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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낭아 Feb 15. 2022

호칭에는 책임감 청구서가 들어있다

'엄마·아빠'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책임감의 경지에 들어서 있다.

지구라는 생명체에서 하나의 세포로서 새로운 세포를 생성, 보호, 성장시켜 왔다.

경의를 바쳐 칭송한다.

하지만, 부모도 나약하고 상처 있는 사람이었다.

나약함은 감정으로 표출되고 불안과 긴장감을 유발해 상처가 자식에게 전이되기도 했다.


'오빠·언니, 형·누나'라는 호칭에는 비자발적인 책임이 지워져 있다.

동생을 아끼고 양보하고 부모가 없을 때는 부모가 되어야 한다고 부모에게서 세뇌받지만, 동의 한 적 없다고 뻗댈 때가 있다.

신도 그렇게 부탁하셨다. "이웃을 형제처럼 아끼고 서로 사랑하면 내가 몹시 기쁘단다. 영원히 녹지 않는 사탕을 주마."

하지만 인간은 어림없는 소리라며 싸우고 빼앗고 죽였다. 

전쟁은 인간의 생존 방식이었다.


'교사'라는 명칭에는 자발적 책임이 분명히 있다.

먼저 깨달은 사람이 어린 백성을 일깨우고 북돋우어 바른길 끝에서 등대로 반짝이겠다는 의지를 밝혀, 

나라님에게서 자격을 부여받았다.

어린 백성은 그 의지를 믿고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바쳐 그 책임을 청구한다.

나는 그 호칭에 대한 책임을 다하는 '스승'들을 존경한다.


'선배'라는 호칭에는 거래가 내포되어 있다. 지적·사회적 관계에서 '내게 도움을 주고 편이 되어주면 후배로서의 예를 갖추겠다'는 암묵적 계약이다. 이 계약은 비교적 잘 지켜지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안으로 굽는 팔은  팔꿈치로 다른 사람을 칠 수 있다.


동네 사람 선배에게는 '삼촌'이나 '동네 오빠'라는 호칭이 붙는다. 이는 '힘자랑하지 말고 느끼한 눈으로 보지 말아 달라'는 간곡한 부탁이 들어있다.

그런데도 "손녀 같아서, 딸 같아서, 동생 같아서"라며 가족과 이웃을 혼동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웃을 형제처럼 사랑하랬다고, 사랑이 만지고 비비는 것인 줄만 아는 사람들이 이토록 많다니.

형제가 목마르면 물을 주고, 배고프면 밥을 주고, 아프면 치료해 주고, 슬프면 위로해 주라고 구체적으로 가르쳐주었는데도 말이다.


조카의 아들이 나를 '고모할머니'라고 부른다. 비로소 호칭을 하나 얻은 나는 어른이 된 것 같다. 어른으로 살아야 할 의무가 생겼다. 괜찮은 어른이 되고 싶은 책임감도 생겼다.

요만한 책임감도 무겁게 느껴지는데, 몇 개의 책임감을 진 사람들이 존경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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