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셉처럼 사랑하노라

예배는 잃지 않는다.

by Horang unnii

현실의 무게



요즘 나는,

매일같이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 속에서 버텼다.


아침 9시부터 밤 9시까지 예약전화, 보고, 매출, 관리, 마케팅, 홍보, 기획, 직원 조율까지...

주일조차 완전한 쉼이 없는 하루들.

대표는 내게 말한다.

"이제 다 네가 맡아라. 이건 다 네 거다."

그 말을 반복했다.


처음엔 그 말이 감사했고,

이제는 그 말이 짐처럼 들렸다.

"너 없으면 여기 무너진다."

"이걸로 너 10년은 먹고살 길이 열린다"

"이번 성수기 지나면 너 정리할 것도 하고, 편하게 지내면서 일상을 살아라"


그 말들이 내게 비전처럼 들렸지만,

이젠 알겠다. 그것은 하나님의 비전이 아니라 사람의 비전이었다는 것을.







말하기까지의 8개월



사실 나는 여기 와서 8개월 내내 고민했다.

대표와의 관계가 깨질까 봐,

"수치스러운 일"이 될까 봐,

"네가 포기하냐"는 책망을 들을까 봐

두려웠다.


그래서 참았다.

참으며 스스로 위로했다.

"그래, 이번 시즌만 버티면 정리되겠지."

"이걸로 빚도 갚고, 집안도 가족들도 좀 안정될 거야."


하지만 점점 무너졌다.

기도 시간이 사라지고, 예배가 무너지고

하나님을 위한 자리가 점점 좁아졌다.


나는 마음속으로 물었다.


'하나님의 비전을 의지한 게 아니라

사람의 비전을 따라가고 있는 건 아닐까?'


그리고 어느 날, 예배 중에 울음이 터졌다.

'하나님, 저 이제는 피곤해서가 아니라

영혼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결국, 말했다



며칠을 미루고 미루다 결국 얼마 전 말했다.


"대표님, 다음 타자 구해 주세요. 저 관두겠습니다."


그 한마디를 내뱉는데,

온몸이 떨렸다.

마치 손에서 내려놓는 돌덩이 하나처럼 숨이 터져 나왔다.


대표는 소리쳤다.

"지금 관둔다고? 이게 갑질하는 거냐? 너 미친놈 아니냐? 너 나한테 갑질하냐?"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채로 계속 소리를 질렀다.


"너 없으면 다 무너진다!

스파도, 갤러리도!

너 나가면 손님도 없다니까!

지금도 네가 나와야 예약이 있고, 너 없으면 예약 없다고 매니저들 말하는데

그걸 모르냐고!

지금 이거 잘해 놓으면 네가 다 가져갈 수 있다니까!

여태 잘 해와놓고 이제서 무책임하게 그렇게 말하면 어떻게 하냐!

그리고 너 대타를 어디에서 구하냐? 구하려면 네가 구해놔!

너 보다 잘하는 놈이 어디 있다고!"



나는 그냥 들었다.

대응하지 않았다.

격분하는 그 말속에서도,

내 안에서는 또 다른 목소리가 들렸다.


"이제는 네가 참지 않아도 된다.

너는 나의 것이다."







관둔다고 말한 후의 평안



결국, 퇴사는 거절되었다.

"당장은 안된다.

너를 대신할 사람은 없다."


그 말이 덮치듯 무겁게 다가왔지만,

이상하게 마음은 시원했다.

물파스를 바른 것처럼,

가슴 한가운데가 서늘했다.


출근, 일, 퇴근,

그리고 밤늦게 집에 들어와

우연히 휴대폰 속 메모장을 열었다.

그곳에 작년의 내가 있었다.


"요셉처럼, 내가 너를 사랑하노라."


2024년 4월, 40일 말씀을 마치고 쓴 고백문이었다.

그때는 그 말이 두렵고 낯설었다.

'그냥 사랑한다'해도 될 텐데,

왜 '요셉처럼'이라 하셨을까.


하지만 오늘은 알겠다.

하나님이 왜 그 말을 하셨는지.







나의 현재, 요셉의 자리


요셉은 바로를 대신해 나라의 국고를 관리하는 총감독이었지만,

사실 그가 원해서 오른 자리가 아니었다.

바로가 그 자리를 맡긴 것이었다.

성경에는 그의 감정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그가 그 모든 것을 감당하며 꾸려갈 때

얼마나 외롭고 힘들었을지,

그 무게가 얼마나 컸을지 생각하게 된다.


잘하면 모두가 사는 길이지만,

잘못되면 그 책임도 오롯이 자기 몫.

타국에서 홀로 서 있던 그에게

그 부담감과 외로움이 얼마나 깊었을까 싶다.


하지만 결국 그 시간들이

수많은 사람을 살리고,

그의 가족까지 구원하는 통로가 되었다.


