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했던 그때의 내게 해주지 못한 말
냉동실에서 꺼냈던 고기 한 덩어리!
해동을 시키지 않은 채 왜 빨리 녹지 않냐고 고깃덩어리를 쾅쾅 내려쳤다.
그 꽁꽁 언 고기를 보는 순간 5년 전 우울증으로 힘들었던 나의 심장이 떠올랐다.
나만 참으면 모든 가족이 다 평온해질 줄 알았다.
냉혹한 현실 앞에서 엄마인 내가 똑바로 서 있어야지만 아이들을 지킬 수 있을 것 같았다.
잘 될 거야~ 괜찮을 거야라는 말이 허공에 맴돌며 나를 공허하게 만들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이 혼자 중얼중얼하며 쿵쾅거리는 심장을 진정시켰다.
힘든 나에게 좋은 말로 자꾸 안심을 시켜서 미안해.
" 이만하면 다행이야~ 더 불행한 일이 없어서 다행이야! 이 정도면 너는 억지로라도 웃고 억지로라도 참을 수 있어!".
긍정은 부정을 애써 부정할 때만 유용한 것이라는 생각마저 든 내게 미안했다.
살다 보면 내 마음대로 풀리지 않는 게 인생이라고들 한다.
인생에서 고비를 맞이하면서 집 잃고 차 잃고 빚더미라는 산에 앉아보기도 했다.
그 산이 그때는 얼마나 높아 보이던지!
왜 그렇게 참으라고 했는지 인제 와서 후회한다. 참는데 이골이 난 삶이였으니까.
힘들 때, 펑펑 울고 싶을 때, 내 얘기를 들어줄 누군가를 찾아서 헤매고 다녔다.
나의 속마음을 내가 들어준다는 게 너무 무서웠다.
그리고 나를 위로해주기보다 누군가에게 위로받기만을 바라면서 방황만 했던 나.
엄마란 존재는 힘들 때 위로가 돼 줄지 상상했나 보다.
또 그렇게 당신 삶에 비하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치부하는 걸 억지로 참았던 나.
정신과 의사 선생님도 나를 위로해줄지 상상했나보다.
또 그렇게 심드렁하게 들어주며 모니터에 나의 증상만 받아 적기 바빴고,
'사람들 만나러 나가세요. 집에만 있으면 안 됩니다. 햇빛을 많이 보세요.'라는 짧은 메아리만 남긴 채 약 처방을 받고 나와 울컥했던 나.
너무 살이 빠지고 밥맛도 없이 힘을 못 써서 한의원에 갔더니 40대 초반이 나에게 화병이라고 할 때 뭐 이런 인생이 다 있냐고 다시 서럽게 울었던 나.
내가 잘못한 것도 없는데 왜 내게 우울증이 왔냐고 서럽기만 했었다.
내게 온 상처를 인정하는 것이 너무나 두려웠다.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난 건지도 억울했겠지. 그것은 문제를 누구의 탓으로 돌리는 것도 지쳐버렸었지. 다 내 책임이라고, 내가 못나서 그런 거라고 그렇게 나를 벼랑 끝으로 밀어버렸다.
아직도 책을 읽고 글을 쓸 때면 눈물이 주체를 못 할 때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억지로 참지 않아도 돼~ 울고 싶을 때 실컷 울어도 돼~
여태껏 너무 잘했어~ 이제는 참지 마! 벼랑 끝으로 내몰아서 미안해 정말!
억지로 좋게 보이려고 애쓰지 말자. 있는 그대로의 나도 정말 멋지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