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편동화 ] < 할머니네 식구들 > 유정 이숙한
수박 넝쿨은 줄기가 뻗어갈 때마다 옆구리에 노란 꽃을 피웠어. 꿀벌과 나비가 나풀나풀 춤을 추며 와서
수박꽃에 입을 맞추고 갔어.
며칠 후 수박꽃이 떨어진 자리에 완두콩만 한 아기 수박이 매달렸어. 수박 넝쿨 아래에 쇠비름이 말했어.
“와! 아기 수박이네, 귀엽고 앙증맞다, 수박줄기 넌 할머니의 사랑을 받아 행복하겠다! 할머니는 나만
미워하고 좋아하지 않아!"
할머니가 밭에 나왔어, 참외 모도 작은 덩굴이 뻗기 시작했어, 할머니는 참외 모 근처에 거름과 물을 듬뿍
주었어, 애벌레가 오지 못하게 지독한 약물을 촉촉이 뿌려주었어.
할머니는 옆에 있던 잡초를 뽑아 참외 모종 뿌리 근처에 듬뿍 올려주었어. 잡초가 뽑혀나갈 때마다 쇠비름식구들이 뽑혀나갔어, 생명력이 강한 쇠비름은 흙이 묻은 채 살아났어, 잡초가 만든 그늘에 뿌리를 내렸어,
쇠비름이 헛기침을 했지만 할머니는 듣지 못했어, 쇠비름이 큰소리로
“할머니, 쇠비름 잎과 줄기를 버리지 말고 삶아서 나물로 무쳐보세요, 맛이 시큼하지만 소화도 잘 돼요,
할머니 만성 변비도 낫고 흰머리도 생기지 않아 젊어질 거니까, 뽑아 말고 잎과 줄기를 떼어가세요?”
쇠비름이 애원했지만 할머니는 쇠비름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어. 귀가 간지럽다고 후벼 파서 상처가 생기고
딱지가 앉더니 작은 소리를 듣지 못했거든.
어둑한 새벽이었어. 애벌레가 입맛을 다시며 참외 순에 다가갔어. 지독한 냄새 때문에 숨을 쉴 수 없어 콜록콜록 기침을 하며 비틀거렸어, 그때 뽕나무 가지 위에 숨어 있던 참새 공주가 애벌레에게 다가갔어. 비틀거리던 애벌레는 참새 공주에게 잡히고 말았어.
참새공주 덕분에 네 번째 심은 참외가 넝쿨을 뻗어갔어. 비가 여러 날 오지 않았어, 수박과 참외는 갈증으로 참을 수 없었어. 할머니는 물통에 물을 담아다 참외와 수박에게 듬뿍 뿌려 주었어. 물을 마시니 살 거 같았어, 참외줄기도 하루가 다르게 넝쿨이 커져갔어.
검은 구름이 몰려다니더니 장대비가 내렸어, 그다음 날도 비가 내렸어. 할머니는 장롱의 옷을 정리하고
있었어, 수박이랑 참외가 얼마나 자랐나 궁금했어, 천둥 치고 번개가 치자 밭에 가지 않고 있었어.
비가 내린 지 5일째 되는 날, 복수박이 태어난 지 40일이 되는 날이었어. 굵직한 장대비가 복수박의 등을
사정없이 때렸어. 복수박은 장대비를 맞고 쓰러질 거 같았어. 속살을 빨갛게 익혔다고 자랑하고 싶었어,
할머니가 밭에 오지 않으니 자랑을 할 수 없어 슬펐어, 장대비가 복수박의 옆구리를 때리자 '쩌억' 소리와
함께 금이 가고 말았어.
매정한 비가 세차게 퍼붓자 복수박은 쩍 벌어졌어. 복수박이 울자 벌어진 틈으로 복수박의 눈물이 비를
타고 들어갔어, 빨간 속살이 노랗게 바래갔어. 뱃속에 품고 있던 씨앗이 까맣게 익었어.
복수박은 할머니를 기다리다 지쳐 꾸벅꾸벅 졸고 있었어, 빨간 속살이 바닥에 쏟아지자 엉엉 울었어..
해님이 구름 속에 숨긴 얼굴을 드러냈어. 밭 식구들 모두 할머니를 기다렸어. 저녁 무렵 할머니가 왔어.
잘 익은 복수박과 노랗게 익은 참외 씨앗들이, 안에서 탕탕 문을 두드렸어. 할머니는 작은 소리를 알아듣지 못했어. 비를 맞아 등이 터진 복수박이 노랗게 변해갔어.
할머니는 노랗게 익은 참외를 따서 바구니에 담았어, 참외밭의 잡초를 뽑다 등이 터진 복수박을 발견하고
“아유 저런, 복수박아, 미안하다! 장대비를 맞아 등이 터졌구나! 어쩌면 좋으니? 아욱들이 목이 마르다고
아우성이니 널 그리로 데려다줄게?”
할머니는 등이 터진 복수박을 아욱 밭에 내려놓았어. 빨간 속살이 바닥에 쏟아졌어. 할머니는 등이 터진
수박을 집어 냄새를 맡아보더니
“복수박아, 빨갛게 속을 익히느라 고생 많았다! 잘 키웠으니 할머니가 맛이라도 봐야 덜 속상하겠지?
어디 맛 좀 보자, 아주 달구나! 많이 먹어주지 못해 미안하다, 그래도 먹고 맛을 봤으니 기분이 좀 낫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