생각해 보면 지금 나의 자리도 꼭 그렇다.

라오스에 내가 선택해서 왔지만, 막상 와보니

대표는 뒤로 점점 빠지고, 실제 운영은 내 손에 맡겨졌다.

결국 "바로 밑의 요셉"처럼 책임과 결정의

무게가 내게 쏠려 있다.


그래서 피곤하고, 가끔은 외롭고, 때로는 묻는다.

"하나님, 저 이 자리에 맞는 사람일까요?"


그런데 오늘 말씀을 읽는데,

마치 하나님이 내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넌 내게 속한 자야.

다윗의 망대처럼 믿음의 방패를 가진 용사 란다.

너의 연약함을 알지만, 그럼에도 나를 붙드는 네가 사랑스럽다."


그 음성이 나를 꽉 안아주었다.

"그래, 부족하지만 나는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구나."

그 확신 하나로, 오늘 하루가 버텨졌다.







내 입술에서 나온 고백들



며칠 전, 오전에는 랭귀지 스쿨에 갔다.

쉬는 시간에 68세, 74세 선교사님 부부가 내게 물으셨다.

"어쩌다 라오스어를 배우게 되셨어요?"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그냥 내 안에서 나오는 대로 대답했다.


"라오스어로 성경을 읽을 수 있을 만큼 하고 싶어요."


그 말을 내뱉고 나서 스스로도 놀랐다.

생각해 본 적도 없는데,

입술이 먼저 고백해 버린 것이다.


그 순간 마음이 뜨거워졌다.

이건 내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이 내 안에 심으신 마음이었다.

하나님이 내 입술을 통해 미리 말씀하신 것 같았다.


대표랑 이야기 나눈 그날, 내게 말했다.

"야, 그렇게 예배 챙기고 기도하고 그러면 일은 어떻게 하냐?

그러면 여기 아니라 다른 직장은 뭐 다니겠냐?

왜? 신학대학이라도 가게?

뭐 전도사 하게?"

비꼬는 말투였지만,

그 와중에 나는 너무 차분하게 대답했다.


"그렇게 될 수도 있지요. 당장은 아니지만요."


헉, 내가 말해놓고도 스스로 놀랐다.

'이거 내 입에서 나온 말이 맞아?'

요즘 나는 자꾸 그렇다.

내가 의도하지 않은 고백들이

입술에서 흘러나온다.


어쩌면 하나님은,

내가 도망치지 않고 머물기로 결단한 그 자리 위에서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다음 길의 조각들을 꺼내고 계신지도 모른다.







결국, 하나님은 나를 안아주셨다



요셉은 총리가 되었지만 그건 영광의 자리가 아니라 감당의 자리였다.

그는 왕의 반지를 받았지만,

사실은 백성과 가족을 살리기 위한 '사명의 반지'였다.


지금의 나도 그렇다.

나는 원하지 않았지만 이 자리를 맡았고,

책임이 나를 짓누르고 있지만

하나님은 나를 이곳에 세우셨다.


도망이 아니라

머무름으로 하나님을 믿는 자리.







오늘의 결심



나는 여전히 피곤하고, 가끔은 무섭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하나님은 나를 믿고 이 자리에 세우셨다."


그래서 오늘도 이렇게 기도한다.


주님, 제 안의 생수의 샘이 마르지 않게 하소서.

흠 없는 자로 세우시는 주님의 시선 안에 머물게 하소서.

다윗의 방패처럼 오늘도 믿음으로 서게 하소서.

일상도 선교입니다.

제 하루가 곳 복음이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예배는 결코 잃지 않는다




"하나님은 나를 관두게 하지 않으셨다.

대신, 다시 일어서게 하셨다."


며칠 뒤, 대표가 내게 말했다.

"수요일, 금요일 예배 시간엔 어디서든 1-2시간 일찍 들어가든,

아니면 퇴근을 못하겠으면 골방이라도 들어가서 예배드려.

그 시간은 지켜야 해.

기도하고 와. 길어야 두 시간이잖아."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매니저 들 테 이야기하고 다녀.

넌 스텝이 아니야. 넌 오너야.

시간은 네가 조정해.

문제만 터지지 않게 스케줄 짜고 다녀라.

네 시간이다. 다 맡기지 않았냐."


그 말을 듣는데,

마음 한쪽이 깊이 울렸다.


'하나님, 결국 이렇게까지 길을 내시네요.'


퇴사는 막혔지만,

예배의 길은 다시 열렸다.

그게 나에겐 어떤 결정보다 큰 자유였다.


하나님은 나를 관두게 하지 않으셨다.

대신, 다시 예배하게 하셨다.

그 말이 오늘, 내 하루에 다시 스며든다.



요셉처럼 사랑하노라 _

예배는 결코 잃지 않는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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