굼벵이와 집뱀

[ 에세이 ] < 정거장 없는 완행열차 > 유정 이숙한

by 유정 이숙한

어릴 적 전북 익산시 팔봉면 임상리 동사동 494번지 초가집 지붕 아래 살 때였다. 매 년 봄이면 아버지와 할아버지는 새 짚으로 여러 날 이엉을 엮었다. 맨 위 이영은 머리를 땋은 것처럼 두툼하게 엮어 여러 개를 둘둘 말아 마당 한편에 쌓아놓았다. 짚 꽁무니를 단순하게 엮은 것들은 수가 많았다. 그것들을 다 엮으면 긴 사다리를 밟고 4~5미터가 넘는 지붕에 올라가 지붕 위의 썩은 이엉을 걷어내 마당 아래로 툭 떨어뜨렸다.


지붕의 썩은 이엉이 무더기로 앞마당과 옆마당, 뒷마당으로 떨어졌다. 썩은 이엉들 사이에는 통통한 굼벵이들이 많았다. 장수풍뎅이 유충이나 꽃무지, 매미·풍뎅이·하늘소 등 딱정벌레목 애벌레들인데 비슷해 보이는데 통통한 것이 장수풍뎅이나 하늘소의 애벌레 같았다. 할아버지는 썩은 이영을 차례로 걷어내고 아버지는 새로 만든 이영을 어깨에 짊어지고 사다리를 밟고 순차적으로 지붕 위에 올렸다.


새 짚으로 엮으니 초가집에 깨끗해졌다. 나는 지붕이 궁금해서 높은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지붕 위를 보았다. 사다리가 휘청거려서 무서워서 지붕까지 올라가지 못했다. 75년도 인천으로 이사 오기 몇 년 전에는 지붕에서 썩은 이영들이 떨어질 때 집뱀이라고 하는 구렁이가 나왔다고 한다. 보지는 못했지만 집구렁이가 눈에 띄면 그 집안에 안 좋은 일이 생긴다는 이야기가 있다. 할머니들은 구렁이를 안 좋은 일, 즉 흉함이 일어날 것이라는 것을 암시하는 흉조로 보았다. 그래서 아버지가 야심 차게 빚을 얻어 벌린 양돈 사업이 망한 걸까,


아버지는 지붕에서 걷어낸 썩은 짚을 두엄자리에 모았다. 닭들이 두엄 속에서 굼벵이를 찾아 영양보충을 하기도 했다. 돈사에서 나온 거름들과 지붕의 썩은 짚이 합해져 푹 썩으면 지게에 발채를 얹어 아버지와 할아버지는 논이나 밭으로 온종일 몇 날을 날랐다. 논둑이나 밭둑을 깎은 풀을 지게에 지고 와서 거름자리에서 퇴비가 되었다. 지게에 발채를 얹어 논으나 밭으로 갈 때는 거름을 나르고 올 때는 논둑을 깎은 풀을 지고 왔다.


무더운 여름 철 비가 내리면 지붕 위의 짚 사이로 빗물이 땅 아래로 줄줄 흘러내린다. 봉당 아래 떨어진 물이 골이 생기며 앞뒤 마당의 물들이 합해져 쏜살같이 내려가서 작은 도랑을 통해 달아났다. 그 시절 아버지와 할아버지는 메리야스 바람에 툇마루에 앉아 빗물이 떨어지는 소리를 감상했다. 비가 내리는 날은 감자 수제비를 해 먹었다.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회귀하고 싶은 걸까, 갑자기 굼벵이가 왜 생각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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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이엉공사 (문경토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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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엉공사 (문경토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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