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출강하는 곳의 수강생은 대부분 어르신이다. 요즘은 젊은 엄마들도 어휘력, 문해력에 관심을 많이 갖기 시작해서 제법 내 또래 혹은 나보다 어린 엄마 수강생들도 많아졌다. 학기가 바뀌고 교실에 처음 들어서는 날이면, 처음 온 수강생들 중에 강사인 내가 생각보다 젊어 놀랐다고 하는 분들이 계신다. 음... 그래도 제 나이 이제 오십입니다만.. 하하!! 다른 학습관이나 센터에서 한자, 한문 가르치는 강사님들의 평균 연세를 생각하면 당연한 반응이긴 하다.
어느 날, 어떤 분이 물어보셨다.
"선생님은 젊은 사람이 언제부터 그렇게 한자 공부 하는 거 좋아했어요?"
"아... 그 이야기는 아주아주 멀리 거슬러 올라갑니다^^"
내가 어릴 때는 아이들이 주산 학원을 많이 다녔다. 우리 때는 언니들이 상고를 다니면 주산, 부기 등을 많이 공부했었다. 우리 언니들도 자격증 취득한다고 열심히 연습하고 공부하던걸 본 기억이 있다. 내가 국민학교 3학년 되던 때, 우리 엄마도 나를 주산 학원에 보냈는데, 기억에 학원은 한옥 같은 집이었고 원장님은 지금 내 기억으로는 환갑정도 되는 남자 어르신이었다.
조금 넓은 교실에 다들 다닥다닥 붙어 앉아서, 원장님이 카랑카랑 한 목소리로 "0원이요~ 0원이요~ 0원이요~0원이면~~~~." 하면 우리는 바쁘게 손을 움직여 주산알을 튕겼다. 그 기억을 떠올리면 원장님 목소리가 아직 쟁쟁히 들리는 듯하다. 목소리가 아주 크고 또렷하고 듣기가 좋았다. 그렇게 주산 수업이 끝나고 나면 좀 좁은 교실로 이동을 했다. 다들 앉으면, 언제부터 썼을지 모르는 손때 가득한 천자문 책을 한 권씩 나누어 주고 읽으라고 하셨다. 우리는 한자가 뭔지도 잘 몰랐지만 원장님이 하라시는대로 열심히 성독(聲讀)했다.
"하늘 천, 따 지, 검을 현, 누를 황, 집 우, 집 주, 넓을 홍, 거칠 황~~~~"
내용에 대한 강의는 특별히 한 적이 없었다. 어쨌든 성독은 반복되는 리듬이 있는 거라, 그렇게 읽다 보니 노래처럼 저절로 잘 외워진 것 같다. 그렇게 거의 3년을 넘게 주산 학원을 매일 다녔으니 천자문도 거의 매일 소리 내어 읽었다. 천자문(千字文)이니까 나는 한참 동안 우리가 그 시절 읽은 게 천자(千字)인 줄 알았지만 나중에 자라서 보니까 200자를 반복해서 읽었던 것이었다. 그렇게 읽었던 200자는 한참 자라서도 오랫동안 기억했다.물론, 내내 읽었던 훈(訓)과 음(音)만. 한문은 그렇게 성독해서 읽으면 생각보다 정말 잘외워진다. 아무튼, 나는 한자를 국민학교 시절 아무것도 모르고 접해보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매일 보시던 신문에서 내가 혹시 익숙하게 봤던 한자가 있으면 뭐냐고 물어봤다. 아버지는 기특한 듯 하나씩 알려주셨는데, 그렇게 나는 한자를 읽고 뜻을 알아가는 재미를 점점 느끼게 되었다.
중학교에 입학하니, 한문 과목이 있었다. 반가움에 책을 뒤적뒤적해 보니, 내가 아는 한자들도 제법 눈에 띄었고 열심히 공부했다. 고등학교 가서도 한문 과목 성적은 참 좋았다. 나는 생물 과목도 아주 좋아했었기 때문에 생물학과를 가고 싶어서 이과를 선택했었지만, 한문 과목은 유난히 좋아했고 잘했다. 한 해 기억 나는 건, 한문 선생님이 시험을 엄청 어렵게 냈었는데, 전교 평균이 40점대였고, 나는 그 시험에서 80점을 넘게 받았던 적도 있었다. 나는 수능 성적이 좋지 못해 생물학과는 지원하지 못했고, 한문학과도 지원해 보고 싶었지만, 이과에서 문과로 지원은 안된다고 했었다. 그러다 전문대는 문, 이과 상관없이 지원가능했기 때문에 평소에도 관심 많았던 중국어를 전문대에서 공부하기 시작했다.
이런저런 얘기를 대충 말씀드리니, 수강생 어르신이 말씀하셨다.
"그라믄 샘도 그거, 한문을 선행학습 한거네예~ 요새 아들도 선행학습 한다 카디만, 관심 있는 거 선행하니까 결과는 좋네요!" 그러게요! 좋아하는 거 선행하니 효과는 훨씬 좋기는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