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한자/한문 강사

선생이에요? 여자네??

by 메이쩐

나는 경산의 한 평생학습관에서 한자자원풀이와 명심보감 강의를 하고 있다. 2018년 2월에 이곳에 이사 오고 어디서부터 어떻게 이런 자리를 알아봐야 하는지 참 막막했다. 여기저기 검색해 보고 전화해서 문의를 해보니 이미 그 해 평생학습관 강좌들 강사 모집은 다 끝났다고 했다.


그래도 여기저기 전화해 봐서 도움이 된 건지, 뜨거운 여름이 시작되기 전 어느 날, 아이를 데리고 미용실에 있었는데 전화가 한통 걸려왔다.

"000 선생님 맞으시죠? 저번에 전화로 문의하셔서 제가 전화드렸어요. 원래 중간에 강좌가 신설이 잘 안 되는데 어쩌다 이번 하반기에 00 평생학습관에 한자교실 강좌가 생겼어요! 홈페이지에도 공지 올라갔으니 한번 도전해 보세요." 정말 눈물 나게 기뻤다.


집에 오자마자 검색하고, 강사 지원서 등을 작성하고 메일로 보냈다. 요즘은 면접은 안 보는데, 당시에는 면접도 있었다. 날짜와 시간이 지정되었고 면접을 보러 오라고 했다.


면접장에 갔을 때 나는 실망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전부 나보다 훨씬 연세가 많으신, 누가 봐도 학자의 분위기가 철철 흘러넘치는 남자 어르신들이 다 계셨다. 서로 아는 사람들도 많아 보였다.

"아이고, 여기서 뵙네요. 00 교수님, 00 교장선생님, 00 훈장님."등등. 그때 내 나이가 마흔둘! 게다가 이 분야에서는 너무 새파랗게(?) 젊은 여자 선생.


면접을 봤고, 면접관들이 내 자격증과 미천한 이력이지만 좋게 봐줬다. 그리고 어떤 수업으로 진행할 건지도 꼼꼼히 물어봤던 것 같다. 저런 쟁쟁한 실력자들과 경력자들을 제치고 내가 합격을 할 수 있을까. 거의 마음을 접고 있었다.


발표날이 되었고, 인터넷에서 합격자 발표 명단을 보는 순간, 그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눈물도 주르륵 흘렀던 것 같다. 이제는 잘하기만 하면 된다!!! 그런 경력자들을 제치고 나를 뽑았을 때는 뭔가 나에 대한 기대도 클 거라 생각했다.


좀 더 좋은 인상을 주고 싶어서 수업 첫날, 나름 이쁘게 차려입고 갔다. 화장도 신경 쓰고 핑크색 블라우스도 입고 나름 샤방샤방 분위기 뿜으며.


웃으며 들어간 교실에 내가 들어서자, 사람들이 웅성웅성하더니, 누가 말했다.

"강사님이세요? 내가 아는 사람이 아니네?!" 하더니 그냥 나가버렸다. 응? 뭐지?

당황스러웠지만 뭐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사실 뭔 말인지도 몰랐다. 그분이 알던 사람이 합격해서 오는 걸로 알았던 걸까? 아무튼, 나는 깊이 생각하지 않았고, 칠판 앞에 서서 내 소개를 했다. 원래는 중국어를 전공했고, 자원풀이 한자 수업을 깊이 공부하게 되면서 이 수업도 그렇게 진행할 예정입니다. 우리가 배울 때처럼 달달 외우는 한자 학습이 아닌, 원리를 알고 쉽게 이해하는 한자 학습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등등....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조금 늦게 들어오신 한 어르신은 이렇게 말했다. "선생이에요? 여자네? 뭐 이래 젊노. 그리고 중국어 전공이에요? 나 중국어 전공인 사람한테 한자 배워봤는데, 못 배우겠던데요. 계속 간체자를 써서." 그 말이 끝나자 정말 손이 덜덜 떨릴 정도로 긴장하기 시작했다. 선생이에요, 여자네? 이 말이 계속 귀에 웅웅... 그래도 어쩌겠는가. 이 두 시간 어떻게든 보내야지.


정말 덜덜 떨리는 손으로 보드마카를 잡고, 최대한 긴장하지 않으려 애쓰면서 내가 준비해 온 프린트물을 나누어 주고, 자원풀이 한자 학습에 대한 설명과 몇 가지 한자들의 예를 보여주며 하나하나 풀어냈다. 당시 우리 반에는 한자 공부를 오래 하신 어르신들도 많았고, 진짜 본인 이름도 한자로 겨우 쓰시는 분들도 있었다.


