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질바질 Feb 29. 2024

언제든 환영할 마음으로

나의 작은 부엌살림살이에 관하여_그림

고등학생 때 일이다. 나의 생일이었는지 어떤 이유로 엄마에게 벨트 선물을 받았다. 연두 빛이 감도는 국방색 벨트에 금색의 꽃과 줄기가 전체를 휘두르고 있었던 벨트는 주는 이, 받는 이 모두에게 상처만 남긴 채 옷장에 머물다가 행방이 묘연해졌다. 벨트 선물 전후로 엄마에게 받은 형광 분홍 지갑 역시 책상 서랍에 오래 머물다가 사용하였는데 이즈음부터 선물을 받는다는 것이 쉽지 않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취향이라는 것이 점점 생기던 나이에 마음에 썩 들지 않았던 선물은 부담으로 다가왔고, 이때부터 선물을 줄 때는 간식 또는 돈으로 대신하였다. 선물을 준비하는 정성스러운 마음을 걷어낸 채 상대방이 사용할 수밖에 없는 선물을 주었는데, 받는 이들도 큰 감동은 없었겠지만 잘 썼으리라 믿는다. 뻔한 선물을 주고받기를 십 년 정도 해온 나에게 선물 주는 것을 좋아하는 직장 동료가 생겼다.      


한 물건을 오래 쓰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가끔 부담스럽기도 하고, 아깝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나라면 사지 않았을 물건들이 꽤 재미있었다. 그러다가 그가 준비한 브라이덜 샤워에서 건네준 선물을 받고 꽤 난감하였다. 캔버스에 그려진 귀여운 곰 그림이었는데, 털모자와 목도리를 두르고 있는 모습을 보며 ‘여름에 보면 너무 답답하지 않을까?’라는 걱정을 하였다.      


첫 번째 신혼집에서는 그림을 복도에 걸어두었는데, 햇빛이 아무래도 덜 하였던 복도의 선선함 덕분에 그림을 지나다니며 왠지 모를 시원함을 느꼈다. 그리고 두 번째 신혼집에서는 부엌 한편에 두었었는데, 가스 불 근처 벽면에 기대어 콘센트 구멍을 가리기도 하고 흰 타일이 오염되지 않게끔 방패가 되어주기도 하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부엌 벽면 콘센트를 자주 사용하면서 그림을 바닥에 두게 되었다.      


나만 잘 볼 수 있는 그런 위치에 있는 듬직한 곰돌이와의 눈 맞춤은 그의 덩치만큼이나 든든하다. 그러고 보니 케이크를 만들고 식탁에서 요리조리 사진을 찍을 때 어설픈 나의 딸기 케이크를 돋보이게 하고 싶어 귀여운 곰돌이 그림을 빼꼼 보이게 사진을 연출하기도 하였다.      


선물을 받았을 당시의 하찮은 걱정과 달리 귀엽게 또는 실용적으로 사용 중이다. 좋은 그림을 항상 집에 두고 싶어 하는 나에게 털모자와 목도리를 두른 곰돌이는 과연 좋은 그림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한다. 센스 있던 동료의 감각을 믿지 못하고, 누군가의 호의를 걱정으로만 바라보았던 나. 어쩌면 물건을 오래 사용해야 한다는 강박에 너무 사로잡힌 것은 아니었는지 싶다. 이제는 걱정보다 그 사람의 마음을 먼저 바라보고 싶다.     


생각지 못했던 선물 덕분에 나의 부엌은 항상 빛나고 있어 행복하다. 곰돌이 그림을 바라보거나 이동할 때면 선물을 건네준 동료의 안부가 종종 궁금해지지만, 이제는 연락이 어려운 그의 소식을 카톡 프로필을 통해서만 확인할 뿐이다. 언제든 너의 연락을 환영한다는 마음으로.          




작가의 이전글 손맛 가득한 나의 그릇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