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만 비워져 있었다.

마음은 돌아오지 않았다, 허전함이 가리킨 자리.

by Horang unnii

프롤로그





비엔티엔 우리 집에서 국경까지는 차로 이십 분 남짓.

메콩강만 건너면 바로 태국 넝카이고, 조금만 더 내려가며 우돈타니다.


태국으로 넘어가면

도시의 조명, 사람들의 걸음, 매장들의 밝기,

그 모든 게 한국과 닮아 있다.

하이힐을 신어도 어색하지 않은 길,

셀프케어가 익숙한 생활.

그런 곳에서 잠깐 숨을 쉬다가

다시 라오스로 돌아오면...


먼지, 울퉁불퉁한 길.

차려입어도 잘 섞이지 않는 분위기,

그리고 점점 '편한 것만 찾는 나'의 모습이

유난히 선명하게 보인다.


꼭 논두렁에 하이힐 신고 서 있는 기분.

그 풍경도, 내 마음도 제멋대로 거칠었다.








요즘 난

마음 한 칸을 채우기도 전에

다른 한 칸이 금세 비어버리는 사람 같다.

그냥 깡통 같은 사람인 것 같았다.


국경을 넘었다가 돌아오는 동안

내내

'나는 지금 어디쯤 서 있는 걸까?'

'왜 이렇게 쉽게 지치고, 왜 이렇게 빨리 비어 버릴까?'

이상한 말들로 자문하고 또 물었다.


라오스에서의 하루는

늘 똑같은 먼지,

똑같은 문제 해결,

똑같은 감정 소모가 반복되고

그 안에서 "나"라는 사람이

조금씩 얇아지고 사라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스파 일은 점점 '일'이 아니라

내 영혼을 계속 긁어내는 '갈림'에

가까워지고,

사람들과의 관계는

힘이 아니라 피로로 돌아오는 날이 많아졌다.


하나님을 놓치고 싶지 않은데,

말씀을 붙잡고 걸어가고 싶은데,

정작 걸음은 자꾸 제자리에서 무너지는 나를 본다.

몸은 피곤하고,

마음은 예민해지고,

신앙은 방향을 읽기 어려울 때가 많아졌다.


이런 작은 허전함조차

내 안에서는 큰 파도처럼 느껴진다.

그 파도가 지나가고 나면

정말 아무것도 남지 않은 것 같은 기분.


한 가지를 분명히 알려 주려고 하는 걸까?

다시 숨을 고르고 , 다시 살아내려 하지만 자꾸 제자리걸음처럼 느껴진다.


지금의 나는 분명 다시 채워져야 하는 사람인데

내가 원하는 블루가 아닌

관계 속의 사람들이 원하는 블랙으로 채워놓은 하루가 허다하다.

검은색 크레파스로 내 하루를 다 먹칠해놓은 것처럼

알록달록 할 것만 같았던 내 라오스의 일상이 어두 컴컴하게만 느껴진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걸 인정하는 순간이 왔고

이런 마음이 들었다.


"그래, 나는 지금 너무 오래 혼자 버텼구나."

"이 허전함은 도망이 아니라 신호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나를 달래는 하루 주님 앞에 기도드렸다.


주님,

제가 오늘 이렇게 텅 비어 있는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국경까지 넘고, 사람들 속을 지나고,

필요한 것들을 사들고 돌아온 하루인데도

마음 한 곳은 여전히 채워지지 않았습니다.


말씀을 붙잡으려고 애쓰고,

기도의 자리도 놓치지 않으려 하는데

왜 이렇게 방향을 잃은 사람처럼 서 있는 걸까요.


제가 고갈되어 가는 건지,

다 닮아 없어지고 있는 건지,

주님 앞에 솔직히 고백합니다.


제가 느낀 이 허전함이

저를 더 깊은 자리로 이끄는 신호라면

주님, 제가 놓치지 않게 해 주세요.


제가 어디로 가야 할지,

무엇을 내려놓고 무엇을 다시 잡아야 할지

주님께 묻습니다.

저를 다시 일으켜 주세요.

아멘.


기도로 나를 덮고 보니

아주 잔잔한 떨림이 일어난다.

오늘의 진짜 이야기를 꺼내 본다.









에필로그

국경은 밝았는데, 묘하게 난 어두워졌다.



생각해 보면

그 허전함은 단순한 기분이 아니었다.

오래 쌓여오던 마음의 피로가

국경을 넘는 순가 터져버린 것에 가까웠다.


차가 넝카이로 들어섰을 때,

라오스에서는 맡을 수 없는 냄새가 있었다.

조금 달큰하고, 조금 차갑고,

책상 위 가지런히 꽂혀있는 책들처럼

'뭔가 더 정돈된 나라의 향'같은 공기.


센트럴 플라자 안의 냉기는

내 피부에 닿자마자 펄펄 끓는 주전자를 식히듯

나를 뽀얗게 달래 주었고,

형광등 아래 과일들이 보석처럼 빛을 품어 내었다.

