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화. 채워지지 않는 사랑

[ 장편소설 연재 ] < 사랑학 개론 > 유정 이숙한

by 유정 이숙한

순미는 거래처 담당자와 미팅이 있어 진천에 가는 길이었다. 주말이라 교통량이 많았다. 앞에 가는 SUV 초보 운전자가 편도 1차선을 20~30킬로로 3킬로를 서행하고 있다. 순미의 뒤차가 순미와 앞차를 앞지르기했다. 순미도 앞지르기하기 위해 속도를 올렸다. 맞은편에 큰 화물차가 끼어들었다. 순미의 앞차가 급정거했다. 순미는 어쩔 수 없이 앞차를 들이받을 수밖에 없었다. 백곡저수지에 쩌렁쩌렁 울려 퍼지는 사고소리이다.


순미가 탄 포텐샤는 엔진을 제외하고 앞부분이 쑥 들어갔다. 순미의 귀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뒤에 있던 운전자들이 순미의 차 창문을 두드리며 순미를 깨웠다. 정신이 혼미해진 순미의 육신을 떠난 영혼이 돌아왔다. 시간에 거래처에 맞춰 가야 했다. 렉커차에 차를 매달고 초보운전자인 앞차를 타고 공업사로 향했다.


순미의 뒤에 오던 까만 SUV 차가 두 대를 앞지르기하여 가다가 보복운전으로 급정거했다. 초보운전자인 앞차가 놀라 급정거했다. 그 바람에 순미가 그 차를 받았다. 순미는 뒤차 번호를 외우지 못해 덤터기를 썼다. 자동차 보험으로 앞의 차와 동승자를 치료해줘야 했다. 2005년 블랙박스가 없던 시절이니 순미가 오롯이 덤터기를 쓸 수밖에 없었다.


순미는 차를 공업사에 맡기고 수철에게 교통사고 경위를 설명하고 데리러 오라고 했다. 그녀는 멍한 상태로 택시를 타고 거래처에 가서 상담을 하고 공업사로 돌아왔다. 그녀가 도착하기 30분 전 수철이 도착했다. 수철은 사고가 나서 순미가 얼마나 놀랐는지, 다쳤는가, 묻지 않고 운전을 잘못해서 교통사고를 냈다며 화를 내며

- 내가 그럴 줄 알았어, 항상 서두르더니, 운전을 개좇같이 해서 사고가 난 거잖아?


놀란 순미에게 막말을 내뱉는 수철은 교통사고로 다치지 않았는지 묻지 않고 화가 난다고 막말을 쏟아낸다. 순미는 앞차를 받지 않으려고 팔과 다리에 힘을 줘서 팔이 너무 아팠다. 병원에 입원해서 심신을 쉬고 싶었다. 수철은 막무가내로 집으로 데려간다. 수철의 친구가 팔팔 뛰며 입원해야한다고 하자 다음날 입원시켰다.



순미를 지지해 주는 부친이 대장암에 걸렸다. 부친이 의식을 잃자 심장을 도려내는 것 같았다. 부친은 순미의 심장이었다. 수철은 심장을 도려낸 아픔을 이해하지 못하고 곁에 있는 남편이나 챙기라며 아픈 장인을 질투했다. 그에게 순미가 마음이 아픈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사랑하는 두 딸과 사업체가 있고 수철을 응원하고 편을 들어주는 여직원이 있었으니 행복했다. 여직원이 문병을 왔는데 순미가 야단쳤다.


수철이 한밤중에 병원에 와서 순미가 여직원을 야단쳤다고 욕설을 퍼붓고 갔다. 수면제를 타 먹으며 잠을 이루지 못해 고통받는 순미는 눈물이 앞을 가렸다. 순미는 주말에 병원에서 외출하여 집으로 왔다. 그녀가 심고 가꾼 참외를 보러 갔다. 노란 참외가 주렁주렁 열렸다. 참외를 한 바구니 들고 안으로 들어오자 화를 버럭 내는 수철. 그녀가 집에 없을 때 남은 가족들이 뭘 먹고 사는지 관심이 없고 참외만 귀하냐고 따져 묻는다.


수철은 순미의 일가친척들의 대소사에 참석한 적이 거의 없다. 그야말로 창살없는 감옥에 살았다. 오직 수철과 두 딸, 사업체를 꾸려가는 사람이길 바랐다. 순미는 남편의 따뜻한 관심과 사랑을 받고 싶었다. 그녀는 받는 거에 길들여진 수철의 사랑에 신물이 났다. 그의 사랑은 밑 빠진 독처럼 채워지지 않았다. 의무는 늘고 사업장은 신경 쓸 때가 많아졌다. 순미는 그의 곁을 영원히 떠나고 싶었다. 순미는 퇴원 후 통원치료를 받았다. 특수치료를 받으며 아픔을 치료했다.


부친이 의식이 돌아왔다. 얼어붙은 그녀의 마음이 눈 녹듯이 사라졌다. 부친에 대한 그리움과 회한. 위궤양으로 오목가슴 밑이 칼로 찌르는 것처럼 아파서 새벽 두 시가 되면 참을 수 없이 아팠다. 그런 줄도 모르고 여직원만 챙기는 남편이 미웠다. 이해와 사랑이 없는 집에 돌아가기 싫었다. 순미는 수철이 자신이 설계한 남자이길 바랐으니 지혜롭지 못했다. 실핏줄이 터져 빨간 악마의 눈이 되었다. 그에 대한 기억을 지우고 싶었다.


목,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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