당보다 3~4만 원 더 받았다.
남들이 꺼려하는 일이 돈이 된다. 어차피 죽으면 썩어질 몸인데 힘들다고 죽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한 그였다.
가랑비에 옷이 젖듯이 비었던 통장에 돈이 슬금슬금 모아졌다. 열심히 일해서 몇 달 동안 모으니 통장이 제법 두툼해졌다. 모은 돈으로 터미널 가까운 곳에 옥탑방을 얻었다. 쌀밥을 먹으려면 살림살이를 도구들을 사야 하니 생략하고 아침은 패스했다. 저녁은 컵라면으로 때운다. 쉬는 날이면 온종일 게임방에서 살았다.
비가 내려 으슬으슬 추워지자 따뜻한 커피로 몸을 녹이기 위해 다방에 들어갔다. 운명의 장난인가? 회사 식당에서 식판에 고기를 듬뿍 얹어주던 연심이 그곳에 있었다? 영재는 시간이 날 때마다 연심과 함께 궁평항에 가서 칼국수도 먹고 생선회에 매운탕도 먹었다. 좋아하는 자장면이나 돈가스도 먹고 햄버거도 먹었다.
연심과 함께 수원의 남문시장에서 갔다. 연심은 영재에게 잘 어울리는 옷과 메이커 신발을 선물했다. 영재는 행복했다. 두 사람은 만난 지 2년이 지나자 깊은 사랑에 빠졌다. 연심이 살림을 합치자고하자 마냥 행복한 영재였다. 연심은 영재의 아이를 가졌다. 영재는 세상에 태어난 보람을 처음으로 느꼈다. 어엿한 가장으로 한 남자로 태어났다. 자동차회사 하청 공장에 취직되어 안정된 일자리를 가졌고 아내가 있어 행복한 영재다.
예쁜 벽지로 벽을 도배하고 푹신한 장판을 깔았다. 아기를 낳을 생각에 꿈을 꾸는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밝고 명랑한 연심이 눈물을 흘리자 영재의 가슴이 와르르 무너졌다. 연심의 아버지가 위암에 걸려 수술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연심은 집주인에게 사정하여 전세 보증금을 돌려받고 월세로 돌렸다. 영재에게 미리 말하지 못해 미안하다며 울먹였다. 연심의 눈물을 보니 영재의 가슴이 터지는 것 같다. 그동안 모아둔 비상금과 현금서비스를 받아 이천만 원을 채워 연심에게 주었다. 연심은 영재에게 입을 맞추며 울다가 웃었다. 연심이 아버지가 입원한 병원으로 떠났다. 그런데 떠난 지 일주일이 지나도 연심에게 소식이 없었다.
영재의 가슴은 타들어갔다. 무슨 일일까? 어째서 연심이 돌아오지 않는 것일까, 무슨 사고라도 생간 것일까, 전전 긍긍하는 영재다. 또 한주가 지나도 여전히 연락두절이다. 연심은 핸드폰 전화도 받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