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카를 무고하여 죽게 한 최세절

by 금낭아

최수성은 시를 잘 짓고 글씨와 그림에 능했다. 관직에 뜻이 없어 명산대천으로 유람을 다녔다. 숙부 최세절이 승지가 되었을 때, 최수성은 풍자하는 시를 지어 조정에서 물러날 것을 권했다. 이에 최세절이 이 시를 문제 삼아 죄를 씌워 죽게 했다. 최수성의 친구 이달형이 시신을 거두어 산골짜기에 임시로 묻어 주었다. 『병진정사록』

최세절은 1504년 연산 10년에 급제 하였다. 다음해에 연산군이 한나라 효평황후를 위한 제사를 지내기 위해 효평황후를 기리는 시를 짓고 정원의 신하들에게 화답시를 짓게 했다. (효평황후는 왕망의 딸인데, 왕망이 평제를 독살하고 신나라를 세웠다가 한나라가 다시 일어나자 효평황후는 한왕조를 무슨 면목으로 다시 보겠느냐며 불 속에 뛰어들어 자결했다고 한다)

예조 정랑 최세절이 ‘영(靈)이여! 아는 것이 있으면 흠향하기 바란다.’

라고 지으니 연산군이 대노하여 추국을 명했다.

반정한 중종도 최세절을 현요한 관직에 쓰지 말라고 전교했다.

그러다가 중종 12년에 가서야 집의로 관직을 제수 받았다. 그러나 이내 변방인 만포로 보내어 여진족을 탐문하게 하였다.

중종 14년에 승지가 되었지만 사헌부의 탄핵을 받아 관직에서 밀려나왔다. 이 해가 기묘사화가 일어나 조광조의 사림파가 숙청되었던 때이다. 이때 최세절의 조카 최수성은 벼슬을 포기하고 시와 그림을 즐기고 원숭이를 기르며 세속을 멀리하였다. 다음 해에 최세절이 다시 동부승지가 되자 조카 최수성이 이런 세상에 관직에 오른다고 비꼬는 시를 쓰고는 관직을 버리라 하였던 모양이다.

이 말을 마음속에 저장해 두었던 최세절은 다음해에 조카 최수성을 신사무옥에 얽어 넣었다. 최세절이 김전과 남곤에게 “최수성·신잠이 장차 대신들을 모해하려 한다.”고 하여, 최수성은 참형에 처해졌다. 『중종실록』

무고 한 마디에 참형에 처해 질 만큼 최수성을 변호해 주는 사람이 없었을까 궁금하여 조사를 해보니, 한급과 관련이 있는 듯하다.

중종 2년에 사헌부 장령이었던 한급은 강혼·최수준·유자광 등을 탄핵하였다. 비리를 탄핵하는 것이 사헌부가 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중종은 반정공신들에 대한 탄핵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종 5년에 한급이 비리 관직자로 고발 되었다. 강원도 관찰사 안윤손이 장계하기를,

“강릉 부사 한급이, 관물인 면포 1백 50필로 양곡을 산 일이 발각되었습니다. 장오(贓汚)죄를 범하였으니, 속히 파출하소서.”

하여 처벌 되었다.

중종 9년에 한급의 억울함을 호소하는 상소가 올라왔다. 강릉부 백성 백여 명이, 전 부사 한급이 애매하게 죄적에 올라 자손이 금고(禁錮-과거응시 금지)된 일에 대한 내용이었는데, 중종은 치죄가 끝난 사건이니 더 의논 할 것 없다고 말했다. 그런데 다시 강원도 유생 박수량 등이 상소하여 전 부사 한급의 억울함을 호소하니, 중종은 그제야 “이 상소를 보니, 한급의 애매한 사정이 역력히 진술되어 있다. 그 때는 감사의 계문만 보고 처벌하였으나, 감사도 또한 직접 본 일이 아니니 어찌 억울함이 없겠는가! 다시 의논하라.” 하였다.

그런데 이 기사 아래에 사관의 사견이 적혀 있다.

‘지난 별시에 한양에 올라온 강릉유생들을 한급이 크게 대접하고 상소를 부탁하게 한 것이다. 상소를 올린 박수량은 훗날 김식 등의 무리(사림파)에게 아첨하여 현감자리를 맡아 백성에게 재물을 빼앗았다. 한급의 일이 3~4년이나 지나 상소한 것은 한급이 교사한 때문이다.’

종합해 보면, 훈구파를 공격하던 한급이 괘씸죄에 걸려 죄적에 오르고, 그 억울함을 호소한 유생이 사림파의 사람이라 또 비난 한 것이다.

중종 11년에 한급의 모친이 다시 원통함을 호소했다. 이쯤 되니 중종도 뭔가 있나 싶었던지 그제야 후임 강원도 관찰사들을 불러 물었다.

고형산 등이 아뢰기를 “강릉에서 친구를 만나니 말하기를 ‘전 부사 한급이 관청 물건을 가져간 것이 아닌데 누명을 썼다.’고 말했었습니다.”

이에 중종이 신원을 의논하라 명한 기사 아래에 또 사관의 사견이 덧붙여졌다. ‘한급은 학식이 없고 교오탐비하고, 민활한 말재주로 간알하고 이름 내기를 좋아하고 과거시험도 남의 손을 빌어 급제하였다..... 강릉 부사 때 조정의 관리에게 예우하지 않았다......’

사실 이 일은 일찍이 한급이 판관 유식과 사이가 틀어져서 생긴 일이었다. 한급이 유식의 비리를 들추어내니 유식은 앙심을 품었다. 마침 한급이 말을 판 돈과 면포를 첩의 집에 보내자, 유식이 자기 처남 윤희손을 시켜 관찰사 안윤덕에게 고발하게 하였던 것이다. 또한 관찰사는 조사도 하지 않고 조정에 장계를 올린 것이었다.

이 한급의 사위가 바로 강릉유생 최수성이었던 것이다. 최수성이 최세덕·박언충 등과 함께 상소를 올렸던 것이고, 훈구파의 심기를 건드린 것이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남곤의 미움을 산 이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