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화.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 장편소설 연재 ] < 사랑학 개론 > 유정 이숙한

by 유정 이숙한

수철이 후배가 2층에서 일하다 떨어져 병원에 입원하여 병문안 간다고 수선을 떨었다. 병문안 갈 사람이 아무 옷이나 걸쳐 입으면 될 것을. 이 옷 저 옷을 입어보고 잘 어울리는지 순미에게 묻는다? 수철이 호들갑을 떨자 순미는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다. 그는 그런 줄도 모르고 신이 나서 외출했다. 그녀는 고심 끝에 후배가 입원한 병원으로 찾아갔다. 그녀의 느낌이 맞았다. 그건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후배는 입원하지 않았다.


여자의 직감은 비켜나가는 법이 없다. 순미가 수철에게 전화하니 24시 해장국 집에 있다고 말했다. 순미는 수철을 놀래줄 생각에 둘이 자주 가던 24시 해장국 집으로 출동했다. 해장국 집 앞에 그의 차가 없었다. 순미는 터널 터널 화물차를 몰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낯익은 승용차 불빛이 룸 미러에 들어왔다. 순미는 반가움에 승용차 앞에 서는 척했다. 승용차가 길 옆 모텔로 들어갈까 말까 고민하고 있는 모습이 룸밀러에 포착됐다.


순미는 차선을 변경해서 느린 속도로 승용차 뒤에 따라붙었다. 창문을 선팅 해서 보이지 않지만 키 작은 남자가 동행하고 있었다. 그런데 승용차가 혼비백산하며 냅다 도망친다, 순미도 전속력으로 승용차를 추격했다. 신호 대기 중에 승용차를 놓치고 말았다. 닭 쫓던 개 울 쳐다보듯이 터덜터덜 돌아오다 면사무소 앞에서 승용차 불빛과 마주쳤다. 그는 차에서 내리더니 차를 세우라고 했다. 수철은

"아는 여동생 생일이라 해장국 사주고 오는 길이야. 지금 집에 내려다 주고 왔어. 당신이 내 차인 줄 당신이 어떻게 알았어, 당신 몰래 연예도 한 번 못하겠다?"


입에 침도 바르지 않고 뻔뻔하게 말하는 수철에게 질린 그녀다. 한두 번 있는 일도 아니고 순미가 말했다.

"아, 그래요? 내 생일이나 결혼기념일은 기억하지 않아도 동생 생일은 잘 챙겨주는 자상한 오빠네요?"

"당신 생일에 꽃다발 사줬잖아? 나한테 당신이 제일이지, 사업 상 접대하느라 여자들 몇 명 관리하는 거야."


수철이 진심으로 말하는 거 같지만 그의 말이 가슴에 와닿지 않는 순미다. 수철은 억지 논리를 펴고 있다.

"동생이 생일이라 쉘부르에서 돈가스 사줬어. 술 몇 잔 마시더니 졸리다며 모텔에서 쉬었다 가려는데 우리 차가 따라와서 오해할 것 같아 도망친 거야. 다른 여자가 꼬드겨도 넘어가지 않는 남자는 나 밖에 없어."

"졸리면 모텔에서 쉬었다 가는 거구나, 그렇게 자상하게 챙겨주는 오빠가 있어 그 여잔 행복하겠다!"


순미는 진실을 외면하는 그에게서 멀리 벗어나고 싶었다. 아내 생일은 챙겨주지 않으면서 아는 여동생은 살뜰히 챙겨주는 사람에게 사랑을 구걸하고 싶지 않았다. 처음도 아니다. 밖에서 만난 여자들 대부분이 수철과 대화가 잘 통했다. 여자들은 칭찬을 아끼지 않았지만 순미는 칭찬을 아꼈으니 그럴 수밖에. 진심인지 장사 속인지 알 수 없지만 수철은 여자들에게 인기가 있다. 순미는 잘 통하는 사람과 사는 것이 최선이고 하나님이 준 최고의 선물이라고 생각했다.



수철은 병원에서 외출을 나온 순미가 참외를 챙기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주부가 입원해 있으면 가족들이 뭘 먹고 사는지 냉장고도 열어봐야 하는 거 아닌가, 가족에게 관심이 없다며 화를 냈다. 그들은 서로에게 부재중이었다. 순미는 목과 허리통증으로 독한 약을 먹어 위궤양으로 통증이 심해 잠을 이루지 못한다.

수면제 한 알을 먹어야 잠이 드는 그녀다. 수철은 순미의 부재가 싫었다. 그녀는 그에게 엄마 같은 존재다.

순미는 사랑받고 싶은 여자다. 받는 사랑에 길들여진 수철에게 넌더리가 났다. 밑 빠진 독에 사랑으로 가득히 채워주는 것 같았다.


그들에게 사랑하는 두 딸이 있다. 수철은 순미와 함께한 세월이 길지만 혜란은 그의 가슴에 살아있다. 혜란은 순미의 몸에 빙의하여 아기를 살리지 못한 것을 원망했다. 혜란은 수철의 아픈 심장이다. 살아있는 생명을 죽어가는 엄마 뱃속에 방치했으니 잊고 싶은 그였다. 서로 속마음을 털어놓으면 통할 법도 한데 늘 엇박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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