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쓰 쩌엉

방비엥 남송강변에서 다시 찾은 내 이름

by Horang unnii

오랜만에 시달림 없는 하루를 보냈다.

스파 업무폰을 하루 종일 꺼두었다.

밀린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왔는지,

저녁을 먹고 돌아오자 잠이 쏟아졌다.

나름 일찍 침대에 누웠는데,

시간을 보니 자정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비엔티안의 아침은

오토바이 지나가는 소리,

차가 스쳐 가는 소리로 열린다.


방비엥의 아침은 다르다.

새소리로 시작한다.


16시간 공복 루틴은 그제 밤,

딸내미가 라오스로 들어오면서 이미 깨져버렸다.

아마 당분간은 지키기 어려울 것 같다.


도착 시간이 새벽 1시가 넘었다.

기내식을 먹고 캔맥주도 한 잔 했다면서도

현지 음식이 먹고 싶다는 딸을

그냥 집으로 데려갈 수는 없었다.


그 시간에 열려 있는 곳은 많지 않아 달랏 싸오,

비엔티안의 아침시장 포차 거리로 향했다.


카오 삐약 국수,

비어라오,

무삥,

쏨담.


밤이 되면 딸랏사오 주차장 거리는

클러버들의 해장 거리로 바뀐다.

화장을 곱게 하고,

거나하게 취한 라오스의 젊은 청춘들이

새벽이면 이곳에 모인다.


조식을 먹을 생각은 없었지만

호텔 로비를 지나 1층 식당으로 내려왔다.


남송강 위로

롱테일 보트가 지나간다.

모터를 단, 새 꼬리 모양의 긴 나무배.


방비엥에 오는 여행객들의 즐거움 중 하나다.

아침 해를 보기도 하고,

저녁노을을 바라보기도 한다.


예년과 달리

올해는 한국 여행객도, 중국인 방문도 적다.

이 시기에 넘쳐나던 중국인들 대신

드문드문 몇 명만 눈에 띈다.


수영장 옆에 앉아

새로 산 키보드에 휴대폰을 연결했다.

롱테일이 지나가는 소리를 귀 뒤로 흘려두고

글을 쓴다.


보조용 키보드가 여러 개 있지만

이번에 딸내미가 들어오며

접이식 키보드를 하나 더 사다 주었다.

휴대성은 좋다.


다만 ‘유’ 자 키가

오른쪽이 아니라 왼쪽에 붙어 있다.

아직은 어색하다.

어색해도,

오늘은 이 키보드로

내 마음을 정렬한다.


경량 패딩을 입고도

방비엥의 찬 바람에

어깨가 오돌오돌 떨린다.


차갑지만 좋다.

자유를 만끽하는 시간이다.


현지시간 오전 9시가 되면

달콤하던 일요일 휴무는 끝나고

월요일의 업무가 시작된다.

아직 이틀의 휴가는 남아 있지만

업무폰은 켜두어야 한다.

폰을 켜자

주일 하룻밤 사이 들어온 문의와 예약이

화면을 채운다.


고개를 돌리면

남송강변의 야자수가 보인다.

하품을 왔다 갔다 하는 고양이 한 마리.

조식 손님을 맞이하고 마무리하는

현지 직원들의 깊은 미소.


방비엥에도

새 건물과 새 호텔이 늘었다.

빨간 흙먼지를 날리던 길은

이제 많이 정돈되었다.



글쓰기의 힘은 대단하다.

방비엥에서 하루를 보내며

마음도 함께 정리된다.


겹겹이 쌓여 있던 생각들,

갈피를 헷갈리던 마음이

한 층씩 내려앉는다.


어젯밤에 쓴 글이 모두 날아가

마음이 잠시 씁쓸했지만

또 하나를 배웠다.


짧은 문장으로도,

5분에서 10분 사이에도

글을 쓰고

정리하고

마무리할 수 있다는 것.


실수는 오히려

집중의 힘을 확인하는 기회가 되었다.


“미스 쩌엉.“


이곳의 현지 친구들은

나를 미스 정이라고 부른다.


가이드 시절부터 알던 이들은

호랑이라고도 부르고,

영어 이름으로 제이제이라고도 부른다.


“언니“.

“누나”.


한국말로 부르는 친구들도 있고

아직도 나를

“까이 까올리(한국 가이드)”라 부르는 이들도 있다.


내 이름은 정다운이다.


강연장이나

그룹 행사에서

리더로, 안내자로 앞에 설 때

나는 이 이름으로 나를 소개한다.


‘정다운’이라는 이름으로

삼행시를 짓곤 했다.


가이드 시절,

만학도로 대학에 들어갔던 오리엔테이션

자리에서도

늘 하던 소개였다.


정.

정중하게 인사드립니다.


다.

많을 다.

많은 사람들과 함께 가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운.

운전할 운.

앞장서서 먼저 나아가며

운전하듯 이끌겠습니다.


삼행시를 말하고 나면

대표를 뽑는 자리에서

수순처럼

내가 뽑혀있기도 했다.


내 이름을 들은 사람들의 반응은

대체로 세 가지다.


“어, 그 이름 많이 들어봤어요.”

“이쁜 이름이네요. 잘 어울려요.”

“기억하기 좋은 이름이에요.”


어느새

삼행시는 단골 멘트가 되었다.


44세와 45세의 계절을 지나며

나는 이제

‘정다운’을 어떻게 소개할지,

어떻게 그려갈지를

다시 그려보고 있다.


나비는 고공비행을 하기 전

얼마나 오래 숨을 고를까.


찰나처럼 짧을까.

하루살이의 하루만큼일까,

매미의 생처럼 길게 느껴질까.


아니면

탈피를 위해 애쓰는 애벌레처럼

느리고 아픈 시간일까.


나는 지금

다음 시즌을 위해

잠시 숨을 고르고 있다고 믿는다.


내 이름 석 자, 정다운.


그 이름에 새겨질 하루를

나는 오늘도 살며 짓고 있다.


언젠가

내 인생이 다 지어졌을 때

이렇게 말할 수 있기를 바란다.


“정다운 인생이었다.”


오늘,

몇 년 만에 다시 온

방비엥 남송강병에서

나는 내 이름을 다시 불러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