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쇠비름은 너무 슬펐어

[ 단편동화 ] < 할머니네 식구들 > 유정 이숙한

by 유정 이숙한

할머니는 등이 터진 복수박의 속살을 몇 점 떼어먹었어, 익었을 때 빨리 따주지 못해 미안했어.

할머니는 복수박 겉껍질을 잘게 잘라 옥수수 뿌리에 데려다주었어. 해님이 뜨겁게 달궈주자 흐물흐물 녹아

물이 되더니 흔적 없이 사라졌어. 아욱의 줄기에 얹은 복수박 조각도 흐물흐물 녹아 물이 되더니 뿌리에

촉촉하게 스며들었어. 복수박이 품고 있던 씨앗들이 밭 여기저기에 흩어졌어.

할머니는 아기 수박들이 잘 자라도록 그 옆에 난 풀들을 뽑아주었어. 참외는 넝쿨손이 뻗어갈 때마다 옆에 있는 풀들이 눈을 찔러서 답답했어. 할머니가 그 풀들도 뽑아주었어.

참외는 푸른 하늘과 해님을 맘껏 올려다볼 수 있어 행복했어. 밤이면 달님이 찾아와 말동무가 되어주었어.

잡초 속에 있던 쇠비름이 뽑히지 않으려고 버텼지만 뽑히고 말았어. 참외 넝쿨과 수박 넝쿨은 몸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어 행복했어. 기분이 좋아진 수박넝쿨과 참외넝쿨은 몸을 흔들며 춤을 추었어. 그때마다 수박과 참외가 커지고 익어갔어.


며칠 후, 해가 서쪽 산 너머로 넘어갈 무렵 할머니가 밭에 왔어. 할머니는 참외와 수박 넝쿨손 다섯 마디를

남기고 끄트머리 순을 잘라 주었어, 땀을 뻘뻘 흘리며 키가 큰 잡초들도 뽑아주었어.

해님이 서산으로 숨어버리자 그늘 속에 숨어있던 모기들이 배를 채우러 나왔어. 모기들은 할머니의 등과

다리, 팔, 옆구리를 침으로 콕콕 찌르고 괴롭혔어.

할머니는 모기가 물고 간 자리가 따갑고 가려워 긁었더니 톡톡 불거졌어, 모기들이 괴롭힐 때마다 할머니는 손바닥으로 엉덩이와 다리를 콩콩 쳤어. 그 모습이 우스워서 어린 참외가 깔깔 웃었어.

키가 큰 당근이 말했어

“어린 참외야, 할머니가 우리를 심고 키워줬는데, 모기 때문에 고생하고 있어, 우리가 모기를 잡아주지

못하면서 깔깔 웃으면 되겠니?”

어린 참외가 말했어

“당근 네 말이 맞아, 할머니가 여기저기를 때리니, 웃음이 나와서 그랬어. 미안..”


키가 큰 당근이 슬픈 목소리로

“할머니가 모기를 쫓느라 탁탁 치고 있어 가슴이 아프다. 우리가 봉지 속에 갇혀 있을 때, 데려다 밭에 심고

키워 주었기 때문에, 우리가 파란 하늘을 맘껏 보며 자라고 있는 거잖아?”

어린 참외가 말했어.

“듣고 보니 네 말이 맞았어, 농부가 작은 종이컵에 씨앗을 심어 싹을 틔우고, 참외 모종이던 나를 할머니가 밭에 심어주었지, 애벌레 때문에 고생 끝에 성공해서 노란 꽃을 피우고, 참외를 키우고 있다는 것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어.”


할머니는 참외와 당근 이야기를 듣지 못했어. 해가 저물었지만 할머니는 엉덩이에 매달린 동그란 의자를

깔고 앉아 참외밭과 당근밭에 난 풀을 뽑고 있었어.

주위가 어두워지자 핸드폰 전등을 켜고 풀을 뽑았어. 잘 자란 쇠비름이 뽑히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며

"할머니, 전 약초예요. 할머니의 만성 변비에 좋고 검은 머리도 나게 해 주는데 왜 뽑는 거예요?"

쇠비름이 목이 아프게 말했지만 귀가 잘 들리지 않는 할머니는 알아듣지 못했어. 쇠비름은 너무 슬펐어.

할머니가 약초를 몰라보고 뽑아 버리니 눈물이 났어, '어떻게 하면 할머니가 내가 하는 말을 알아들을까?'

쇠비름이 걱정을 하며 궁리하고 있었어, 당근들은 쇠비름의 말을 듣고 알아듣지 못한 척 딴청을 피웠어,

할머니가 모기에 물리며 당근 옆에 난 풀들을 뽑아줘서 답답했던 옆구리가 시원해졌어, 푸른 하늘과 해님을 마음껏 바라볼 수 있어서 너무 기뻤어.


할머니는 수염이 마른 옥수수를 따냈어, 남은 옥수수나무에 물을 주고 기다란 풀을 뽑아 뿌리 위에 올려

주었어. 옥수수는 비닐을 덮고 싶은 덕분에 잘 자라서 고마웠어.

비가 오지 않는 마른장마였을 때, 옥수수들은 열매를 키우느라 힘들었거든. 옥수수나무 옆에도 쇠비름이

자라고 있었어, 할머니는 알지 못했어, 할머니는 주위가 컴컴해지자 집에 가기 위해 밭 식구들 곁을 떠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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