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으로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크고 작은 시련 없이 사는 사람이 세상천지에 몇 있을까? 나 역시 48년이라는 인생을 살아내고 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와보니 잘 살아왔다고 나 자신을 와락 껴안을 수 있는 용기가 생겼다.
2014년 12월 크리스마스 다음 날, 내 인생에 닥친 시련은 나오려 해도 나오지 못하고 끝도 모를 늪 속으로 끌려들어 가고 있었다. 살면서 상상도 해보지 못한 일을 남편은 내 눈앞에서 보란 듯이 실제로 해 보이고 말았다. 사람 목숨은 한순간이라 했던가. 사람을 돈으로 환산을 하면 얼마가 나올까. 자신의 가치를 몇백억으로 생각하는 사람부터 몇 십만의 가치로 여기는 사람들까지 다양할 것이다. 사람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데에는 돈의 액수가 중요하지 않았다. 헤매고 있던 우리 부부는 정신 차리고 정리를 해보니 집도 날아가고, 차도 날아가고, 빚은 내게 산더미가 되어 날아와 있었다. 작지만 네 식구가 살 수 있는 작은 집으로 이사하고, 남편도 슬슬 정신을 차리면서 일하러 나가고 모든 게 평안한 상태로 돌아온 줄 알았다.
내가 이상하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남편 상담했던 정신과 의사 선생님께 갔었다. 의사선생님은 나에게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진단을 내렸다. 하지만 나의 증상은 나아지지 않았고 심한 우울증으로 되었고 불면증이 밤마다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정말 살아서 뭐 하느냐라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던 시기였다. 아, 사람들이 이런 마음 때문에 자살을 하는구나라고 걸 느끼는 시간은 이어지고 있었다. 내가 원하던 삶은 이런 게 아닌데 뭘 그리 잘못을 하면서 살았는지 왜 이런 시련이 나에게 오냐고 한탄과 한숨이 뒤섞인 삶을 살아내고 있었다. 다행히 주위 분들이 나의 상태를 알고는 집에 혼자 못 있게 하고 계속 나를 밖으로 끌어내서 햇빛을 보게 해주면서 딴 생각 못 하게 애쓰고 계셨다. 하지만 그것도 어찌 매일 할 수 있을까. 그러다 보니 내가 할 일이라고는 아이들 학교 보낸 뒤 다시 안방에 누워서 TV를 켜놓고 보다가 잠들다 일어나 다시 아이들이 오는 시간을 기다리곤 했다.
그렇게 그렇게 새로운 시작을 꿈꾸지도 않고, 다시 일어설 용기도 갖지 못한 시간이 지나던 어느 날, 핸드폰으로 유튜브를 보다가 '소파에서 5km'라는 제목이 눈에 띄어 보게 된 영상이 나의 삶이 다시 시작하는 계기가 될 줄은 나 자신도 알지 못했다. 영상의 주 내용은 소파에 앉아있던 분들을 밖으로 나오게 해서 매일 조금씩 거리를 늘려가며 5km 달리기를 시작하면서 완주까지 하는 그려낸 내용이다. 그렇게 나의 컴포트 존을 벗어나는 일이 순식간에 다가왔다.
중, 고등학교 체육대회 때마다 릴레이 선수였던 나였다. 고등학교 때는 100m를 16초대에 들어와서 체육 선생님도 놀라신 모습이 기억에 생생하다. 고등학생 2학년 때 처음으로 테니스를 배우게 되었다. 테니스에 푹 빠져서 열심히 혼자 연습도 하곤 하던 내게, 쌤이 "니~ 공부하기 싫으면 고마 운동해라~" 하셨지만 그 체육 선생님은 심장마비로 운동장에서 쓰러지시고 나서 돌아가셨다. 고3 체력장 점수 따려고 달린 게 마지막이었다.
