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화. 새로운 출발이고 싶었다

[장편소설 연재 ] < 사랑학 개론 > 유정 이숙한

by 유정 이숙한

불특정 다수에게 전화를 걸어 토지를 판매하는 텔레미케터 일을 하는 순미. 토지를 판매하면 쟁반에 담긴 만 원짜리 묶음의 돈을 현금으로 받으며 축하의 박수를 받았다. 명희는 회사에서 분양한 토지를 샀는데 분할이 되지 않았다. 순미가 탤레마케터로 3개월 근무했는데 실적이 없는 그의 부서가 해체되었다.


순미는 명희네 회사와 비슷한 일을 하는 회사에 입사했다. 윗사람들이 텔레마케터들에게 인간적으로 대해줬다. 매일 식비와 교통비로 만원을 받았고 월급도 두세 달 탔다. 고객을 내사시켰지만 실적을 올리지 못했다. 순미는 전화영업 할 때 작은딸 또래의 아이가 전화를 받으면 눈물샘이 폭발하여 감당할 수 없었다. 새벽 2시면 비행청소년이 된 작은딸의 미래를 만났다. 비슷한 또래들과 어울러 학교 주변을 서성이는 꿈을 매일 밤 꾸었다. 가슴이 아파 잠에서 깨면 엉엉 울었다.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우울증에 걸렸지만 그녀는 모르고 있었다.


순미는 삶을 포기하고 싶었다. 큰딸 생일 하루 전날이었다. 큰딸에게 따뜻한 미역국 끓여주고 두 딸들 얼굴이나 한 번 보려고 기차를 타고 초록 들판을 달려갔다. 가치에서 내려 시외버스를 타고 읍내 파리바게뜨에서 생일케이크를 사고 미역을 사 들고 옛집으로 갔다. 시간이 멈춘 그 집에는 마당에 풀이 수북이 자라 있고 유령처럼 복숭아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개가 꼬리 치며 짖는다. 수철이 창문을 열었다.



수철이 순미가 들고 온 케이크와 미역을 땅바닥에 내동댕이 쳤다. 나쁜 남자의 꼬음에 넘어가 가족을 버리고 간 엄마의 케이크를 딸들에게 먹이고 싶지 않다고 했다. 사기꾼과 같이 온 줄로 알고 재산을 빼앗길까 봐, 경찰을 불러 순미를 쫓아냈다. 유령의 집에서 쫓겨난 그녀는 초록 들판 속으로 강으로 가는 농로로 걸어간다. 어둠 속에서 긴 강이 그녀를 부른다. 집으로 돌아가라던 모친이 떠오른다. 차갑게 식은 딸을 보며 몸부림칠 모친의 얼굴이 교차한다. 가슴이 터질 것 같아 대성통곡하는 그녀!


그녀는 강으로 가던 길을 돌아섰다. 신작로에서 경찰차를 만났다. 경찰은 그녀를 태워 택시 승강장에 내려주었다. 찜질방에서 새벽 시간을 채웠다. 첫 기차로 D시로 내려갔다. 회사에 출근했다. 딸들과 가까운 곳에 살려면 돈을 모아야 했다. 바람을 만나 거리를 두자고 했다. 순미의 시가 신인상에 입상했다. 큰딸이 데리러 온다는 전화가 왔다. 과거와 현재로 이어지는 지옥과 천국이 공존하는 기억 속의 옛집으로 돌아왔다.



순미는 천국과 지옥을 자주 오가며 2년 여 세월이 견디기 힘들었다. 수철은 금연학교를 다녀온 후 눈빛이 달라졌다. 순미에게 버림받은 것에 대한 원망이 깊었다. 두 딸을 위해 남편의 존재를 무시하려고 했으나 쉽지 않았다. 수철은 꽃을 찾는 나비처럼 꽃을 찾아다녔다. 자신이 어떤 행동을 해도 믿어줄 거라고 믿던 아내였는데 믿는 도끼에 발등이 찍혔다. 그녀는 지옥 같은 하루하루였다. ‘이렇게 살 바에는 세상 살기를 그만 두자.' 제조제를 마셨다. 작은딸의 초롱초롱한 눈망울 때문에 차마 넘길 수 없어 뱉었다. 병원에 가서 위세척을 받았다.

2년여 세월이 지나자 수철의 분노와 노여움이 삭았다.



5년 후, 수철은 강원도 오대산 통나무 펜션과 카페에 꽂혔다. 수철은 은행을 갈아타며 대출을 받아 세를 얻어 스무 개 방이 있는 카페와 펜션을 운영했다. 순미는 혼자서 공장을 꾸려갔다. 그는 맘에 드는 투숙객이나 연예인과 밤새 술을 마시고 줄담배를 피며 놀았다. 몇 달 후 숨을 쉴 수 없었다. 아픈 몸으로 운전하여 집으로 왔다. 수원의 대학 병원에 가서 검사한 결과 간질성 폐질환이라고 했다. 그 병에 걸리면 금연은 기본이고 85%는 3년에서 5년 살고 15%는 10년을 산다고 했다. 그는 큰딸의 간절한 권유로 힘든 금연에 성공했다.


수철은 빠르게 걷기 운동을 하며 근력을 키웠다. 흡연을 하게 하고 스트레스를 쌓이게 한 사업장을 팔려고 내놨으나 IMF 금융위기로 새 주인이 나서지 않았다. 새로운 출발! 새로운 인생의 출발이고 싶었다.






목,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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