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화. 폐섬유화증, 문신

[ 장편소설 연재 ] < 사랑학 개론 > 유정 이숙한

by 유정 이숙한

수철은 모든 것을 잃었다. 순미에게 할 말이 없었다. 미안하다며 협의 이혼하자고 했고 웃으며 헤어졌다. 그는 고향인 서울에 올라가서 고시원을 전전하며 살았다. 연금 46만 원과 생계비로 근근이 살았다. 신의 가호인지 마포구 신촌 한복판 비탈진 언덕의 전망 좋은 임대 아파트에 당첨되었다. 언제부터인지 비탈진 언덕을 오르면 숨이 찼다. 전철을 타고 덕수궁이나 경복궁에 갔다 오며 걷기 운동으로 시간을 할애했다.


그는 받는 거에 익숙하지 않다. 주민센터에서 나눠준 김장 김치를 배낭에 넣어 등에 짊어지고 언덕을 오르고 있었다. 삼분의 일도 올라가지 못했는데 숨이 가쁘다. 쌕쌕거리며 호흡이 빨라지며 진정되지 않았다. 그때 운명처럼 수호천사가 나타났다. 순미가 작은딸에게 줄 반찬을 가져다주러 언덕을 오르다 호흡논란이 온 수철을 보고 놀랐다. 순미가 짐을 들어다 줬으니 망정이지. 다시는 그 언덕을 오르지 못할 뻔했다. 순미는 그를 데리고 S대학 병원에 갔다. 정밀 검사 결과 폐섬유화증이었다. 산소포화도가 9.5 이상이 정상인데 그 이하였다. 폐섬유화증은 폐포의 작은 구멍들이 이물로 막혀 섬유화 된 병이다.



수철은 한강이 보이는 뷰가 좋은 임대 아파트 꼭대기 층에 살고 있다. 경매로 공장과 땅이 넘어갔다. 헐값에

넘어간 덕분에 채무가 남아 우편물이 쌓여갔다. 낮에 집에 있으면 특별송달우편물이나 채권자가 올 거 같아 불안해진 그는 소나기는 피하기 위해 파산 신청했으나 면책은 받지 못했다. 지하철을 탔을 때 채권자와 닮은 사람을 보면 화들짝 놀라 주위를 살피게 된다. 그에게 남은 재산은 자존심이 전부다.


폐를 청소해 준다는 50만 원짜리 한약을 복용하고 싶지만 돈이 없다. 천하에 멋쟁이가 동묘 시장에서 옷 한 점에 만 원 하는 메이커 구제 겉옷과 삼사천 원을 주고 남방을 사 입었다. 고가의 메이커 옷만 입던 그가 분수에 맞게 사는 셈이다. 없던 경제관념이 생긴 걸까, 그는 대한민국 수도 서울 한복판에 사는 하층민이다.


사업은 수지 타산이 맞지 않으면 그만두어야 하지만, 차입 경영으로 외줄 타기 서커스 단원처럼 아슬아슬한

줄타리를 한 삶을 살았다. 외국 여행을 다니며 흥청망청 산 것도 아니다. 육십 평생 비행기 한 번 타보지 못한

가련한 인생이다. 거리 흐름에 따라 차량을 운행하는 것처럼. 사업도 내리막길과 오르막길을 잘 보고 갔어야

했지만 의리에 살고 의리에 의해 사업을 경영했으니 모든 것이 미숙한 인생이었다.


순미는 바람이 자유로이 드나드는 컨테이너에 산다. 겨울이면 얼굴이 시리고 추워서 이불 밖으로 내놓을 수 없고 여름이면 방충망을 치고 문을 활짝 열어도 뜨거운 열기로 가득 차서 푹푹 쪘다. 신의 은총으로 기초생활 주거 수급자로 선정되어 벽돌로 지은 매입임대 주택에 입주했다. 시원하고 따뜻한 집이라 만족했다. 순미는 그와 헤어져 사니 요가도 배우고 기타를 배우고 수영을 배우며 자유로운 영혼으로 생기 있고 밝게 산다.

갈망하던 시를 쓰며 시인들과 어울린다. 경제활동을 하니 불편함이 없었다. 순미는 수철을 미워하지 않는다.


수철은 경제활동을 하지 않으니 자존감이 무너졌다. 유리 지갑이지만 마음은 부자라고 억지를 부려본다. 그의 심장을 조이던 첫째 아내 혜란에 대해 죄의식이 무뎌졌다. 그녀가 심장에서 떨어져 나간 거 같다. 가끔은 기억의 숲에서 그녀를 만난다. 주머니에 돈이 없으니 아무도 만나지 않는다. 아는 이들의 기억 속에 멋진 남자로 남고 싶은 그다. 형제도 만나지 않는다. 자존심을 가라앉히고 뻔뻔함으로 보초를 세워보지만 허사였다. 가끔은 벽을 보며 혼자 중얼거린다. 외로움의 굶주린 배를 움켜쥐고 먹잇감을 찾아 나섰다.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으니 마음이 편하다고 억지를 부려본다. 가끔은 아내의 잔소리가 그리워질 때도 있다. 남에게 멋있게 보이고 싶은데 정수리에 머리숱이 없어 속이 훤히 들여다 보인다. 주머니를 털어 속이 훤히 보이는 머리에 문신을 해서 풍성한 머리로 보이게 하고 하연 눈썹에도 까맣게 문신을 했다. 머리숱이 많아 보이니 누굴 만나도 자신이 생겼다.



목,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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