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배우며, 사랑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다.
첫눈, 첫 키스, 첫 데이트.
단어만으로도 기대와 설렘을 불러일으키는 것들이 있다. 반대로, 메마름과 상처 같은 단어는 가슴을 답답하게 만들기도 한다.
내 감정의 상자엔 한동안 후자의 것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런데 언젠가, 뜻밖의 설렘이 찾아왔다.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건 얼마나 무모한 용기일까? 오랜만에 느낀 설렘은 울리고 웃기고를 반복하며,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진다.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감정을 인정한다는 것은 어쩌면 가장 용기 있는 감정일지도 모른다. 혼자 먼저 시작 돼버린 감정, 이루어질지 모르는 관계에 기대하고,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되기에. 난 또 새로운 감정을 배운다.
누군가를 마음에 품으면, 누구나 마음 한구석에 이렇게 묻게 된다. "너도 나를 좋아하니?"
물론, 대답은 들을 수 없다. 질문도 던지지 않았기에.
대신 어딘가에서 읽었던 글 속에서, 또 누군가와의 대화 속에서 내 감정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얻게 되었다. 그 관점은 마치 내 마음의 짐을 한꺼번에 내려놓게 해 준 것 같았다.
'너무 서둘러 결론을 내지 말고, 그냥 이 순간을 즐기며 시간을 흘려보내봐'
'결과보다 중요한 건 네가 이 감정을 통해 무엇을 배우는 지야'
이 조언들은 머리를 멍하게 만들었지만,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게 언제나 결과로만 측정되는 건 아니라는 걸 알게 했다. 그도 나를 좋아하면 성공이고, 그렇지 않으면 실패라고만 생각했던 걸까? 정리된 그런 생각이 부드럽게 날 흔들어 놓았다.
사실, 이 감정은 예상치 못한 순간에 시작되었다. 남자로 전혀 보이지 않던 사람이 갑자기 내 마음을 흔들었고, 그 사실에 당황스러웠다. 더군다나 그와 먼 나이 차이가 있었다. 연하킬러라는 딱지를 이제는 그만 떼고 싶었고, 먼저 누군가를 다시 좋아하거나 그런 감정을 느낄 수 있을지도 몰랐다. 이런 감정을 품고, 나이차이가 많은 연하남을 좋아하게 됐다는 것 자체로 처음에는 너무 우스꽝스럽고 믿기지 않아 감정 자체를 의심했다. 실성한 것처럼 혼자 웃기도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상하게도 그를 향한 설렘은 나날이 커져 갔다.
그에게 다가가는 방법을 고민하며 울기도 하고, 화도 내고, 속으로는 하나님께 원망도 했다.
"이런 마음을 왜 주셨나요?
이건 이루어질 수 없잖아요."
머릿속으로는 그가 나를 좋아하지 않을 수밖에 없는 수많은 이유들을 나열했다. 나의 과거, 나의 현재, 나의 상황, 나의 부족함... 모든 것이 불평스러웠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런 질문도 스쳤다.
"혹시, 그래도 가능성이 있을까?"
우연인 듯 정답인 듯 마음을 어루만지는 어떤 조언을 듣게 되었다.
"결과를 바라기 전에, 지금 너를 설레게 하는 그 감정 자체를 소중히 여겨봐. 사랑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을 살아가는 거야."
잠잠히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가 함께할 미래가 있을까? ’ ‘아니면 이 감정은 내 마음속에서 홀로 피고 지는 꽃처럼 사라질까?’
지난 1년, 4계절이 지나가는 동안 온갖 상상을 다 했다. 울다가 웃다가, 화내다가, 쪽팔려하다가...
마치 한 편의 코미디 영화를 찍는 주인공이 된 것 같았다. 한 번은 감미로운 로맨스 영화였다가, 한 번은 격정 멜로였다가, 또 한 번은 잔잔한 성장 영화 같았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이 감정의 주인공은 그 남자가 아니라, 나라는 사실을. 오랜 시간 동안 잊고 있었다. 누군가를 좋아하며 지냈던 마음, 다시 내 마음의 순수함을 만났고, 감정과 품는 마음, 좋아함과 사랑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배웠다.
이 감정을 마주하기 전, 애정에 대한 기대조차 놓고 살아가고 있었다. 이전의 X와의 관계는 지치고 힘들었으니까. 가스라이팅과 구속, 끝없는 의심과 다툼, 마르지 않는 눈물. X와의 관계에서 완전히 메말라 가는 걸 느꼈다. 미혼모로서 홀로 삶을 꾸려가야 했던 시간들을 의지하고 싶었지만 오히려 더 힘들어졌고, 자신을 잃어갔다. X는 마치 죄인처럼 나를 몰아갔고, 끊임없이 미안함을 강조했다. 성적인 면에서도, 금전적인 면에서도 옳아 메었고 무엇에서 든 회색빛으로 그늘져 갔다. 가족들조차 이해하지 못했다. "천하의 호랑이가 이게 뭔 일이야?" 여동생도, 딸아이도, 엄마도 걱정하며 속상해했다. 우리 관계는 애초에 건강하지 않았고, 벌써 여러 번 끝냈어야 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미련과 애증에 매달려, X의 구속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X와의 이별까지 온통 상처투성이었던 시간들로 나는 마음의 문을 굳게 닫고 있었다. 어떤 손길이 와도 그 문은 열리지 않았다. 다시는 열릴 것 같지 않았다.
그러던 내가, 뜻밖에 그 연하남을 좋아하게 된 것이다. 내 관심이, 내 시선이, 내 마음이 그 사람에게 계속 머물고 있다는 걸 깨닫는 데까지, 내 감정을 인정하기까지 1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되짚어 보니 한 가지 신기하게도 그를 좋아하기 시작하면서 X의 잔염들이 깨끗하게 사라졌다. 괴롭히던 여운들, 아픈 기억들, 불신과 불안감들이 어느새 옅어졌다. 새로운 기대와 설렘, 두근거림으로 채우고 기분 좋은 떨림으로 찾아왔다. 그런 감정들을 다시 가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고맙다. 누군가를 향한 설렘이 내게 아직 남아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어서. 그 감정을 통해 더 단단해지고, 더 따뜻해질 수 있어서. 그래서 고맙다.
이 감정은 한 가지를 가르쳐 주었다.
사랑은 결과가 아니라, 스스로를 알아가고, 설렘 속에서 성장해 가는 과정이라는 것을.
어쩌면 이 감정의 여정 자체가 끝이 아닐까?
결론을 내려 정리하고픈 조급한 마음이 비워졌다.
인정하기까지 어려웠고, 인정하고서도 마음이 바빴다. 그 감정 자체로 나를 괴롭혔는데 무거웠던 마음이 깃털처럼 가벼워졌다. 한동안 내 감정을 그에게 전하고 털어버리고 싶었다. Yes or No 뭔가 흑백을 가르고 싶었던 답답함이 사라졌다. 이제 상대의 마음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저 내 마음이 중요해졌다.
내 마음을 통해 무엇을 느끼고, 배우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결론일지도 모른다.
다만, 내가 가진 이 마음들이 또 어떤 감정으로 나아갈지 어느 성장의 여정을 살아가게 될지. 그저 그 끝이 궁금하다. 있는 그대로 흘려보낸다.
나를 배우며..
사랑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