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친의 음덕으로 수명을 늘린 윤두수

by 금낭아


윤두수의 부친 윤변(尹忭, 1493년 – 1549년)은 조광조의 문인이었다. 조광조가 옥에 갇혔을 때 유생들과 함께 대궐 앞에 나아가 원통함을 호소하였다. 급제 후 훈구파의 견제를 견디며 관직을 이어나갔다.


1535년 중종 30년에 김안로의 아들 김희(중종 사위)가 김안로를 비방하는 유생 유경인과 진우를 무고하였다.

“이들은 ‘우두머리 10여 인을 제거하면 조정이 저절로 안정될 것이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하여 흥인문 밖에서 대대적인 추국이 벌어졌다.

결과 진우만 참형에 처해지고, 장옥·유경인은 장 일백 대에 절도로 위리 안치하고, 장임중과 한용은 모두 장 일백 유 삼천리에 처하고, 김희년·정사현·민기문·이운손은 모두 장 일백에 도 삼년(徒三年) 형에 처했다.

그 때 김안로는 어떤 양민의 자손 수 십 명을 노비로 삼으려고 했다. 허항은 김안로의 뜻을 받아 그들에게 가혹한 고문을 해서 무고하게 죄를 덮어 씌어 그들은 노비로 될 상황이었다.

형조정랑 윤변이 문서를 여러 번 조사하여 그 원통함을 밝혀 보고하였다. 그래서 수십 명의 가족은 노비가 될 신세를 면하였다.

그 일로 윤변은 허항의 미움을 받아 체직 당하였다.


<<학산한언>>

어느 날 윤변이 광통교를 지나니 한 노인이 다가와 절을 하였다.

“년 전에 시생이 형조에 잡혀 들어갔는데 심문하던 사람이 조작하여 사형을 받게 되었지요. 그 때 공이 제 원통함을 변론하여, 공의 명찰함을 힘입어 사형을 면했습니다. 소인의 자손 수 십명이 노비가 될 것을 막아주셨으니, 은혜를 갚을 일을 고민하였습니다. 계사년에 태어난 공의 아드님은 수명과 복록이 좋지 않아 한 가지 처치를 하였습니다.”

하며 종이 한 장을 바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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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사생유시남자 수부귀 다남자? 이게 무슨 뜻인가?”

“계사년에 태어난 공의 아들은 명이 짧습니다. 그러니 이 종이를 가지고 강원도 금강산 유점사에 가십시오. 오백 쌍의 촛불을 준비하여 부처님께 올리고 축원하십시오. 그러면 경사스런 일이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소인의 보답입니다”

하고 노인이 떠났다.

윤변은 지난 계사년(1533년)에 후처에게서 아들 윤두수를 얻었었다. <<계압만록>>에 윤변이 현감으로 나갔을 때 좌수 딸을 보고 마음에 들어 청혼하였다. 첫날밤을 지내고 후회스러워 다시 찾아가지 않았고 임기를 마치고 홀로 상경했다.

좌수 딸이 부모에게 상경하겠다고 하여 윤변의 집에 들어갔다. 윤변의 큰 아들 윤담수를 불러 꾸짖었다.

“자식 된 도리로 어찌 계모를 모시지 않는가? 나는 팔거현씨로 부친과 혼인하였으니 안방으로 안내하게.”

좌수 딸은 큰 며느리도 불러 꾸짖고 살림살이를 인계받아 챙기다가 때가 되어 큰 며느리에게 살림살이를 인계하고 옆방으로 물러났다고 한다.

그렇게 태어난 후처의 큰 아들이 명이 짧다니, 윤변은 그 말을 좇아 유점사에 갔다. 노인의 말대로 빈 곳에 이름을 써넣어 부처님 앞에 불을 밝힌 다음 축원을 했다. 그랬더니 그 종이에 글자가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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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명이 可耋가질이면 여든까지 살고 부귀는 자족하여 비할 데가 없고 그 아들들도 다 귀하게 된다는 뜻인가?”


윤두수는 1533년에 태어나 1601년까지 살았고 아들 4형제를 두었다.


그리고 윤변 사망에 대한 야화가 있다.

<<계산담수>>

고려 공양왕이 삼척에서 죽었다.

삼척 관아에 백두옹 귀신이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이 백두옹 귀신이 나타나면 삼척 부사가 죽었다.

1549년 명종 4년 7월 삼척 부사 윤변이 되어 병이 들었다.

강원 관찰사 송인수가 시찰을 돌다가 삼척의 죽서루에 묵고 있었는데, 갑자기 한 백두옹이 창문으로 들여다보았다.

“부사인 줄 알고 왔더니 감사로구나.”

하면서 창을 닫고 가버렸다.

송 감사가 아랫사람을 불러 나무랐다.

“침소에 함부로 사람이 들어오게 하였더냐?”

“누가 들어왔다는 말씀입니까? 들어온 자도 나간 자도 없사옵니다.”

송감사의 등줄기가 한 순간 서늘했다. 소문으로 듣던 백두옹 귀신을 줄을 알고 벌떡 일어났다. 시종들을 재촉해 삼척을 벗어나 우계역(羽溪驛-강릉)에서 묵었다.

이튿날, 삼척에서 사람이 달려와 삼척부사의 병이 위독하다면서 청심환을 찾는 것이었다.

얼마 후 삼척 부사의 사망 연락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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