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서 제왕절개하다

잊기 전에 쓰는 출산 일지 2 - 수술!

by 미래

알람이 울렸다. 5월 7일 아침 7시. 8시에 수술콜이 올 것이기 에 한 시간 안에 준비를 마쳐야 했다. 어제에 이어 2차로 베타딘 샤워를 하고 압박 스타킹과 수술복을 입고 마음의 준비를 했다. B(파트너)의 도움으로 샤워를 마치고 마지막으로 내 커다란 배를 내려다봤다. 초현실적인 느낌이었다. 몇 시간 뒤면 이 배에서 아가가 나온다니. 내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지? 현실인가? 헛웃음이 나왔다. 9달 동안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곰곰이 잘 반추했다고 자부했는데. 그 모든 것이 다 너무 가벼운 생각들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내가 인간을 하나 만들었다니.


커피를 가지러 잠시 나간 B가 돌아왔다. 응급 쌍둥이 수술이 있어 우리 수술이 8시에서 10시로 미뤄졌단다. 아... 39주를 기다렸건만 이 2시간은 너무 길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2시간 반이 넘었던 거 같다) 초조한 마음으로 배만 쓰다듬었다.


침대에 누워 책을 읽는 둥 마는 둥 했다. 눈을 붙이기엔 너무 각성되어 있었다. 두 시간이 흐르고 드디어 콜이 왔다. 어제 태동검사와 수축검사하던 곳으로 오라고 해서 재빨리 수술실에 가져가야 할 것들 (아기옷, 물병, 음악 플레이리스트가 담긴 휴대폰과 스피커 등)을 챙겨 걸음을 옮겼다. 태동검사와 수축검사 모두 정상이었고 사쥬팜 한 명이 내 손등에 Perfusion을 할 핏줄을 찾았다. 썩 기분 좋지 않은 통증으로 바늘이 꼽혔다. 마치 수술의 서막 같은 행위였다. 당연히 뭔가 더 대기할 거라 생각했는데 바늘을 꽂자마자 수술실로 가란다. 어? 벌써? 뭐... 설명은 가면 해주는 건가? 몇 걸음 걷자 수술실 입구가 나왔고 꽤나 북적거렸다(?). 사람들이 자기 이름과 직업을 소개하며 나는 누구, ㅇㅇㅇ야.라고 소개하고 빠르게 사라졌다. 사쥬팜, 사쥬팜 학생, 간호사, 간호보조사, 마취과 의사였던 거 같다. 그들은 아주 건조한 얼굴로 인사를 했고, 유일하게 은은한 미소를 띠고 있었던 건 아주 예쁘게 생긴 사쥬팜 학생이었다 (그녀는 수술이 끝난 후에 나의 뺨을 어루만져주었다!) 수술실에 들어서자마자 찬 공기가 느껴졌다. 수술대도 굉장히 높았다. 발 디딤대를 딛고 올라가 앉자마자 마취과 의사는 다가와 재빨리 perfusion에 무언가를 연결하는 것 같았다. 모두가 제자리에서 아주 바쁘고 건조하게 자신의 업무를 ‘이행’했다. 나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아무렇지 않은 척 연기했다. 두려움보다는 어색함이 더 컸다. 남의 업장에 들어온 이방인 같은 느낌. 마취과 의사는 이제 마취를 할 거라며 움직이면 절대 안 된다는 말을 남기고 내 뒤쪽으로 사라졌다. 사쥬팜은 내 앞으로 다가와 내 어깨를 양손으로 붙잡았다. 그녀는 경직된 목소리로 나에게 주문했다. “최대한 둥글게 허리를 말고 어깨를 내려.. 더 내려. 더. 어깨 더 내려. 더! 더!”


슥슥- 등을 소독하는 느낌이 들었고 마취과 의사의 손길이 느껴졌다. (아 참, 하반신 마취였다) 마취 주사가 들어오는 느낌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는데 사쥬팜이 내 어깨를 더 이상 누르지 않고 마취과 의사의 C'est bon.이라는 말과 함께 몸이 조금씩 따뜻해짐을 느꼈다. 마취과 의사는 나한테 몸이 차가워지는 게 느껴지냐고 물었고, 나는 음 아니? 오히려 따뜻한데? 라니까 okay.라는 단답을 했다. 아니 뭐야. 차가워져야 되는 거야 따뜻해져야 되는 거야? 무슨 일이지? 의문을 품을 새도 없이 여러 명이 다가와 나를 눕혔고, 쉴 새 없이 배부터 허벅지까지(적어도 내가 느끼기엔- 마취 기운이 돌고 있었다.) 소독을 하기 시작했다. 아니 배만 하는 거 아니었어? 싶었는데 정말이지 구석구석까지 다 소독을 하는 게 둔탁하게 느껴졌다. 정신은 멀쩡했지만 몸이 점점 몽롱해져 가는 게 느껴졌다. 무거웠던 배를 지탱하던 모든 근육들의 느낌이 사라지자 꽤나 기분이 좋았다. 어지럽거나 구토가 올라오거나 한다는 글을 봤었는데 오히려 나는 아주 쾌적한 기분이었다. 긴 러닝을 하고 샤워를 하고 침대에 누워 다리가 간질간질한 느낌.


