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우리나라 사람들의 거주지가 그렇듯, 우리 집 양옆과 앞에는 아파트가 있다. 저녁 설거지를 한 뒤 부엌에 잠시 우두커니 앉아있으면, 많은 집들 가운데 유독 한집이 눈에 들어온다. 멀찍이 떨어져 있는 어느 이름 모를 집의 시시각각 바뀌는 텔레비전 화면은 화려한 네온사인처럼 나의 눈길을 끈다. 나의 일과의 마무리를 알리는 네온사인과 함께 가끔은 그렇게 가만히 누군가의 삶을 멍하니 본다.
이유 없이 열어보는 인스타그램도 마찬가지이다. 조그만 화면 속 누군가의 삶을 보고 웃기도 하고, 안쓰러워하기도 하고, 공감도 하다 보면 내가 다른 사람의 일상과 삶에 무척 관심이 많은가 싶어 진다. 그렇지만 정작 내 옆을 지나가는 행인, 그리고 내가 가는 곳마다 있는 직장인들의 삶을 보면 무감각해진 감각으로 나의 갈 길만 갈 뿐이다.
그런데, 몇 주 전 마트에서 있었던 일이다. 지인과 함께 장을 보는데, 지인의 권유로 쫄래쫄래 가자미를 시식하게 되었다. 그렇게 소주 컵에 담긴 가자미를 천천히 먹는 찰나에 갑자기 가자미를 굽던 아주머니께서 “임산부는 더 맛있는 것 줘야지.”하면서 가자미 중앙 부분을 크게 잘라서 주셨다. 대중교통에서 간간이 받던 호의는 고마우면서도 어쩌면 당연하게 여겼을 때가 있었는데, 이렇게 시식 코너에서 누군가의 호의를 받게 될 줄은 전혀 몰랐던지라 얼떨떨하였다. 생각보다 맛도 좋아 가자미 한 봉지를 집어 담긴 했지만, 여전히 영업이라고 생각되지 않는 구매였다.
그렇게 몇 주가 흘러 지난주에 마트에서 있었던 일이다. 야채‧과일코너에서 귤 시식을 담당하시는 아주머니는 귤을 작게 나누어 소주잔에 넣고 계셨다.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지인의 권유로 귤 시식을 위해 잠시 귤 판매대 앞에 서 있게 되었다. 시식 준비가 되자 마트 어디에서든 흔히 들을법한 멘트가 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귤 맛있어요. 귤 드셔보세요.” “요즘은 제철도 없이 귤이 나오네요.”라는 말을 지인에게 건네며 먹어보는데, 귤에 집중하고 있던 그가 나의 배를 언제 보았는지 “임산부는 안 사가도 하나 더 줘야지.” 하시면서 귤 컵을 건네셨다. 컵을 건네는 그 짧은 시간에 자신의 삶을 하소연하듯 이야기하셨다. 본인이 임신했을 때는 아무 배려도 받지 못했다며 자신은 임산부를 보면 잘해주고 싶다고.
60대 중후반으로 보이던 그가 살던 시대에는 임신이 귀하다기보다 당연하고, 너무 흔한 일이라 힘듦이 힘듦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것이다. 항상 시식 코너에서는 담당 음식에 대한 홍보만 들었고, 간신히 이야기가 더 나아간다면 부질없는 날씨 이야기만 주고받을 정도일 것이다. 그리고 해당 시식 음식을 사가면 “감사합니다.”라고 정해진 공식과 같은 대화로 마무리되었으리라. 그래서 생각지 못한 곳에서 잠시나마 한 사람의 인생과 가치관에 대한 이야기를 가만히 듣자니 마음이 이상하였다.
멀게만 느껴지던 타인의 삶이 나에게 녹아내려 마주하는 느낌이랄까.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어딘가에 서 있는 누군가가 아닌, 그만이 갖고 있는 삶의 서사와 서러웠던 순간을 생각해 보며 그의 삶을 들여다보고 배우며 생각해 볼 수 있었다는 점에 감사함이 들었던 순간이었다. 직업이긴 하지만, 하루 종일 내어주기만 하는 그들의 삶에 베풂을 흠뻑 받는 날이 오면 좋겠다. 나 역시 재기만 하는 삶이 아닌 베푸는 삶을 살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