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날 광은 아니지만, 광입니다.

by 바질바질

말복이 지나고, 간간이 찬바람이 느껴질 때면 여름이 조금씩 가고 있음을 느끼는 요즘이다. 계절이 완연히 바뀌기 전 다음 계절 옷도 바꿔놓아야 하고, 이불도 곧 바꿔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급해지다가도 당장 할 일은 아니기 때문에 한숨을 돌리며 머릿속 한편에 개어둔다. 그래서 아마도 우리 집에서 계절 바뀜을 제일 먼저 알 수 있는 곳은 냉장고에 채워지는 재료들과 다용도실에 있는 3층 야채 선반인 것 같다. 사시사철 있는 양파 옆에는 봄과 여름 사이에 마늘이 일 년 남짓 안되게 있게 된다. 그리고 감자가 들어오면 여름이 오고 있구나 싶다. 그러다가 가을이 되면 대게는 고구마나 사과 등이 그 자리를 매우게 되는데 올해는 친구 남편의 동창과 선배가 짓는 작은 단호박이 선반에 그득히 있다.


그래서 누군가는 내가 집밥이나 계절 변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건가 싶겠지만, 이런 것들을 위한 시작은 아니다. 오랫동안 쓰고 싶었지만 무슨 내용을 담아야 할지 모르겠는 다용도실 또는 팬트리에 대해 쓰고자 한다. 그저 엄마가 다용도실을 다용도실이라고 부르지 않았다는 이유 만으로.


‘광’은 세간이나 그 밖의 여러 가지 물건을 넣어 두는 곳이라는 사전적 정의를 갖고 있다. 유의어로는 우리가 많이 알고 있는 곳간이 있다. 그래서 광은 요즘말로 팬트리 또는 다용도실을 정도 되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시집오기 전에 살았던 친정집은 구축 아파트였기 때문에 딱히 펜트리라는 공간은 없었고, 부엌 옆 세탁기를 놓을 수 있는 세탁실이 있었다. 그래서 엄마가 잡다한 물건을 쌓아 놓으셨던 베란다 옆 비상 대피 공간을 광이라고 하셨다.


"광에서 OO 좀 들고 와라." "이건 버릴 거니까 토방에 가져다 놓아라."라는 엄마의 말들은 주택 생활을 해 본 적 없는 나에게 낯설었지만, 어느새 익숙해졌다. ‘토방’은 그렇다 쳐도 ‘광’은 전래동화에 종종 보던 단어 같아 많은 사람들이 알지 않을까 싶었다. 그중 내 친구도 당연히 아는 단어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옛날에는 광을 지키라는 의미로 강아지 그림을 광 앞에 붙이기도 했는데…. “


”광? “


”아, 주택에 보면 창고 같은 곳 있잖아. 그런 곳에 붙여 놓았데. “라고 얼버무렸다.



사실, 이 단어가 나에게 주는 이미지를 설명하기도 어렵고, 이 글을 써야 하는 목적도 뚜렷하지 않아 집에 있는 잡다한 모든 것을 ‘광’이 어우르는 만큼 이번 글도 잡 그러지 않을까 싶었다. 그렇지만 이 글을 쓰고 싶었던 이유를 떠올려 보니 나는 광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며 내가 오랫동안 살았던 친정집을 떠올리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면서 엄마도 엄마가 어렸을 때 집을 생각하며 이 단어를 사용하지 않을까 싶었다. 내가 살던 친정집과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집, 그리고 엄마가 살았던 옛날 집과 엄마가 나를 키웠던 집을 서로 비교하면 후자가 더 좋게 느껴지지만, 이따금 또는 계속 그리운 존재가 아른거린다. 항상 풍성하고, 따뜻한 무언가를 담고 있는 듯한 이 단어의 매력 또한 ‘광’이라는 단어를 놓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인 것 같기도 하다.


정말 마지막이 되어가니 내가 시작한 이야기들이 시작된 곳이 어쩌면 ‘광’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팬트리의 경우 단순히 내가 쓰지 않은 것들이 있는 곳이라 애매하지만, 다용도실의 경우 아침, 점심, 저녁 식사의 시작을 알려주기도 하고, 나의 일상이 항상 녹아져 있는 곳이라는 것을 이제야 눈치채본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주부인 나에게 있어 새로운 시작이 시작되는 곳. 아직은 더운 관계로 활짝 열려있는 다용도실을 바라보며 시작의 끝을 지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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