Julien, il est au courant? 줄리앙, 수술 알고 있는 거지?


내 담당 산부인과 의사 줄리앙의 이름이 오갔고 머지않아 그가 들어왔다.


Ça va? 괜찮아?


의료용 마스크 뒤에 가려진 그의 얼굴이 낯설었다. 비록 두 번밖에 보지 않았다만 꽤나 기분 좋은 사람이었다.

Oui ça va. (응 괜찮아.)라고 답하니 그는 Allons voir ce bébé! (그럼 아가 만나러 가볼까?) 하고 수술천 뒤로 사라졌다. 곧 B가 수술실로 들어왔고 의료진들과 같은 옷을 입은 모습을 보자마자 그에게 너 디기 멋지다?라고 말했다. 수술복이 꽤나 잘

어울렸지만 B는 조금 충격을 받은 모습이었다. 개구리처럼 누워있는 내 모습을 상상하지 못했으려나. 미리 준비해 둔 음악 플레이리스트에서 blur의 tender가 흘러나왔다. B는 내 손을 붙잡았다.


Come on, come on, come on
Get through it
Come on, come on, come on
Love's the greatest thing that we have
I'm waiting for that feeling
Waiting for that feeling
Waiting for that feeling to come
Oh my baby, oh my baby
Oh why, oh my?
Oh my baby, oh my baby
Oh why, oh my?


몸이 덜컹덜컹 거리며 마치 롤러코스터를 탄 듯한 생각이 들자 나는 마구 웃음이 나기 시작했다. 왜 웃기지? 왜 기분이 이렇게 좋은 거지? 3분도 채 되지 않아 마취과 의사가 애기 나오는 거 볼래?라고 해서 응.이라고 빠르게 답했지만 나는 수술천 위로 뭔가를 들어 올리는 의사의 팔만 보았지 아가를 보지 못했다. 아기는 의료진들과 함께 곧바로 수술실 밖으로 나갔다.


왜 안 울지?


B에게 물었다. 봤어? 애기 봤어? B도 제대로 보지 못했던 모양이다. 어... 근데 애기가 파란색이야.

몇 초가 지나자 아기 울음소리가 들린다며 의료진들이 울음소리 들었죠?라고 말했지만 난 바로 듣지 못했고 조금 더 지나서야 아기 울음소리를 듣고 안도했다. 간호 보조사가 내 위에 큰 천을 덮고 그 안으로 온풍기를 켜내 따뜻한 바람을 보냈다. 아기를 그 안으로 넣어 바로 Peau à Peau, 스킨 투 스킨을 하려는 거였다.


B, 나 오른쪽 어깨가, 팔이 너무 아파.

(뭐 때문인지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perfusion이 꽂힌 오른쪽 손부터 어깨까지 꽤 큰 고통이 느껴졌고 마취과 의사가 뭔가 조치를 취하니 이윽고 사라졌다. )


수술실 문이 열리고 아기가 들어왔다. 울음소리가 났던 거 같기도 하고 아닌 거 같기도 하고. 내 상체에 안착하자마자 울음을 그친 것 같기도 하다. B는 눈물을 흘렸고, 나는 계속 웃어댔다. 몸을 일으킬 수 없어서 아기를 볼 수 없었다. 하지만 뭔가 따뜻하고 꼬물거리는 게 내 가슴 위에 올라와있는 게 느껴졌다. B는 계속 눈물을 흘렸고 나는 아기를 보고 싶어 자꾸만 턱을 내렸지만 수술대 구조상 볼 수 없었다. 몇 분 뒤 아기는 B와 함께 수술실 밖으로 나갔고 나는 혼자 남아 뒤처리를 하는 의료진들의 발걸음 소리를 들었다. 마취과 의사가 내 머리를 쓰다듬었고, 사쥬팜 학생이 내 볼을 어루만져주었다.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피가 가득 찬 통이 보였다. 아무래도 석션을 한 것들이겠지? 저렇게나 피를 많이 흘리다니!


수술은 끝났다. 아기는 건강한 것 같았다. 나도 별 문제없는 것 같았다. 다른 침대로 옮겨져서 회복을 해야 했다. 이제 진짜 시작인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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