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화. 달콤한 잠에서 깨고 싶지 않았다

[ 장편소설연재 ] < 사랑학 개론 > 유정 이숙한

by 유정 이숙한

바람 시인은 순미가 앉을자리를 내어준다. 핸드폰 벨 소리가 가슴 떨리는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다.

순미가 화를 내며

“왜? 자꾸 전화해요, 시외버스 타고 수원으로 가는 중이라니까요?”

“전철을 타고 오면 벌써 왔을 텐데, 무슨 소리야, 시외버스라니?”


그녀들 일행이 수원에 도착할 때까지 5분 간격으로 진동벨이 울린다. 순미의 인내심이 바닥이 났다.

눈빛이 냉랭해지며 파리해진 순미는

“당신이랑 사는 거 정말 지겹다. 내가 언제 데리러 오랬어? 내가 알아서 간다고. 수원에 차 세워두었다고,

언제부터 나한테 관심을 가졌다고? 나 지금 서울 언니 집으로 간다? 이제 당신과 끝이야”


순미는 아침에 일어나 사당에서 직행 버스를 타고 수원으로 가서 화물차를 끌고 서울 언니 집으로 갔다.

수철이 발로 찬 엉덩이와 교통사고로 다친 허리가 아프다. 아픈 곳을 치료하며 두어 달 모친과 시간을 보냈다.

모친은

“해가 지면 작은딸이 생각나고 보고 싶어 살 수 없을 거야, 어서 집으로 돌아가?”

순미는 친정 엄마의 충고가 잔소리로 들린다.



그녀는 절친 명희와 바람 시인이 사는 D시로 갔다. 교차로 구인광고를 보고 가든 식당에 취직했다. 밤이면 홀에서 잠을 자려니 외롭고 슬퍼서 눈물이 났다. 남들은 잘 사는데 그녀만이 고달프고 힘들게 살아야 하는 건가 눈물이 났다. 바람과 통화 중에 울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바람이 찾아와서 그녀를 위로해 주었다.


며칠 후 순미는 술 취한 바람의 전화를 받았다. 보고 싶다는 신호였다. 밀린 빨랫감을 들고 그와 잠을 잤던 모텔에 갔다. 바람에게 전화하니 받지 않는다. 한참 후 바람에게 전화가 왔다. 그녀는 불혹을 넘은 나이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의 따뜻한 품에서 두 번째 밤을 보냈다. 수철에게 한 번도 받아보지 못한 깊은 매너와 배려가 있는 포근한 잠자리였다. 그와의 따뜻하고 달콤한 잠에서 깨고 싶지 않았다.



순미는 가든 대표와 대화가 잘 통했다. 대표 입장에서 일하다 보니 같이 일하는 중국교포 여자가 질투하여 대표의 장모에게 순미를 고자질했다. 장모는 불교이고 순미는 기독교라 신앙이 다르니 한 공간에서 지낼 수 없다고 그만두라고 한다. 주방일도 위아래 서열이 있는데 모르는 순미다. 매일 두세 차례 바람의 목소리를 들을 뿐 자주 만날 수 없었다. 컴퓨터와 인터넷이 없어서 PC방에 가서 영혼을 갈아 쓰는 시를 쓴다.


그녀는 수철에게 무시당하고 배제당하며 숨 쉬는 인형으로 살았다. 친정 대소사나 외부 사람과 단절된 세계에 살았던 그녀는 속박의 삶이고 창살 없는 감옥이었다. 남편과 두 딸을 위해 그녀가 존재했고 돈을 버는 도구로 전락했다. 넓은 개천 옆 허름한 기와집 방 한 칸, 순미는 보증금이 없고 월세 13만 원짜리 옛날 집이었다. 방안 옷장에 옷가지를 넣고 좁은 부엌에서 버너와 휴대용 가스레인지에 밥을 지어먹었다. 명희가 쌀도 갖다주고 자주 찾아주며 그녀를 위로해 주었다.


순미의 인생관이 바꿨다. 그녀는 잃어버린 세월과 꿈꿔왔던 시간과 자신이 하고자 하던 일을 찾기 위해 시를 쓴다. 기사 식당에 취직했다. 12시간 야간 근무한다. 친한 친구들은 생활전선에 나서지 않고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수영장에 다니며 살림하는 친구가 부러웠다. 그녀는 밤근무를 마치고 아침이면 수영장 셔틀버스를 타고 수영강습을 받으러 갔다. 수영장에서 마주친 여자들이 부럽지 않았다.


큰딸이 그녀의 컴퓨터를 보냈다. 방에서 편안하게 글을 쓰니 행복하다. 식당에서 12시간 서서 일하다 보니 다리를 구부리거나 펴는 게 힘들어 치료를 받았다. 육체적인 노동은 맞지 않는 기사식당 일을 그만두었다.

명희가 다니는 토지분양회사에 텔레마케터로 입사했다.










목,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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