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연재] < 사랑학 개론 > 유정 이숙한
저녁 무렵 수철은 후배가 일하다 2층에서 떨어져 입원했다며 병문안 간다고 수선을 떤다. 병문안 가려면 수수하게 입으면 되는데 이 옷 저 옷을 입어보고 순미에게 잘 어울리는지 묻는다. 그건 틀별한 사람을 만나야 한다는 신호인데 모르고 있다. 남자가 호들갑을 떨면 여자는 알아챈다. 순미가 이상한 낌새를 알아챘지만 그런 줄도 모르고 신이 나서 외출했다.
순미는 고심 끝에 후배가 입원한 병원으로 찾아갔다. 그녀의 느낌이 맞았다. 그건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후배는 입원하지 않았다. 여자의 직감은 비켜나가는 법이 없다. 순미가 전화하자 둘이서 자주 가던 해장국 집이라고 했다. 순미는 수철을 깜짝 놀라게 해 줄 생각에 15분 거리에 있는 24시 해장국 집으로 출동했다. 하지만 24시 해장국 집 앞에는 그의 차는 물론 손님이 한 명도 없었다.
순미는 맥이 빠져 터널 터널 화물차를 몰고 돌아오는데 낯익은 승용차의 불빛이 룸 미러에 들어왔다. 다름 아닌 수철의 승용차였다. 반가움에 승용차 앞에서 아는 척하려고 했다. 승용차는 길 옆 모텔로 들어갈까 말까 고민 중인 것이 룸밀러에 포착됐다. 순미는 차선을 변경해서 느린 속도로 승용차 뒤에 따라붙었다. 차 창문이 선팅으로 가려져 선명하지 않았지만 키 작은 남자가 동행하고 있었다. 그런데 웬일일까, 승용차가 냅다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녀는 전속력으로 추격했으나 신호 대기 중에 승용차를 그만 놓치고 말았다. 읍내에 가도 승용차는 보이지 않았다. 닭 쫓던 개 울 쳐다보듯이 터덜터덜 돌아오는데 면사무소 앞에서 도망친 승용차와 마주쳤다. 그는 차에서 내리더니 순미에게 갓길에 차를 세우라고 했다. 그가 실토하기를
- 아는 동생이 오늘 생일이라 해장국 사주고 오는 길이야. 지금 데려다주고 왔어, 내 차인 줄 어떻게 알았어? 당신 몰래 연예도 한 번 못하겠다?
천연덕스럽게 말하는 수철을 보며 실망도 사치라고 생각한 순미는
- 그래요? 내 생일은 기억해주지 않아도 아는 동생 생일은 잘 챙겨주는군요. 하긴 결혼기념일도 챙겨주지 않는데 생일은 무슨…?
- 무슨 소리야, 당신 생일에 꽃다발도 사줬잖아? 나한테 당신이 제일이지, 사업하다 보니 접대하느라 여자들 몇 명 관리하느라 그런 거야.
입에 침도 바르지 않고 거짓 말을 밥 먹듯이 하는 수철이다. 순미는
- 처음부터 거짓말인 줄 알았어요, 툭하면 불러내서 클럽에 가자던 후배가 2층에서 떨어져 입원했다는 말을 믿기지 않았어요. 병원에 가서 확인하고 아니라서 당신에게 전화했더니 24시 해장국 집이라고 해서 놀래주려고 해장국 집에 갔더니 우리 차가 없었어요, 친한 여동생과 함께 라이브 카페에 갔다 오는 길이셨지요?
- 그 동생이 생일인데 외롭다고 해서 쉘부르에 가서 돈가스 사줬어. 술 몇 잔 마시더니 졸음이 쏟아진다며 모텔에 들어가 쉬었다 가자고 해서 들어가려니까, 우리 차가 뒤에 따라붙어서 놀라서 도망친 거야. 그거 봐, 다른 여자가 꼬드겨도 넘어가지 않는 남자는 나 밖에 없어.
수철은 말이 되지 않은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한다. 그 정도 거짓말에 이골이 나서 화가 나지 않는 순미는 거짓말을 듣는 것도 이력이 생긴 것이다. 그녀에겐 배신감도 사치였다. 한두 번 있는 일도 아니다.
순미는 헤어지려고 마음먹었지만 속마음은 그를 사랑하는 걸까, 그들에게는 사랑하는 두 딸이 있다. 수철은 순미와 함께한 세월이 길었지만 혜란은 그의 심장에 여전히 살아있다. 혜란은 순미의 몸에 빙의하여 수철에게 아기를 살리지 못한 이유를 따져 물었다. 서로 속마음을 털어놓으면 이해하고 통할 법도 한데 늘 엇박자였다.
혜란은 수철의 아픈 심장이었다. 아기를 구하지 못하고 엄마의 태속에 방치했으니 잊고 싶은 아픔이다.
원수 같은 돈이 없어 두 생명을 구하지 못했다. 형제들이 그의 아픔이나 죄의식을 이해해 주려고 하지 않았다.
형제들이 여럿이 힘을 합하면 두 생명을 살릴 수 있었는데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 수철의 아픈 속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