다 생각하지 않고, 모두 다 알법한 한자라도 내가 그 한자가 왜 그런 의미를 갖게 되었는지 하나씩 풀어 설명했더니, 조금 지나 여기저기서 끄덕끄덕하는 모습도 보였고, 아~ 그래서 그렇구나... 하는 소리도 간간이 들렸다. 그러고 나니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그러면서도 머릿속은 내내 아까 그 장면들이 계속 떠올라 힘들었다.


어찌어찌 두 시간이 지났고, 몰래 한숨 쉬며 이것저것 정리하고 있는데, 그중 한 어르신이,

"선생님, 한자 오늘 진짜 재미있게 배웠습니더. 나는 내가 그냥 알고 있는 한자에 그런 많은 뜻이 담긴 걸 칠십 평생 첨 알았네예. 우리 손자한테도 그래 가르쳐 주면 되겠네예. 샘 말 참 재미있게 잘하네요. 강의 많이 해 봤나봐예. 고맙십니데이~ 담주에 보입시다!" 그 말에 갑자기 뭔가 탁 풀리는 느낌이 들면서 주저앉고 싶었다. 그렁그렁 눈물이 맺혔다. 겨우 추스르고 차에 올라타고 진짜 뭔가 억울하기도 하고, 기분이 나아진 것도 같고 하는 여러 가지 마음에 펑펑 울었다.


집에 와서는 그냥 멍하니 앉아있다 드러누웠다. 계속 선생이에요? 했던 말도 생각나고, 내가 아는 사람이 아니네? 했던 말도 생각나고. 갑자기 분해졌다. 애들은 하나씩 집에 오고 있었는데, 나는 내 방에서 이불 뒤집어쓰고 그냥 막 분한 마음이 들어 가만히 눈만 부릅뜨고 있었다. 눈물은 나지 않았다. 그냥 부들부들.... 그러다 저녁 시간이 되어 저녁을 하고 이것저것 바쁘다 보니 별 생각이 또 없어진 것 같다. 이불 뒤집어쓰고 눈 부릅뜨고 있던 그때가 아직도 한 번씩 생생하게 생각난다.


그다음 주 수업을 나갔을 때는 선생이에요? 했던 그분도 와 계셨다. 나는 어쩌면 나보다 공부를 더 많이 하셨을 어르신들 앞에서 무시를 당하지 않아야겠다 생각에 수업 준비도 참 열심히 해서 갔다. 이런 건 몰랐겠지? 싶은 건 또 정말 열심히 설명했다. 그랬더니 슬슬 나를 아래로(?) 보던 몇몇 어른들의 시선이 점점 부드러워지는 걸 느꼈고, 처음에 선생이에요? 했던 그분은 우리 반 반장이 되어 이것저것 많이 도와주셨다. 내가 교실에 들어서면 일어나셔서, "아이고, 선생님 오셨습니까?" 하며 허리 굽혀 인사해 주셨고, 한참 오랫동안 다니시며 나에게 인생의 선배로써도 좋은 말씀도 많이 해주셨다.


나중에는 그분들이 이해도 되었다. 어딜 가나 이 공부는 사실 대부분 강사들 평균 연령이 적어도 60대 이상이며 남자들이며 이미 나보다 인생을 진하게 살아본 분들이다. 그런 분들의 강의는 내 강의와는 당연히 또 다를 것이다. 그리고 수강생들은 공부를 다른 데서 이미 해본 분들도 많다. 그런 분들께 새파란(?) 젊은 여자 선생이 나도 다 아는 한자를 가르치겠다고 나타났으니, 뭐 우스워 보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지금은 나름 경력도 생겼고, 소문도 조금 나서 나의 인지도가 조금은 올라가서 그렇게 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나도 그때 비하면 상황 대처 능력도 약간은 더 숙련되었고, 혹시 그런 분위기가 느껴지는 분이 있으면 더 열심히 눈 맞추고 강의했다. 내가 열심히 하고 정성을 다하니, 모든 건 나를 중심으로 바뀌는 걸 느꼈다. 정말 많이 봤던 것도 다시 보며 강의 준비를 게을리할 수가 없는 이유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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