특히 한국에서 온 샤인머스캣과 딸기는

아주 잠깐 나를 들뜨게 했다.


"어라? 이게 여기 있네."

금세 나도 모르게 손이 갈 만큼 반가웠다.


라오스에는 비싸고 잘 없고,

태국에 넘어오면 쌓여 있고 싱싱하고 선택지도 많고..

그 다름이 잠시 설레게 했다.


그뿐이었다. 마치 폭죽이 터져 버리고 남은 잿만 남은 것처럼

반가움은 오래가지 않았고, 되려 씁쓸함만 남아 있었다.

봉지를 들고 몇 걸음 걸으니

마음 한쪽에서 도플갱어가 말을 거는 듯했다.


"뭐가 달라졌으면 좋겠어?"

"이걸 왜 사고 있니?"

"이게 나에게 지금 무슨 의미니?"


쇼핑백은 무거워졌는데

내 마음의 온도는 더 식어갔다.


우돈타니의 센트럴 플라자 앞은

벌써 크리스마스로 환하게 불이 켜져 있었다.

황금빛 조명으로 장식된 거리,

반짝 거리는 나무,

사람들 속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거대한 테디베어 하나.


그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친구들끼리 서로 찍어주며 웃었는데

스스로가 너무 꼭두각시 같았다.

웃고 싶지 않은데 웃고 있었고,

쇼핑하고 싶지 않은데 분위기에 맞춰 움직이고 있었다.


쇼핑몰을 나오니

도시의 밤은 더없이 화려하고, 더 시끌벅적했다

선명한 컬러였는데, 그 화면 속 나만

흑백인 것 같았다. 그렇게 나만 다른 세계에서 밀려 나온 사람 같았다.


더 씁쓸하게 만든 건

라오스 친구들의 말투였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라오스어를 투박하고 억양 강한 사투리로

이야기하던 친구들이

국경을 넘자마자

부드럽고 경쾌한 태국어로 말을 바꾸었다.

라오스어가 약간 북한말처럼 억세고,

태국어는 남한말처럼 매끄럽게 들렸다.

같은 언어계열인데도 공기의 결이 이렇게

다를 수 있나 싶었다.

강한 나라와 약한 나라의 공기의 차이를 안다.

사람들의 눈길이 달라지는 분위기.

그 작은 변화가

마음 한 구석을 더 깊게 건드렸다.


"여기에서 참고 있는 이유가 뭐지?"

" 라오스에 처음 올 때 그 마음은 어디에 있지?"

"평안 해질 거라 생각하고 왔는데 더 빡센 하루를 보내고 있는 이유는 뭐지?"

" 왜 더 자유롭지 않지?"


비교와 불평과 인내가 뒤섞여 남이 원하는 내 모습의 나를

거짓으로 꾸며가고 있었다.


태국의 조명과 라오스의 먼지.

넉넉한 선택지를 가지고도 부족한 일상 안에

갇혀 있는 내 모습.


뭔가 모를 뜨근함과 시원치 않음

그 사이에 서 있는 내가

갑자기 너무 선명해졌다.


어디에서 이런 공허함과 뭔가 잘못되어지고 있다는 걸 느끼는 걸까.

내 안의 소리를 일부러 닫고 있는 건 아니었는지.


쇼핑백에 든 과일,

할인으로 산 믹서기,

클렌징과 마스크 팩.


마음은 돌아오지 못하고 몸만 돌아온 하루였다.

일상의 무게에서 오는 상반된 허탈감으로 물에 젖은 솜마냥

피곤으로 내리 앉는 하루였다.


겉으로는 "자유롭게 일한다"라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자유롭지 못한,

보이지 않은 족쇄 같은 일상이

내 어깨를 조용히 짓누르고 있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모든 역할을 한 사람이 떠안는 구조 속에서

'오너 대신'이라는 명분으로 일하고 있다.


캄보디아 스캠 사건 이후,

라오스 여행업이 흔들리고,

스파와 갤러리 매출은 줄고,

관광객 수요는 예측하기 어려워졌다.

그 여파는 고스란히 내 일로 흘러 들어온다.


해야 할 일은 더 늘었고,

총괄 관리의 무게는 무거워졌고,

대표가 기대하는

'전진적 성과'는

점점 더 나를 압박하는 모양이 되었다.


태국의 밝은 조명을 보며

내가 더 어두워진 건 비교때문만이 아니라

벗어나고 싶으면서도 벗어나지 못하고,

자유롭고 싶은데 자유롭지 못한

그 내면의 족쇄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국경을 넘었지만,

마음은 돌아오지 못했던 이유.

일상의 무대가

보이지 않게 나를 묶어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빈자리..




"국경까지 다녀왔지만, 마음은 어쩐지 더 멀어졌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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