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는 언제 갈 수 있어?"
"엄마, 나는 언제 탈 수 있어?"
코로나가 시작되면서 감히 상상할 수 없게 된 해외여행. 평범하게 할 수 있는 해외여행 이야기는 내 딸은 특별하게 다가왔다. 많은 사람에게 여행의 이유는 많을 터. 내 딸의 여행 이유는 달랐다.
인생과 여행은 신비롭다. 설령 우리가 원하던 것을 얻지 못하고, 예상치 못한 실패와 시련, 좌절을 겪는다 해도, 우리가 그 안에서 얼마든지 기쁨을 찾아내고 행복을 누리며 깊은 깨달음을 얻기 때문이다. [김영하의 여행의 이유에서]
12살이 된 딸이 있다. 딸은 비행기도 타 본 적도 없고 제주도도 가보지 못했다. 학교에 간 딸이 친구들한테 이런 얘기를 하면 친구들이 설마라는 표정을 지으며 거짓말 아니냐고 한단다. 그런 얘기를 들을 때면 나의 마음에 돌덩이가 얹힌다.
인생과 여행은 신비롭다던 김영하 작가의 말에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살다 보니 예상치 못한 실패와 시련, 좌절에 내 딸에게 전해주고픈 여행의 의미를 전해줄 수 없었다. 12년을 살아온 딸의 제주도 여행은 그렇게 멀고도 가기 힘든 탄자니아 세렝게티였다. 부산에서 그리 멀지도 않은 제주도를.
그동안 힘든 집안 사정에도 기쁨을 찾아내고 행복을 누리게 해줬던 딸.
밝게 웃어주며 엉뚱한 말로 엄마를 웃게 해주던 딸.
그러나 아직은 인생의 신비로움을 느낄 나이는 아니다. 여행의 신비로움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던 엄마의 마음이 하늘에 닿았을까.
“어둠이 빛의 부재라면 여행은 일상의 부재다.” 김영하 작가는 말한다. 내 딸에게 일상의 부재를 선물한다. 내 딸은 세렝게티에 있었다.
자기 의지를 가지고 낯선 곳에 도착해 몸의 온갖 감각을 열어 그것을 느끼는 경험. 한 번이라도 그것을 경험한 이들에게는 일상이 아닌 여행이 인생의 원점이 된다. [김영하의 여행의 이유에서]
시샘하는 겨울의 바람이 세차게 느껴지는 제주의 2월은 그렇게 우리 모녀에게 반겨주며 즐거이 노니다 가라고 반가이 반겨준다. 엄마의 뱃속에서 지구여행을 온 지 12년이 지난 후 딸은 처음으로 비행기를 타보고 제주도라는 우리나라의 섬을 밟아본다.
나 역시 여행이 인생의 원점이라는 걸 눈치채버렸다. 딸은 나흘 동안 하루하루가 너무 아쉬운 듯 온몸의 감각을 총동원해서 제주도의 기억과 추억을 꼬깃꼬깃 상자 속에 담아놓는 듯했다. 첫 제주도 여행이 인생의 원점인 마냥.
딸에게는 하루하루의 시간이 우주여행을 온 마냥 속절없이 지나간다. 그리고 마지막 날 저녁노을 바라보며 딸과 나는 속삭여본다.
“엄마~ 부산의 하늘도 예쁜데 제주도의 노을은 왠지 아름다워 보일까? 우리 다시 제주도 꼭 오자~ 알았지!”
일상으로 돌아올 때가 아니라 여행을 시작할 때 마음이 더 편해지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나와 같은 부류의 인간일 것이다. 이번 생은 떠돌면서 살 운명이라는 것. 귀환의 원점 같은 것은 없다는 것. 이제는 그걸 받아들이기로 한다. [김영하의 여행의 이유에서]
이번 생은 딸과 떠돌면서 사는 맛도 한번쯤은 맛보고 싶다. 여행에서 돌아온 지 두어 달이 흘러간다. 일상의 순간들에 지쳐간다. 딸과의 제주도 여행을 시작할 때, 나는 지금 그 시간으로 돌아 가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