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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랑 Apr 29. 2021

살살 좀 하세요!

중학교 입학을 하고 나서 내가 제일 원했던 동아리가 있었다. 목소리로 나를 알리는 방송부였다. 그렇게 원하던 방송부! 결과는......


* 제목: 목소리 좀 살살하세요!


* 가장 큰 감정 : 경계모호함, 확실성부족함 


* 자세한 감정 : 타고나기를 목청이 큰 목소리! 스스로도 얘기하면서 목소리가 크다고 느껴질때가 있다. 

목소리가 커서 손해본 적이 많다. 여자가 되가지고 목소리만 커서 뭐할거냐는 말로 들었다. [암닭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고 듣고 자랐던 세대인 나. 목소리가지고 나에게 태클이 두번이나 들어온다. 그것도 사람이 여럿이 있는데서! 


* 색에서 느끼는 감정 : 안정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내 목소리가 과연 그럴까. 목소리가 커서 피해주고 살지도

않았는데 왜 자꾸 내 목소리가지고 시비를 거냐고...... 노래 잘하는 가수가 되었으면 내 목소리에다 태클 걸사람이 있을까?



현재 48년째 부산 토박이로 살아가고 있다. 그야말로 붓산아지메에다가 붓산사투리도 끝내준다. 그만큼 말투도 억세다라는 뜻이다. 친구들이 우스갯 소리로 나에게 자주 한 말이 있었다. "니는 입만 안 열면 된디이~ 입 열면 산통 다 깨진다!!!" 부산에서 벗어나서 살아본 적이 없다. 그러니 사투리가 심한 건 당연한 거다. 게다가 목소리까지 크다. 내가 생각해도 내 목소리 큰 걸 인정한다.


오늘 강의가 있었다. 강사들이 다 모였다. 그냥 나는 원래 목소리로 얘기를 했을 뿐이다. 책임 강사로 오늘 일을 처리하시는 분이 바로 내 옆에 와서 "살살 좀 하세요!" 앞에 학교 관계자가 있는데 눈치가 없이 목소리를 크게 하면 어떻하냐는 눈치다. 난 목소리 크게 한적 없다고!


원래 내 목소리라고! 그리고 나서 한 번 더 다른 강사들과 얘기를 나누고 있는데 또 옆에 와서 한번 더 지적을 한다. 이번에는 본인 입에다가 손락까지 갖다대는 제스쳐까지!! 아.. 놔.. 정말... 내가 뭘 그리 잘못했느냐는 의구심마저 들었다.


친정 부모님의 목소리도 한몫하신다. 다른 집들도 마찬가지지만, 우리 집에서 싸우면 건너 동에 있는 집까지 다 들린다고 할 정도로 목소리가 엄청나게 크신 친정아버지! 그 목소리로 두 분이 싸울 때면 나는 하염없이 우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힘이 센 남자의 폭력을 어린 여자애가 어떻게 감당을 할 수 있겠는가. 건너 동까지 들리는 목소리를 왜 남동생 둘만 못듣는 걸까. 동생들이 잘 때 싸우면 나는 무서워서 벌벌 떨었다. 동생들을 아무리 깨워도 일어나지 않는다. 혼자서는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이 셀 수도 없이 많았다.



유전자 자체가 목소리가 크다. 남동생 둘이 목소리가 만만치 않다. 그래서 어릴 때 동네에서 놀 때면 아줌마들이 우스갯 소리로 우리 집 애세 명 소리밖에 안 들린다고 할 정도였다. 목소리가 남다르게 컸으니 초, 중, 고등학교 때 수업 시간에 앞에 나가서 노래 부르는 건 예사였다. 친구들이 나를 계속 지목했으니 선생님들도 내 노래를 듣고 나면 다음에는 대놓고 나보고 나와서 노래 부르라고 한 적도 많았다.



당연히 노래방에 가서 노래 부르며 잘부른다고 소문났지. 목청이 크니 노래방이 쩌렁쩌렁 울릴 수밖에 없다. (또 마이크 잡으면 목소리 더 커짐) 여태껏 살면서 목이 쉬어본 적이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 아무리 땡고함을 지르고 노래를 부르고 난리가 나도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면 아무렇지 않다. 내가 생각해도 신기할 정도니, 말이다.



한국에서 제일 운전하기 힘든 곳이 부산이라고 한다. 그만큼 운전하기에 만만치 않은 곳이 많다는 소리다. 그리고 부산 사람들의 센 발음 때문에 싸움이 한번 나면 정말 큰일이 벌어진 것이나 마찬가지다. 나도 30대 초반에 운전을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60대 할아버지는 여자이고 젊어 보이니 다자고짜 내 차로 와서 고함을 지르는 상황이 벌어졌다. 처음에 무서워서 제가 뭘 잘못했냐고 했다가 나중에는 나도 열 받아서 차에서 내려서 얼마나 고함을 지르면서 싸웠는지 지나가는 사람들이 나보고 참으라고 말린 적도 있었다. 누가 보면 내가 할아버지에게 시비건마냥........



몇일전에도 택시를 탔는데 기사분이 75살인데 내 목소리를 듣더니 아줌마들 모임 가면 리더 역할 할 거 같다면서 목소리에 힘이 있고 심지가 굳어 보인다면서 큰 리더가 되겠다고 하신다. 아니라고 변명을 하고 싶어지만 가는 거리가 짧아서 말할 처지도 아니었다. 요 며칠동안 목소리 때문에 계속해서 에피소드가 생긴다. 본의 아니게 목소리 때문에 나를 외향형으로 보는 이들도 많다. 난 내향형이다. 단지 목소리만 클 뿐인데... 정말 제 목소리만 큰 거라구요~~~



지금은 큰 목소리 덕분에 강의할 때 아이들이 조는 경우가 드물다. 그만큼 목소리가 커서 잠이 깰 지경이다. 조는 친구들은 정말 피곤하던지, 아님 큰 목소리에 적응한 친구들일 것이다. 아들이 나의 강의에 보조 알바로 따라간 적이 있었다. 내가 강의하는 반에 들어와서 한참 동안 나의 강의 듣고 나갔다. 집에 오는 길에 나에게 물어본다. " 엄마~ 목소리도 큰 데 마이크왜 해?" 에효..... 그나마 마이크를 가지고 강의를 하니까 목이 덜 아픈 거라고는 얘기해줬다.




방송부 면접을 보러 갔다. 원고를 주고 읽으라고 한다. 내 목소리를 듣더니 밖에서 선배들이라는 것들이 낄낄대고 웃고 있다. 그리고는 다 읽고 나서 나에게 던진 한마디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 그 목소리로 방송부 하시려구요?"



왜 내 목소리가 어때서~ 살살 말하면 뽑아주지도 않았을 거잖아! 아나운서처럼 차분하고 낭랑하고 안정감 있는 목소리! 나도 그런 목소리를 갖고 싶었다고! 그런데 이렇게 태어난 걸 어쩌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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