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불균형과 앙드레 드밤베즈에 관하여
La Vertige: 1. 자신의 몸이나 주변 사물이 회전하거나 흔들리는 것처럼 느껴지는 착각. 2. 공중에 떠 있는 듯한 느낌 속에서 균형을 잃고 추락할 것 같은 불안감을 동반하는 감각. 마치 아래로 끌어당기는 힘이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 3. 강한 감정에 사로잡히거나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일시적으로 정신이 혼란스럽고 어지러운 상태. 출처: Trésor de la Langue Française
일상에서 불균형을 느낀 지 오래되었다. 뒤틀려 있는 상태를 반듯하게 잡아내고 싶더라도, 하루아침에 되는 일이 안다. 자아성취를 위해 목표를 설정하고 수행하는 행위도, 불균형의 일부가 되어버렸다. 정확히 말하자면, 넘어지기 일부직전인 팽이에 자석 같은 무언가를 갖다 대어, 일시적으로 지탱만 하고 있는 느낌이다.
불균형의 시작은 남을 위해 조금씩 나를 내어주면서부터 시작되었다. 굳이 배가 부르지만, 음식한 사람의 성의를 생각하여 한입 더 먹던 것. 씻고 자야지만 다음날 개운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술잔을 기울이며 누군가의 이야기를 몇 마디 더 들어주던 것. 남에 대한 배려를 핑계로 삼다 보니, 나를 위한 배려도 늘어만 갔다. 그만큼 체력은 고갈되었다. 그리고 나에 대한 관대함이 늘수록,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에 대한 그림의 선명도가 점차 사라져 갔다.
La Vertige라는 단어를 처음 본 것은 전시제목에서였다. 앙드레 드밤베즈라는 프랑스의 벨에포크 작가의 회고전의 제목으로 "상상으로부터 온 현기증" (Vertiges de l'imagination)이란 제목이 붙었다. 드밤베즈는 초기에는 유화와 판화로 시작해, 장차 만화가로 1867년에 태어나 1944년에 죽은 작가다. 초반의 작업은 클래식한 유화로 부잣집 집안사람들의 초상화가 주를 이뤘다면, 시대가 바뀌면서 전쟁과 정치적 격동 중의 도시 풍경들, 그리고 빠른 기술의 발전으로 근대화와 도시화의 주제들이 빠른 템포로 출현한다. 출근길 지하철역을 가득 메운 사람들, 에펠탑에서 트로카데로 광장의 군중들 (그리고 곧 터질 전쟁을 암시하듯 나치군과 소련군의 국기가 대치한 장면)이 내려다보이는 광경들, 이외에도 몽마르트에서 시위대와 경찰이 서로를 향해 우루르 돌진하는 것, 환상적인 비행의 꿈인지, 이차세계대전 비행폭격의 기록인지 헷갈릴 만한, 평온한 농촌위를 위험한 각도로 내려다보는 경비행기들. 전시제목은 조감도와 같은 과감한 시점의 전환이 당대의 간객들에게 선사했을 법한 아찔한 어지러움을 표현하려 했던 것. 하지만, 250여 점의 일대기를 보고 있다 보면, 여실히 드러나는, 숨이 찰 정도로 빠른 시대적 변화와 그를 애써 포용한 작가의 허덕거림이 오늘날 그림을 마주한 우리에게도 현기증처럼 다가온다.
작가는 격변하는 시기들을 살아가며, 일종의 어지러움을 느꼈을까? 디즈니나 엠넷 같은 대중문화, 적당히 희망 섞인 대중적인 정치의 안정기였던 90년대와는 달리, 우리는 오늘날 얼마나 빠른 속도로 다른 시대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걸까? 내가 오늘날 느끼는 불균형은 어쩌면 주변적인 요소들의 끌어당김 때문이 아닌, 내가 딛고 있는 지반 자체가 흔들리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인공지능의 발전과 같은 기술적 변화는 눈에 띄는 성과로 시끌벅적한 이야깃거리를 생산해 낸다. 하지만, 기술의 변화를 넘어서, 무언가를 인지하고, 고민하고, 기록해 왔던 방식들이 바뀌고 있는 것, 내 사고의 지반이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날마다 체감한다.
시대적 변화가 아찔할 정도로 뒤틀릴 때에, 드밤베즈는 어쩌면 백지장처럼 안정된 화폭을 붙잡고, 주섬주섬 자신이 느낀 변화들을 그곳에 담아내고 형상화하려 했는지도 모른다. 헤아릴 수 없는 복잡 다난한 주제들을 붙잡고 씨름하던 와중, 어느새 고전적 유화에서 배웠던 거추정한 빛과 질감의 표현을 걷어내고, 간결한 선과 뚜렷한 색감, 엉뚱한 상상력 (말하자면, 파리 오페라 위를 달리는 비행택시)만이 남아 있는 현대적인 일러스트와 같은 자신만의 화풍을 발견하지 않았을까?
올 4월 한국에서 삼주를 지내고 이곳으로 돌아온 이후, 꼬박 한 달 동안 밤낮뿐만 아니라, 입맛, 지구력, 수면시간, 심지어 상대방의 말을 온전히 들을 수 있는 집중력 마저 변했다. 지난 20여 년간의 노동이 무색할 정도로, 글을 몇 단락 읽는 것 마저 혈투 같은 씨름이다. 모든 변수가 바뀐 가운데, 할일은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다. 해결이 안되는 상황에 백지장 같은 화면에 글을 적어본다. 나는 지금도 번역을 할 수 있고, 지금도 논문을 읽을 수 있고, 읽었던 내용을 짜집기한 글도 쓸 수 있고, 지금도 누군가에게는 좋은 조언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이야. 조용히 스스로에게 속삭인다. 어지럼증, 오늘도 마음을 다스리고 붙잡아보자.
(사진: Petit Pala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