20대대부터 운동이라는 건 돈을 지불해야지만 할 수 있다고 여긴 나. 수영부터 시작해서 헬스, PT, 필라테스, 요가 등등 늘 운동을 해왔던 나였다. 경제적으로 힘들어지고 나니 운동을 하고 싶어도 돈이 없다는 내 처지에 눈물만 흘린 시간들.. 운동뿐이랴, 모든 것이 다 가로막혀서 나에게 다시 숨 쉴 수 있는 새로운 것들은 멀어져만 가고 있었다. 운동은 비용을 지불해야만 할 수 없다고 단정 지었던 내 생각과 처해 있는 환경을 한탄만 하는 나에게 뒤통수 맞는 영상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처음 달리러 나갔을 땐 그 흔한 운동화도 없어서 스니커즈를 신고 뛰었다. 물론 500m도 못 가서 주저앉아버렸다. 그 뒤로 그래도 중고등학교 때 릴레이 선수였는데 하는 오기가 생기면서 매일 조금씩 거리를 늘리기 시작했다. 핸드폰에 운동 거리 측정 앱이 있다는 걸 알고 나서 2019년 4월 15일부터 기록으로 남겨놓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도전을 하기로 했다.
2019년 4월, 나의 컴포트 존을 벗어나 새로운 시도를 시작했다. 달리기를 하는 동안은 정말 걱정은 고사하고 달려내기도 바빴다. (걱정은 무슨! 숨차서 숨 쉬고 바빴고, 목말라서 빨리 달리고 물먹으러 갈 생각만 했고, 안 꼬꾸라지려고 앞만 보고 달렸을 뿐!) 오로지 달리고 있는 나만 느껴졌으니 그만큼 편한 시간이 내게 다시 왔다는 게 신기했다. 눈만 뜨면 달리러 나갔고, 신랑이 열 받게 하면 달리러 나가고, 온갖 잡생각이 나를 괴롭히면 달리러 나가고, 걍 막 달렸다.
얼마 전 TV N에서 "나의 아저씨"를 정주행한 적이 있다. 거기에서 지안이라는 주인공이 취미라고 적어놓은 달리기라는 글이 유독 나에게 눈에 띄었다. 지안이가 그랬다. " 달릴 때는 내가 없어져요~ 근데, 그게 진짜 나 같아요." 그 장면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나 역시 극 중 지안이의 마음을 너무 잘 알기에. 내가 왜 그렇게 달리러 나갔는지 알았기에.
그렇게 달리기를 시작하고 2019년 10월 부산 바다 마라톤 10km 완주 메달을 받았다. 이날의 기쁨은 아무도 모른다. 신랑도 가족도 아무도 모른다. 글을 쓰는 이 순간도 느껴진다. 10km 완주 랙을 밟는 순간 눈물이 터져 나왔다. 그동안의 일들이 스쳐 지나가면서 정말 장하다고, 잘 해냈다고 나에 대한 감격의 눈물이었던가. 그렇게 거친 숨을 몰아쉬며 땅에 퍼질러 앉아서 혼자 울고 있었다. 그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돈 하나 들이지 않고 (아니네~ 러닝화는 샀네^^) 혼자 힘으로 달리기 시작해서 혼자 힘으로 마라톤 대회 메달을 받게 되는 순간이었다.
나에게 달리기와 책을 읽고 글쓰기란 심폐소생술이다. 달리기 시작하고 나서 3년째인 2021년! 지금도 힘들 때마다 달리러 나가고, 감정의 변화가 느껴질 때면 글을 쓰고, 쉼이 필요할 때는 책을 읽는다. 나란 사람은 1년에 3~4권도 책을 읽기 힘들어했다. 책 읽는 거는 좋아했지만, 독서습관이 없었다. 달리기를 시작하고 나서 독서를 시작했다. 10km 완주해냈다는 용기가 독서습관으로 이어졌다. 인스타에 독서 인증을 혼자 올리면서 습관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클프바비님이 독서 모임에 들어오지 않겠냐는 제안에 득달같이 한다고 하면서 한 달에 2권의 책을 읽고 2번의 서평을 쓰는 환경으로 나를 앉혀놓았다. 그렇게 책 읽기와 서평 쓰는 습관도 3년째 진행 중이다.
달리기! 읽기! 쓰기! 이 모든 게 나를 다시 알게 되는 시작이었다.
항상 즐겁고 행복하고 자유롭게 여행을 다니고 낭만적 여유를 즐기며 생활하는 사람은 과연 몇이나 있을까. 그런 일들이 행복을 가늠하는 기준이라면 인간은 시련 앞에서 늘 불행하다고 투덜거릴 것이다. 이제는 알게 되었다. 인생에서 시련이 삶의 일부라고! 지금도 역시 당장 눈 앞에 펼쳐진 문제들이 나를 힘겹게 하지만, 이러한 시련을 극복하면 더 성장한다는 긍정적인 마음가짐을 가질 수 있지 않겠냐라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